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500만명 GLOF 잠재 영향권…히말라야 등 아시아 고산지대에 62% 집중종합위험도 中 0.863·파키스탄 0.751 세계 1·2위…네팔보다 높게 평가1990년 이후 빙하호 수 53%·면적 51%·부피 48%↑…3년 전 경고 네팔서 현실화안데스도 새 위험지대…빙하호 20년새 93% 급증, 페루 종합위험 세계 3위
  • ▲ 홍수 피해 입은 네팔ⓒ연합뉴스
    ▲ 홍수 피해 입은 네팔ⓒ연합뉴스
    네팔을 덮친 대홍수는 갑작스러운 재난이었지만 이 같은 위험은 이미 예고돼 있었다. 과학계는 적어도 3년 전부터 전 세계 약 1500만명이 빙하호 폭발홍수(GLOF)의 잠재적 영향권에 놓여 있다고 경고하면서, 네팔보다 중국과 파키스탄의 종합 위험도가 더 높은 것으로 평가했다.

    실제 네팔에서 우려가 현실이 된 가운데 지구온난화로 빙하가 빠르게 녹고 얼어붙은 암반과 토사를 붙잡아주던 얼음과 영구동토까지 약해지면서 중국과 파키스탄을 비롯한 고산지대의 '제2 네팔' 위험도 커지고 있다.

    ◆ 中 빙하호 1109개·파키스탄 210만명 노출 … 위험도 세계 1·2위

    28일 국제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따르면 뉴질랜드 캔터베리대 톰 로빈슨 교수와 영국 뉴캐슬대 캐럴라인 테일러 교수 등이 참여한 연구팀은 지난 2023년 2월 '빙하호 폭발홍수, 전 세계 수백만명 위협(Glacial lake outburst floods threaten millions globally)'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전 세계 30개국의 빙하호가 있는 1089개 유역에 약 9000만명이 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1500만명(16.6%)이 빙하호에서 50㎞ 이내이면서 잠재적인 GLOF 이동 경로에서 1㎞ 이내에 거주하는 것으로 추산했다.

    GLOF는 빙하가 녹아 만들어진 호수를 막고 있던 얼음이나 빙퇴석 등 자연제방이 무너지면서 대량의 물과 토사가 한꺼번에 하류로 쏟아지는 현상이다. 빙하나 암석이 호수로 무너지면서 발생한 충격파가 제방 붕괴를 일으키거나, 눈·비·빙하가 녹은 물이 급격히 유입되면서 발생할 수 있다.

    위험은 아시아 고산지대에 집중돼 있다. 전 세계 GLOF 잠재 노출 인구의 62%인 약 930만명이 히말라야를 포함한 아시아 고산지대에 살고 있다. 국가별 노출 인구는 인도가 약 300만명으로 가장 많고 파키스탄이 약 200만명으로 뒤를 이었다.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만 합쳐도 전 세계 노출 인구의 약 3분의 1이다. 인도·파키스탄·페루·중국 4개국으로 넓히면 전 세계 노출 인구의 절반을 넘어선다.

    특히 연구진이 GLOF 발생 가능성이 아닌 빙하호의 물리적 조건과 인구 노출도, 사회적 취약성을 종합해 산출한 위험도에서는 중국이 0.863으로 세계에서 가장 높았다. 파키스탄이 0.751로 뒤를 이었다.

    두 나라가 위험한 이유는 다르다. 파키스탄은 잠재 노출 인구가 약 210만명으로 중국의 약 110만명보다 두 배 가까이 많고 사회적 취약성도 더 높았다. 특히 파키스탄에서는 약 80만명이 빙하호에서 15㎞ 이내에 거주해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주민들이 빙하호에 가장 가까이 살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반면 중국은 빙하호 자체가 압도적으로 많고 크다. 연구 당시 중국에는 1109개의 빙하호가 있었으며 전체 면적은 1094.44㎢에 달했다. 노출 인구와 사회적 취약성은 파키스탄보다 낮았지만 빙하호의 수와 규모에서 위험도가 크게 높아 종합 평가에서는 세계 1위에 올랐다.

    유역별 위험도는 파키스탄이 더 심각했다. 전 세계 1089개 빙하 유역을 분석한 결과 파키스탄 카이버파크툰크와 유역이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곳으로 평가됐다. 잠재적인 GLOF 영향권 인구만 약 120만명이다. 이어 페루 산타 유역이 약 90만명, 볼리비아 베니 유역이 약 10만명으로 각각 세계 2·3위에 올랐다.
  • ▲ 네팔 쿰부 히말의 랑모체 계곡에 있는 '딕초' 빙하호수ⓒ연합뉴스
    ▲ 네팔 쿰부 히말의 랑모체 계곡에 있는 '딕초' 빙하호수ⓒ연합뉴스
    ◆ 빙하호 30년새 53% 급증 … 3년 전 경고, 네팔서 현실로

    연구진은 당시 기후변화가 계속되면서 이 같은 위험이 더 커질 가능성도 경고했다. 지구온난화로 전 세계 빙하의 질량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으며 이러한 흐름은 21세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빙하가 후퇴하면서 얼음이 있던 자리에 웅덩이가 생기고 녹은 물이 고이면서 새로운 빙하호가 만들어지거나 기존 빙하호가 확대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1990년 이후 전 세계 빙하호의 수는 53%, 면적은 51%, 부피는 4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빙하호 하류의 인구와 기반시설, 수력발전 시설도 늘어나면서 빙하호 자체의 확대와 인구·시설의 노출 증가가 맞물려 피해 위험을 키울 수 있다고 연구진은 지적했다.

    GLOF의 특성상 피해가 시작된 뒤 대피할 수 있는 시간도 짧다. 연구진은 특히 빙하호에서 약 10~15㎞ 이내 지역은 GLOF가 발생하면 하류 주민에게 경보를 내리고 실질적인 대피 조치를 취할 시간이 부족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아시아 고산지대에서는 약 100만명이 빙하호에서 10㎞ 이내에 거주하고 있다.

    연구진이 2023년 이 같은 경고를 내놓은 지 3년 만에 히말라야에서는 빙하와 고산지대의 불안정성이 대형 재난으로 현실화됐다.

    지난 26일 네팔과 중국 티베트 접경지역에서는 거대한 빙하와 암석이 무너져 내리면서 대규모 홍수가 발생했다. 미국 지질조사국(USGS)은 위성영상 등을 토대로 대규모 빙하 붕괴가 산사태와 돌발홍수로 이어졌으며 붕괴 과정에서 규모 5.2 지진에 해당하는 에너지가 발생한 것으로 분석했다.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사고 지역에서는 거대한 얼음과 암석 덩어리가 계곡 아래로 쏟아지면서 물과 토사를 밀어냈다. 홍수는 좁은 계곡을 따라 하류로 급속히 확산하며 마을과 도로, 교량, 발전시설 등을 휩쓸었다.

    이번 네팔 홍수는 빙하호의 자연제방이 무너지는 전형적인 GLOF로 확인된 것은 아니다. 정확한 발생 메커니즘과 기후변화의 기여 정도는 추가 연구가 필요하지만 전문가들은 온난화로 고산지대가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기온이 오르면 빙하가 녹는 데 그치지 않고 암석 틈과 지반을 얼어붙은 상태로 유지하던 영구동토가 해빙되면서 산비탈과 암벽의 안정성까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히말라야만 아니다 … 안데스 빙하호 20년새 93% 급증

    위험지역은 히말라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연구진은 그동안 상대적으로 관심을 덜 받아온 남미 안데스산맥을 또 다른 위험지역으로 지목했다.

    지난 20년 동안 안데스 지역의 빙하호 수는 93% 증가했다. 같은 기간 아시아 고산지대의 증가율 37%를 크게 웃돈다. 국가별 GLOF 종합 위험도에서도 페루가 세계 3위를 차지했다.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페루 산타 유역과 세 번째인 볼리비아 베니 유역도 모두 안데스산맥에 있다.

    그러나 1979~2021년 수행된 전 세계 GLOF 관련 연구 가운데 안데스산맥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8%에도 미치지 못했다. 연구진은 자료 부족으로 이 지역의 실제 위험이 충분히 평가되지 않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결국 빙하가 많다고 반드시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린란드는 조사 대상 국가 가운데 빙하호의 수와 면적을 기준으로 한 물리적 위험 조건이 가장 높았지만 잠재적인 GLOF 이동 경로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어 종합 위험도는 0으로 평가됐다.

    반대로 중국과 파키스탄처럼 거대한 빙하호와 많은 인구, 높은 사회적 취약성이 겹치는 곳에서는 같은 규모의 자연현상도 대형 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연구진은 "가장 위험한 유역이 반드시 가장 많거나 가장 큰 빙하호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며 많은 인구가 위험지역에 거주하고 재난에 대처할 능력이 부족한 것이 전체적인 GLOF 위험도를 결정하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네팔에서 현실이 된 '빙하 시한폭탄'이 특정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의미다. 지구온난화로 빙하와 영구동토가 녹는 가운데 고산지역 개발과 인구 노출까지 확대되면서 중국과 파키스탄, 인도에서 남미 페루와 볼리비아에 이르기까지 '제2의 네팔' 위험지역은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