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999’는 ‘100’이 아니다‘0’은 더더욱 아니다 무죄 = 결백, 결코 아니다
  • ▲ 《무죄》가《결백》은 아니다. 영어《Not guilty》와《Innocent》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된다. ⓒ 삽화 = 챗GPT
    ▲ 《무죄》가《결백》은 아니다. 영어《Not guilty》와《Innocent》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된다. ⓒ 삽화 = 챗GPT
    ■ 영화의 한 대목

    영화《내부자들》한토막. 
    우장훈 검사가《악의 근원》조국일보 이강희 주필을 찾아가 그의 음성이 담긴 녹취록을 들려준다. 
    한때 호형호제했던 건달 안상구가 배신감에 치를 떨며 이강희를 찾아가 멱살을 잡았을 때 그의 대답을 직접 녹취한 것이었다.
      
    “나는 몰라. 
    모든 건 장필우가 한 짓이야”.

    그 녹취록을 들려준 우장훈 검사에게 이강희 주필은 증거로 인정되지 않을 거라며 비웃는다. 
    현실은 영화보다 더 영화같다.    


  • ▲ 영화《내부자들》 포스터. ⓒ
    ▲ 영화《내부자들》 포스터. ⓒ
    ■ 법학자란 조국의 궤변

    송영길 의원 노웅래 전 의원이 무죄 받은 걸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법학자 조국 대표가 한마디 했다. 

    그 논리가 매우 황당하다. 
    영화 속《조국일보 이강희 주필》도 못할 말을 법학자가 태연스레 하는 게 참으로 놀랍다.  
     
    그는 송영길 노웅래 등이 위법수집증거 때문에 무죄를 받았을 뿐이라는 특수부 검사 출신 한 국회의원의 주장을《반헌법적 궤변》이라고 폄하했다. 
    검찰은 위법하게 증거를 수집해서는 안 되며, 위법수집이라면 “그 뒤는 따지고 말 것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논쟁의 본질이 될 수 없다. 
    해석학적으로《열린구간》《닫힌구간》을 떠올리면 논쟁의 본질이 명료해진다. 
     
    실수공간에서 두개의 구간 (0,100) [0,100]을 생각해보자. 
    전자는 열린구간이고, 후자는 닫힌구간이다. 
    둘 다 무수히 많은 점을 포함하고 있고, 르베그 측도로는 길이도 똑같이 100이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닫힌구간 [0,100]에는《경계점》0과 100이 포함되지만, 열린구간 (0,100)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즉, (0,100)《상한》100은 존재하지만《최댓값》100은 존재하지 않는다. 
    99.9, 99.99, 99.999처럼 아무리 100에 가까이 다가간다 하더라도《100》그 자체는 아니다.   
     
    논리적으로 형사재판도 비슷할 것이다. 
    검찰이 수많은 정황과 증거를 제시해 피고인의 범죄혐의에 대한 입증 정도를 99.9%, 99.99% 수준까지 끌어올렸다고 하자.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위법수집증거로 배제된다면 경계점 100%에는 도달할 수 없다


  • ▲ 한동훈 의원 주장을 비판하는 조국의 페이스북. 송영길 노웅래가 무죄이면 자기도 무죄라며 사법부를 비난하고 있다. ⓒ 화면 갈무리
    ▲ 한동훈 의원 주장을 비판하는 조국의 페이스북. 송영길 노웅래가 무죄이면 자기도 무죄라며 사법부를 비난하고 있다. ⓒ 화면 갈무리
    ■ 무죄가 결백을 증명하진 않아

    융통성있게《반올림》을 하면 어떨까? 
    그건《경계》가 사라짐을 의미한다. 
    국가권력으로 사람을 처벌하는데 있어《경계》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       
     
    형사재판에서 대충 100에 가까워 보인다 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할 수 없는 이유이다. 
    적법한 증거만으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하기에 충분할만큼《100》이 되어야 비로소 유죄를 선고할 수 있다. 

    이는 다툼의 여지가 없음을 의미한다. 
    만약 다툼의 여지가 있다면 법원은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무죄추정의 원칙이다. 

    하지만《100》이 빠져 무죄가 선고됐다고 해서 열린구간 (0,100)《공집합》이 되는 건 아니다. 
    그 안에는 수없이 많은 점들이 존재한다. 
    유죄 입증에 실패했다고 해서 범죄혐의를 뒷받침했던 모든 사실과 정황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위법수집증거를 사용해 유죄를 선고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증거능력이 없어 유죄라는 경계점에 도달하지 못한 것과, 애초부터 범죄의 실체가 전혀 없었던 것은 구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죄의 반대는 무죄고, 열린집합의 여집합은 닫힌집합이다. 
    해석학적으로 닫힌집합은 그 집합이《닫혀》있어서 닫힌집합이 아니고 그 여집합이 열린집합이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무죄 판결이 죄가 없어서 무죄라기 보다는 유죄의 역이 무죄이기에 무죄인 것이다. 
    유죄와 무죄엔 교점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무죄와 결백 사이의 경계

    송영길 의원과 노웅래 전 의원의《무죄》《not guilty》로 봐야 한다. 
    비유하자면, 그들의 위법행위들이《공집합》이란 뜻이 아니라 검찰이 적법한 방법을 통해 그《열린집합》을《닫힌집합》으로 바꾸지 못했음을 뜻한다. 
    경계점》을 채우지 못한 것이다. 

    《not guilty》가 실체적 의미의《innocent》, 즉 범죄와 관련된 실체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음을 인증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위법수집증거 배제법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하지만 그건 사실을 지워버리는 지우개가 아니라 국가가 국민을 처벌할 때 넘어서는 안 될《경계》를 분명히 하는 차원이다. 

    법학자 조국 , 그리고 검찰이《생사람》을 잡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닫힌구간 [0,100]에서《100》이 빠져 반닫힌구간 [0,100)으로 변하니 그 집합을《공집합》으로 파악하는 격이다. 
    심각한 오류다. 

    더 황당한 건, 그게 오류임을 알면서도 억지를 부리는 그 태도 다.   
     
    법치주의는 99.999를 100이라고 우겨서도 안 되지만, 100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그걸 0이라고 우겨서도 안 된다
    이것이not guilty》《innocent》사이에 존재하는, 작지만 결정적인《경계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