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론만으로 적 진지 점령…보병없이 ‘킬존’ 구축나토 충격, 우크라 드론…10명이 2개 대대 무력화한국군'50만 드론전사’…먼저 바꿀 건 획득 속도국방부'29년까지 드론 5만대…우크라,올해만 700만대지휘관 주문, 10일만에 부대로 직송…당일 배송도
-
- ▲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 중심가에서 드론과 로봇으로 구성된 무인 무인체계들이 열병식을 하고 있다.[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우크라이나 독립기념일인 지난 8월 24일 키이우 중심부 흐레샤티크 거리에서 낯선 열병식이 열렸다. 인간 병사나 전차, 장갑차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지상 로봇과 해상 무인정, 공중 드론이 거리를 메웠다. 우크라이나가 ‘세계 최초’라고 내세운 무인 전투체계 열병식이었다. 6개 분야 99대의 무인체계가 줄지어 등장했다. 단순한 무기 전시가 아니었다.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이후 4년 반 동안 우크라이나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군사혁신의 결과였다.이날 등장한 지상 로봇 ‘TerMit’는 장갑 캡슐에 부상병을 태워 후송하고 탄약과 물자를 나르는 ‘무인 노새’다. 이미 우크라이나군 50여 개 여단에 2500대 이상 배치됐다고 한다. 대당 약 2500달러인 요격 드론 ‘Sting’은 훨씬 비싼 러시아의 샤헤드 계열 자폭 드론 수천 대를 격추했다.해상 무인정 ‘Magura V7’은 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미국제 AIM-9 사이드와인더 공대공 미사일을 장착한 무인정이 러시아 수호이 전투기를 요격했다. 자폭 드론 ‘Vampire’는 프로펠러 6개를 가진 헥사콥터로 참호에 숨은 러시아 병사를 정밀 타격한다. 드론이 단순히 정찰하고 폭탄을 떨어뜨리는 시대를 넘어선 것이다.◆드론이 러시아 병사의 항복까지 받아낸다우크라이나 전장에서는 드론이 적의 항복을 받아내는 장면까지 등장했다.우크라이나는 러시아군을 대상으로 ‘살고 싶다(호추 지티)’라는 투항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러시아 병사가 전화나 텔레그램, 인터넷 등을 통해 항복 의사를 밝히면 우크라이나군 담당자가 접선 장소와 시간을 알려준다. 약속 장소에는 우크라이나 병사 대신 드론이 날아간다.러시아 병사가 나타나면 드론은 무기를 버리도록 지시한 뒤 우크라이나군 안전지역까지 안내한다. 정찰 중 우연히 적 병사를 발견한 드론이 불빛이나 확성기 등을 이용해 항복을 유도하기도 한다. 드론은 후방에 있는 우크라이나 병사가 화면을 보며 조종한다. 미하일 페도로프 우크라이나 국방부 장관은 지난 3월 “지난해 겨울에만 100명 이상의 러시아 병사가 우크라이나군 드론의 도움으로 항복했다”고 밝혔다.우크라이나군에서 드론의 임무는 이제 정찰과 타격에 그치지 않는다. 물자 수송과 부상자 후송, 방공, 기뢰 부설, 전자전, 적군의 항복 유도까지 전장의 거의 모든 분야로 확대되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량은 가히 혁명적이다. 우크라이나 국방부 등에 따르면 지난해 드론 조달량은 400만대 규모이며(유로마이단프레스), 올해엔 700만대(세르히 보예우 우크라이나 국방차관)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루 소모량만 9000~1만대로 추산하고 있다.(웨스트포인트 현대전연구소 등) 지상 로봇(UGV)도 2024년 2000대 배치를 시작으로, 지난해 1만 5000대, 올해는 5만 대를 생산 배치할 전망이다.(젤렌스키 대통령 발표)우크라이나가 이처럼 드론과 로봇에 매달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병력 부족이다. 일부 전방 부대의 충원율은 절반 수준으로 심각하고, 병사들의 평균 연령도 40대로 높아졌다. 넓은 전선을 소수 병력으로 지켜야 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 기존의 보병 중심 전술만으로는 러시아군을 막기 어려워진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선택한 해법은 사람 대신 기계를 전선에 투입하는 것이다.◆ 병사 없는 참호, 드론이 만든 ‘킬존’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이른바 ‘드론 라인’이다.러시아군과 맞닿은 최전선의 수㎞에서 10여㎞ 깊이의 공간을 정찰·타격 드론으로 감시한다. 러시아 병사나 차량이 이 구역에 들어오면 드론이 먼저 발견하고 공격한다. 필요하면 후방 포병에 표적 좌표를 보내 타격하거나 지뢰를 원격 매설한다. 적 입장에서는 들어가면 살아나오기 힘든 ‘킬존(Kill Zone)’이다.더 놀라운 것은 인간 보병이 없는 전투까지 등장했다는 점이다.지난 4월 우크라이나군은 동부 쿠판스크 일대에서 러시아군 진지를 지상 로봇과 공중 드론을 이용해 공격했다. 정찰 드론이 적 위치를 찾고 지상 로봇이 화력지원과 장애물 제거를 맡았다. 자폭 드론이 마지막 공격을 가했다.젤렌스키 대통령은 이후 “이번 전쟁에서 처음으로 적 진지가 오직 무인 플랫폼만으로 점령됐다”며 “보병의 참여도, 아군의 인명 손실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석 달 동안 로봇이 위험한 임무 2만 2000여 회에서 사람을 대신했다고도 했다. 전쟁터에서 ‘사람은 판단하고 기계가 싸우는’ 시대가 실제로 열리고 있다. -
- ▲ ⓒ우크라이나군 해상 무인 수상정 Magura V7이 AIM-9 사이드와인드 미사일을 장착하고 운항 중이다.[AP]
◆ 우크라이나 드론 조종사 10명에 충격받은 NATO우크라이나의 이런 전쟁 경험은 NATO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지난해 에스토니아에서 실시된 다국적 연합훈련 ‘고슴도치(Hedgehog) 2025’에는 NATO 12개국 장병 1만 6000명이 참가했다. 실전을 경험한 우크라이나 드론 전문가 약 10명은 가상 적군인 ‘레드팀’ 역할을 맡았다.결과는 뜻밖이었다.10명의 우크라이나팀이 운용한 드론과 로봇은 NATO 측 장갑차량 17대를 가상 파괴하고, 하루 만에 2개 대대 규모 전력에 치명적인 피해를 준 것으로 평가됐다. 현장을 지켜본 일부 관계자 사이에서는 “우리는 망했다”는 반응까지 나왔다고 한다.모의훈련이었지만 의미는 작지 않았다. 수십 년 동안 NATO가 발전시킨 전차·장갑차·보병 중심의 전투 방식이 값싼 드론 앞에서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 것이다.우크라이나는 이런 경험을 제도화했다.2024년 세계 최초로 무인체계군(USF·Unmanned Systems Forces)을 독립 군종으로 창설했다. 육군·해군·공군 등의 보조수단으로 드론을 사용하는 수준이 아니라 드론과 로봇 자체를 중심으로 독립적인 전투조직을 만든 것이다. 우크라이나군은 무인부대를 여단급으로 확대하고 각 군단에도 무인체계 부대를 늘리고 있다.그러나 우크라이나의 진짜 경쟁력은 드론 숫자보다 다른 곳에 있다. 바로 ‘속도’다.◆ 주문하면 전선으로 직송…우크라이나가 바꾼 무기 조달전쟁 초기 우크라이나는 미국과 유럽이 보내주는 무기에 크게 의존했다. 하지만 드론전이 본격화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수백 개의 드론 업체가 생겨났고, 전장에서 사용하는 기종만 수백 가지에 달한다. 정부가 일일이 규격과 모델을 정해주는 방식으로는 기술 발전을 따라갈 수 없게 됐다.우크라이나 정부는 중앙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방식을 버렸다.정부는 최소 성능 기준만 정해놓고, 제작사가 스스로 제품을 인증하도록 했다. 일선 지휘관에게는 예산과 기종 선택권을 줬다. 지휘관이 온라인 방산 플랫폼(Brave1)에서 필요한 드론을 직접 골라 주문하면, 업체가 중간 군수창고를 거치지 않고 곧장 부대로 배송한다. 그 결과 과거 수개월 걸리던 조달기간이 평균 열흘 안팎으로 줄었다. 상황에 따라 주문한 드론이 하루 만에 전선에 도착하기도 한다.새로운 드론을 개발한 업체가 군에 시험평가를 신청하면 결과도 신속하게 나온다. 시험을 통과한 제품은 즉각 군에서 사용할 수 있다. 전장에서 문제가 발견되면 업체가 고치고, 군이 다시 시험하고, 다시 전선에 투입한다.우크라이나 전쟁에서는 무기의 성능 못지않게 ‘도입과 개량 속도’가 전투력인 셈이다. 이 시스템은 NATO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NATO와 우크라이나는 우크라이나의 신속 국방기술 플랫폼인 ‘Brave1’ 경험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나토와 우크라이나는 지난 3월 ‘유나이티드-브레이브(United-Brave)’ 포털을 공동 구축했다. NATO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드론이 실제로 격돌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나온 데이터를 확보하려 한다.NATO 부사령관 조니 스트링어 공군 대장은 지난 7월 런던에서 열린 글로벌 항공우주 참모총장 회의에서 우크라이나의 드론 생산 증가를 거론하며 “NATO 32개국이 이 숫자를 따라가지 못한다면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는 취지로 말했다. -
- ▲ ⓒ우크라이나군이 전쟁 중에 드론과 로봇 등 신기술 무기체계를 신속 도입하기 위해 구축한 군수조달체계.[ChatGPT]
◆ 한국군도 ‘50만 드론 전사’…문제는 속도북한 역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드론의 위력을 학습하고 있다. 한국군도 대응을 서두르고 있다.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지난 1월 각 군 업무보고에서 “드론은 제2의 개인화기”라고 강조했다. 국방부는 올해부터 교육용 드론 보급을 확대, 2029년까지 드론 5만 대를 분대까지 보급해 운용체계를 구축한다는 계획이다.지난 7월에는 육군 11기동사단에서 전투원 4명과 무인체계 운용요원 4명으로 구성된 ‘유무인복합분대’ 실증부대도 출범했다. 2027년에는 중대급, 2028년에는 대대급으로 확대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육군은 드론·로봇 전술시범부대를 만들고 장거리 자폭무인기 등 새로운 무기체계도 전력화할 예정이다.방향은 맞다. 문제는 속도다.한국군이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군처럼 급박하진 않지만, 북한군의 위협은 갈수록 심각하다. 우크라이나와 같은 방식으로 무기 조달은 쉽지 않지만, 혁신이 필요하다. 지금과 같은 속도로는 드론과 AI 기술 발전을 따라가기 어렵다. 방위사업청은 10~15년씩 걸리던 기존 무기 획득기간을 크게 줄이기 위해 신속획득 제도를 마련하고 있다. 하지만 신속시범사업조차 시제품 제작과 군 시범운용을 거치면 실제 전력화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문제는 드론 기술의 발전 주기가 그보다 훨씬 짧다는 것이다. 오늘 세계 최고 수준의 드론도 몇 년 뒤에는 구형이 될 수 있다. 전자전 환경이 변하면 몇 달 만에 통하지 않는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런 시대에 5년짜리 ‘패스트트랙’이 정말 패스트트랙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준 군사혁신의 본질은 드론 자체가 아니다. 전장에서 문제가 생기면 업체가 고치고, 군이 시험하고, 지휘관이 선택해 다시 전선에 투입하는 ‘속도의 문법’이다.한국군도 드론 몇 만 대를 더 사들이는 것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드론과 로봇, AI가 수개월 단위로 변하는 시대라면 군의 시험평가와 획득체계도 그 속도에 맞춰 바뀌어야 한다. 드론 50만 전사를 만드는 것보다 먼저 해야 할 일은, 수십 년 된 무기 획득체계의 시계를 미래전의 속도로 돌려놓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