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사 본점 91.6% 수도권 … 감독기관 옮기고 다시 서울 출장셔틀버스에만 1989억, 1차 이전이 남긴 행정비용금융위·금감원에 국책은행까지 … 정권마다 반복되는 '이전 정치'주소 옮겨도 시장은 그대로 … 금융 생태계 없는 지방이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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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경제학자 앨프리드 마셜은 산업이 한곳에 모이는 이유를 설명하며 전문지식과 정보가 마치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과 같다고 했다. 기업과 사람이 가까이 있을수록 말로 설명하기 힘든 지식까지 빠르게 퍼진다는 '집적의 경제'다. 100년도 더 된 얘기지만 요즘 금융권 지방이전 논란을 보면 낡기는커녕 지나치게 현실적이다.정부가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산업은행·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금융기관의 지방이전을 다시 만지작거리고 있다. 대상도 지역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는데 조직은 벌써 술렁인다. 금감원에서는 지방으로 갈 경우 사직할지를 묻는 설문까지 등장했고 국책은행 노조는 거리로 나왔다. 금융노조는 총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발표도 전에 비용부터 발생하는 기묘한 정책이다.서울과 세종은 지도에서는 130㎞ 남짓이다. 금융에서는 얘기가 다르다. 금감원이 올해 예정한 금융회사 검사는 707회, 투입 연인원은 2만 8229명이다. 금융회사 본점의 91.6%, 현장검사 대상의 88.3%가 수도권에 몰려 있다. 감독기관을 옮긴 뒤 검사 인력이 다시 서울로 올라온다면 '지방이전'이 아니라 출퇴근 거리만 늘린 셈이다.선례는 이미 계산서를 남겼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1차 지방이전 기관 가운데 수도권행 셔틀버스를 운영했거나 운영한 기관은 60곳에 달한다. 2010~2025년 들어간 돈만 1989억 9000만원이다. 이전기관의 평균 퇴사자 수도 38명에서 60명으로 늘었다. 정부가 청사를 옮기는 동안 국민은 교통비와 정착비, 인력 이탈 비용을 함께 부담한 셈이다.금융기관이면 계산서는 더 두꺼워진다. 산은 노조가 한국재무학회 등에 의뢰한 연구는 부산 이전 시 10년간 기관 손실을 7조 39억원으로 추산했다. 수익 감소 6조 5337억원에 이전·출장 등 추가 비용 4702억원을 더한 숫자다. 노조 측 추산이라는 한계는 있지만, '옮기면 지역이 산다'는 구호만큼이나 '옮기면 무엇을 잃는가'도 계산해야 한다는 얘기다.해외로 눈을 돌리면 금융기관의 입지를 단순한 행정구역 재배치로만 보지 않는 이유가 선명해진다. 일본 금융청(FSA)은 정부 부처가 밀집한 도쿄 가스미가세키에 있고, 한국 수출입은행과 비슷한 역할을 하는 일본국제협력은행(JBIC) 본점 역시 도쿄에 자리한다. 독일 대표 정책금융기관 KfW도 수도 베를린이 아닌 금융 중심지 프랑크푸르트에 본점을 두고 있다. 나라마다 금융감독 체계와 행정구조는 다르지만 감독 대상과 거래 상대방, 시장과의 접근성을 기관 배치에서 떼어놓기 어렵다는 점은 같다.산은 부산 이전은 지난 정부에서 이전공공기관으로 지정됐지만 산업은행법 개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는 판이 더 커졌다. 금융정책을 설계하는 금융위, 금융회사를 감독하는 금감원에 산은·기은·수은 등 정책금융기관까지 한꺼번에 이전 후보로 거론된다. 예금보험공사 등 금융 유관기관의 추가 이전 가능성까지 금융권의 관심사다. 어느 기관을 어디로 보낼지조차 정해지지 않았는데 금융 시스템의 지도를 먼저 흔들고 있는 셈이다.기관마다 서울에 있어야 할 이유도 다르다. 금융위는 금융회사와 시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해야 하고 금감원은 검사·감독 현장을 찾아야 한다. 기은은 중소기업, 산은은 대기업·첨단산업 구조조정과 정책금융, 수은은 방산·원전·해외 프로젝트금융과 맞닿아 있다. 예보 역시 금융회사 부실과 예금자 보호라는 금융안전망의 한 축이다. 간판은 제각각이지만 상대해야 할 금융회사와 기업, 법무·회계 등 전문인력 상당수가 수도권에 모여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래서 이전비보다 더 큰 낭비는 불확실성일지 모른다. 지난해 금융당국 조직개편 논란 때 금융위와 금감원 직원들은 조직의 존폐와 거취를 고민했다. 두 달여 만에 개편안은 백지화됐지만 이번에는 지방이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조직이 흔들린다. 국책은행도 다르지 않다. 직원은 이직을 고민하고 노조는 투쟁에 나선다. 결정은 정치가 미루는데 불확실성의 비용은 조직이 선불로 낸다.지역균형발전이 틀렸다는 얘기가 아니다. 공공기관 이전이 지역에 일자리와 소비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 그러나 금융은 사람과 정보, 거래가 모여야 효율이 커지는 산업이다. 서울이 세계 금융중심지 순위 8위까지 올라온 것도 우연만은 아니다. 기관 주소를 바꾸는 것과 금융 생태계를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마셜이 말한 '공기'를 정부가 행정명령으로 옮길 수는 없다. 지방에 금융도시를 만들겠다면 사람과 기업, 거래와 자본이 따라갈 이유부터 만들어야 한다. 금융기관 몇 곳을 내려보낸다고 없던 금융 생태계가 생겨나는 것은 아니다. 주소는 하루아침에 바꿀 수 있지만, 금융의 공기까지 이삿짐 트럭에 실을 수는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