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중립은 최후 보루, 李 언행에 "경계가 사라져""오만한 권력자" 비판까지 … 공화정 정신 실종제청권은 대법원장 고유 권한 … '위임 민주주의' 극단 전형3자 변협 추천까지 뒷전 … 특별감찰관, 권력의 장식품 우려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8일 일본·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김민석 국무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8월 28일 일본·미국 순방 일정을 마치고 귀국해 김민석 국무총리와 인사를 나누고 있다. ⓒ서성진 기자

    헌법 제7조 제1항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국가원수(國家元首)이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에게 이 조항의 무게는 각별하다. 정치적 중립(中立) 의무는 예의상 권고가 아니다. 민주주의 공정성(公正性)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그런데 최근 이재명 대통령의 언행은 '너무나 자주' 고개를 흔들게 만든다. 국민 전체의 대통령인지, 특정 진영의 수장(首長)인지, 분간이 어려운 장면이 반복된다.

    지난 21일 노웅래 전 의원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이 나왔다. 검찰이 제출한 일부 증거가 위법하게 수집됐고 나머지 증거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충분히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 예상대로 판결 이후 정치권의 온갖 반응이 쏟아졌다. 그중 우리의 눈을 휘둥그레지게 만든 글이 나왔다. 

    주인공은 바로 이재명 대통령. 그는 판결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곧바로 SNS에 적었다. "선배님, 죄송합니다. 존경합니다. 사랑합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치환했을 때 그의 반응은 한 편의 '블랙코미디'였다. 사실 노웅래 전 의원의 무죄는 결백(潔白)의 증명이 아니다. 돈을 건넸다는 사업가 박우식씨 다이어리에는 '노씨 2천만원' '노 의원 1천만원' 등이 적혀 있었다. 재판부도 이를 증거로 인정했다. 다만 기록만으로 실제 전달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봤다. 결코 깨끗한 결론이 아니다.

    공천 배제에 대한 인간적 도의(道義)를 표명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얼마나 억울했을지", "정치검찰의 패악질"이라고까지 했다. 본인도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노 전 의원을 감싸며 검찰에 화살을 돌리는 모습이다. "공소 취소 빌드업 아니냐"는 야권의 비판이 마냥 엉뚱해 보이지 않는다. 이 대통령이 특정인의 재판 결과에 이토록 사적(私的) 감정을 싣는 이유가 궁금하다.

    내부에서도 말이 많다. 

    유시민 작가의 24일 발언에는 '계파 수장 이재명'으로부터 생기는 그들간의 갈등 실체가 적나라하게 녹아있다. 유 작가는 유튜브 채널 '장인수의 저널리스트'에서 "대통령이 자신의 대리인(김민석 후보)을 보내 당을 지배하려 한 건 공화정(共和政) 정신에 어긋난다"고 직격했다. "지금 대통령의 모습은 권력자의 모습이다. 그것도 굉장히 오만한 권력자"라는 최고 수위의 비판까지 이어졌다. 요지는 분명하다. 대통령이 여당 당대표 선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다는 것이다. 앞서 유 작가는 "뉴이재명의 수장은 이 대통령일 가능성이 높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共(함께)·和(화목)·政(정사)' 함께 화합해 정사를 맡아 다스린다는 공화정은 보기 힘들다. 

  • ▲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를 나서고 있다. ⓒ서성진 기자
    정파(政派) 논란은 대법관 인선 충돌에서 정점을 찍었다. 

    조희대 대법원장은 노태악 전 대법관과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각각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와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대통령에게 서면 제청했다. 그러자 여권 일각에서는 "사법 쿠데타", "조희대 탄핵"을 운운하며 칼을 빼들었다. 이른바 '위임 민주주의(delegative democracy)'의 극단적 전형이다. 선거에서 승리한 후 대의민주주의를 넘어 모든 권력을 위임받은 것처럼 전권을 행사하는 왜곡된 민주주의, 곧 제왕적 모습으로 변질된 양상이다.

    헌법 104조 2항이 보장하는 '제청권'은 대법원장 고유의 권한이다. 서면이냐 대면이냐는 형식일 뿐, 본질이 아니라는 게 법원 내부 중론이다. 조 대법원장이 12·3 비상계엄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고 비판해 온 정욱도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사법연수원 31기) 역시 "법률가 중 직업적 양심을 걸고 이번 제청이 위헌 또는 위법이라고 단정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문제 삼아야 할 쪽은 대법원장이 아니라, 반려와 재제청을 검토하는 청와대라는 의미다. 

    이 대통령이 고집하는 대법관 후보는 김민기 판사다. '법조계 하나회'라고 불리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이다. 대장동 사건 항소심 재판부의 일원으로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게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다. 남편 오영준 헌법재판관도 이 대통령이 임명한 인사다. 조 대법원장이 '부부 이해충돌(利害衝突)'을 반대 사유로 든 배경이다. 특정 정치 성향에 이해충돌 소지까지 겹쳤다. 그럼에도 대통령 측은 일방적으로 몰아붙인다. 존 로크(John Locke)는 "법이 끝나는 곳에서 독재가 시작된다(Where-ever Law ends, Tyranny begins)"고 했다. 통치자가 법의 경계를 넘는 순간, 그것이 곧 독재(獨裁)의 시작이라는 경고다.

    10년 만에 부활한 특별감찰관 인선에서도 같은 패턴이 반복됐다. 

    이 대통령은 특감 후보로 더불어민주당 측 최길수 변호사를 지명했다. 국민의힘이 내세운 강지식 변호사는 물론, 3자 변협이 추천한 최용훈 변호사마저 뒷전으로 밀렸다. 대통령실 요직은 이미 '이재명 변호인단'으로 채워져 있다. 대장동 사건을 변호했던 이태형 변호사는 공직기강비서관에,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맡았던 전치영 변호사는 민정비서관 자리에 앉았다.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을 지휘한 김희수 변호사는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에 여당 추천 변호사가 특감 후보에 올랐다. 특별감찰관법에 따라 대통령 측근 감시에 충실해야 할 감찰관이 권력의 장식품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우려가 쏟아진다. 

    숫자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일련의 논란들이 겹친 가운데 이 대통령의 지지율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국정 운영 지지율은 잘해야 40% 초중반이다. 미디어토마토의 25일 조사에서 40.0%가 나오더니, 같은 날 나온 여론조사공정㈜ 조사에서는 36.3%까지 뚝 떨어졌다. 

    헌법 7조가 요구하는 것은 단순하다. 대통령은 국민 전체의 봉사자다. 특정 진영의 수호자가 아니다. 노웅래 전 의원 항소심 무죄 감회(憾悔), 여당 전당대회 개입 논란, 서면 제청 반려 움직임, 우리법연구회 인사에 대한 집착, 특별감찰관 인선까지. 이를 관통하는 질문은 하나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금 대통령과 특정 정파 수장 중 어느 쪽에 더 가까운가. 

    지금의 지지율 하락은 우연이 아니다. 정도(正道)는 법의 경계를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 헌법이 정한 중립의 원칙을 지키는 데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