용혜인·김승원 의혹 후폭풍 … 개각에도 반등 못한 李 지지율등 돌린 집토끼 … 盧 지지율 곡선 닮았지만 속사정 전혀 달라盧 '이라크 파병' '한·미 FTA' 결단 … 李 '공소취소' 뒷말 무성검증대 오른 2차 개각 … 盧 지지율 하락이 남긴 경종 돌아볼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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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승원 법무부 장관 후보자(왼쪽)와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청와대 제공
"군자유어의 소인유어리(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군자는 의로움에 밝고 소인은 이익에 밝다는 논어(論語)의 한 구절이다. 이재명·노무현 두 대통령의 지지율 곡선을 나란히 놓고 보면 이 말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다. 집권 초반부터 집토끼가 대거 이탈해 지지율이 출렁이는 상황은 얼핏 비슷해 보인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결(結)은 확연히 다르다.같은 민주당 뿌리지만, 적어도 노 전 대통령은 대의(大義)를 위해 결단할 줄 아는 지도자였다. 한미동맹을 위해 지지층의 반발을 감수하며 이라크 파병을 강행했고, 이후에도 개방과 성장이라는 국익(國益)을 좇아 한·미 FTA 협상을 밀어붙였다. 반면 이 대통령은 본인 재판 공소취소에 매달리는 모습이다. 실제로 이재명 국정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공·사(公私) 혼용이다. 사익(私益)을 위해 국정을 좌지우지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이 곳곳에서 쏟아진다.2차 개각의 밑그림을 들여다보면 사익 논란이 좀 더 뚜렷해진다. 용혜인 성평등가족부 장관 후보자 발탁은 이번 개각의 '좌클릭'을 상징한다. 노동당 언더조직 출신 급진좌파(急進左派) 성향 후보를 기용해 지지층을 결집시키고, 국회에서 개혁 입법을 추진할 우군을 확보하려는 포석이었다. 물론 계획은 계획일 뿐. 특혜 논란을 비롯해 하나둘 드러나는 굵직한 의혹에 같은 좌파 진영마저 등을 돌려버렸다. 용 후보자에게는 '특혜인' '천룡혜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김승원 법무장관 후보자 지명에선 방탄(防彈) 성격이 묻어난다. '이재명 대통령 사건 공소취소와 국정조사 추진을 위한 의원 모임' 공동대표를 맡아 검찰의 조작 기소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온 인물이 거명되자, 곧바로 대통령이 자신을 향한 수사·재판의 급소부터 틀어막으려는 것 아니냐는 쓴소리가 터져 나왔다.‘부정 청탁’ 의혹이 압권이다. 코로나 치료제 업체 설립자와 김 후보자를 연결한 양모씨가 "오빠가 (부탁을) 들어주면 좋겠다"는 취지의 청탁 전화를 건 정황이 검찰 수사에서 파악됐다. 특히 김 후보자가 영장실질심사를 맡은 판사와 나란히 찍힌 사진까지 공개되면서 파문이 확대됐다. 당장 특검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지명했는지가 관건이다. 지지율은 개각 발표 이후 반등하기는커녕 더 고꾸라졌다. -
- ▲ 2007년 8월 청와대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김현종 한·미 FTA 통상교섭본부장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재임 내내 구설이 끊이지 않았다. 자연히 지지율도 들썩거렸다. 하지만 논란의 이면(裏面)을 찬찬히 되짚어보면 국익을 명분으로 한 결단의 흔적이 적지 않게 남아있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3년 초 60%대를 달리던 긍정평가는 이듬해 20%대로 떨어졌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한 이라크 파병이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파병을 전후로 지지층은 거세게 반발했다. 당시 참여연대 등 좌파 시민단체들은 격렬한 반대 운동을 벌였다.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명분 없는 침략전쟁"이라며 거세게 항의했다. 민변 초대 회장을 지낸 인권변호사 출신 김창국 국가인권위원장은 공개적으로 노 전 대통령을 비판했다. 심지어 청와대 내부에서조차 찬반이 갈렸다. 노 전 대통령이 여러 반대를 무릅쓰고 파병을 결단하자, 지지자들 사이에서는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는 비난이 쇄도했다.2004년 2월 자이툰 부대가 창설됐다. 6월 김선일씨 피살 사건을 거쳐, 9월 본대가 실제로 이라크 땅을 밟았다. 지지층의 이탈은 이 대목에서 정점을 찍었다. 여기에 탄핵 정국, 총선 압승, 개혁 입법 좌초가 겹쳤다. 지지율은 다시 요동쳤다. 결정타는 2005년 7월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제1야당이던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했다. '지역주의'라는 고질(痼疾)을 깨보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그러나 지지층은 "적에게 정권을 통째로 넘기려 한다"며 등을 돌렸다. 이듬해 2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미 FTA 협상 개시를 선언하자 집토끼 이탈은 가속했다. 이후 지지율은 5%대까지 주저앉았다. 임기 중 최저치였다.두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 곡선은 표면상 닮은꼴에 불과하다. 지지 기반의 균열, 추락하는 지지율. 하지만 그 심연을 들여다보면 스토리는 판이하다. 노 전 대통령의 선택에는 저마다의 논거(論據)가 있었다. 이라크 파병은 혈맹(血盟)의 도리를, 한·미 FTA는 성장의 활로(活路)를, 대연정은 지역주의 타파라는 오랜 숙원(宿願)을 각각 겨냥했다. 물론 정략적 셈법이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다. 국면 전환용이라는 뒷말도 무성했다. 국가보안법 폐지는 발등을 찍은 패착이었다. 그럼에도 노 전 대통령의 주요 결단을 돌이켜보면 어느 정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노 전 대통령 스스로도 "폭탄을 상대방에게 던졌는데 우리 등 뒤에서 터졌다"고 토로했을지언정, 무엇을 향한 결단이었는지는 자명(自明)하다.이재명 대통령에게서는 좀처럼 대의를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번 개각 논란을 보고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진다. 용혜인 후보자는 이반(離反)하는 집토끼를 붙드는 미끼였고, 김승원 후보자는 자신의 재판을 가리는 방패였다. 국민을 향한 결단이 아니라, 정권과 일신(一身)의 안위를 향한 계산이 아니냐는 비판이 비등하다. 향후 지지율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궤적만큼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대의 없는 결단은 종내 민심의 심판대에 오르기 마련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율 곡선이 남긴 경종(警鐘)을 곱씹어볼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