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 손봉기 임명동의안 제출 않고 재제청 요구대법관 14→26명 증원…李 임기 중 22명 임명재제청 반복 땐 대통령 '사실상 선택권' 우려법조계 "코트 패킹 가능…임명 절차 보완해야"
  •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고(故) 조부환 씨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조문객들을 배웅하고 있다. ⓒ뉴시스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달 31일 경북 포항시 남구 포항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부친 고(故) 조부환 씨의 빈소에서 조문을 마친 조문객들을 배웅하고 있다. ⓒ뉴시스
    전체 대법관 26명 가운데 22명. 이재명 대통령이 임기 중 임명할 것으로 전망되는 숫자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가 조희대 대법원장이 제청한 손봉기 후보자를 국회에 넘기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하면서 대통령의 대법원 구성 영향력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거부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른 후보자의 재제청까지 요구하면서 임명권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도 불거졌다.

    특히 대법관 증원과 맞물려 이 같은 방식이 선례로 굳어지면 대통령의 '거부권'이 사실상 원하는 후보자를 고르는 '선택권'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더라도 재제청을 통해 후보군을 좁히고 대법원 구성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코트 패킹(Court Packing)'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 ▲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경북 포항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희대 대법원장의 부친상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조 대법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지난달 31일 오후 경북 포항 성모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조희대 대법원장의 부친상 빈소를 찾아 조문을 마친 뒤 조 대법원장의 배웅을 받으며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 국회 판단 전 후보 거부 … 대통령 '선택권' 논란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한다. 대법원장과 국회, 대통령에게 각각 제청권과 동의권, 임명권을 부여한 구조다.

    이번에는 손 후보자가 국회의 판단을 받기도 전에 청와대가 임명동의안을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했다. 결과적으로 국회가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판단할 기회까지 차단한 셈이다.

    대법원장이 후보자를 제청하더라도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국회 동의 절차 자체가 시작되지 않는다. 이런 방식이 반복되면 결국 대통령이 수용할 수 있는 후보자만 최종 임명 절차에 오를 수 있다.

    후보자를 부적격하다고 판단해 임명을 거부하는 것과 수용할 수 있는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재제청을 요구하는 것은 성격이 다르다. 대통령의 '거부권'이 사실상 후보자를 고르는 '선택권'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김상겸 동국대 법무대학원 교수는 "헌법에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돼 있지 '임명할 수 있다'고 돼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대통령의 대법관 임명권은 형식적인 임명권"이라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이 후보자를 거부하는 것은 대법원장의 제청권과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 조희대 대법원장. ⓒ뉴데일리DB
    ▲ 조희대 대법원장. ⓒ뉴데일리DB
    ◆ 재제청은 대법원장 권한 … 대통령 요구 구속력 없어

    대통령이 제청된 후보자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다른 후보자를 요구하는 것도 별개의 문제다.

    대법관 후보자는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의 추천을 거쳐 대법원장이 제청한다. 대통령과 후보자를 사전에 조율하도록 한 규정은 헌법이나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다.

    김 교수는 "헌법에 대통령과 사전에 협의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며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거쳐 후보자를 선정하고 대법원장이 제청하는 절차에 대통령이 관여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재제청 요구로 대통령에게 사실상 대법관 선택권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는 "그렇게 볼 수 있다"며 "대통령이 대법원장과 후보자를 상의하는 결과가 되면 대통령이 사법권에 관여하게 되는 것"이라고 했다.

    재제청 요구 자체에는 법적 구속력이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다시 제청해 달라는 것은 대법원장에 대한 일종의 주의 환기 수준이지 법적인 의미는 없는 정치적인 발언"이라며 "재제청할 것인지 말 것인지는 오로지 대법원장의 전속적인 권한"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치적 요구가 반복되고 실제 후보 교체로 이어질 경우 대통령의 의중이 대법관 인선에 반영되는 통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 6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4부 요인 회동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李 임기 중 대법관 22명 … 재제청 반복 땐 '코트 패킹'

    개정 법원조직법에 따라 현재 14명인 대법관은 2030년까지 26명으로 늘어난다. 증원과 기존 대법관의 임기 만료를 고려하면 이 대통령은 임기 중 22명의 대법관을 임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과정에서 대통령과 사전 조율되지 않은 후보자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재제청을 요구하는 방식이 선례로 굳어지면 대통령이 직접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더라도 후보군을 사실상 좁힐 수 있다.

    대법원장의 제청권은 형식적으로 유지되더라도 대통령이 받아들일 수 있는 후보자가 나올 때까지 거부하는 방식으로 인선에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생기는 것이다.

    결국 핵심은 손 후보자 한 명의 임명 여부를 넘어 재제청 요구가 향후 대법관 인선의 선례로 자리 잡느냐에 있다. 대법관을 대폭 증원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선례가 반복되면 대통령의 대법원 구성 영향력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한 교수는 "언제든지 코트 패킹이 가능하다는 것이 현행 헌법의 한계"라며 "바로 그렇기 때문에 대법관 임명 절차에 대해 최소한 투명하고 민주적인 절차를 법률로 만들어 둘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