靑과 후보 조율 장기화 … 노태악 후임 5개월째 공석헌법상 사전 협의 의무 없어 … 서면 제청도 적법 절차대법관 증원 앞두고 임명권·제청권 경계 다시 쟁점화
  •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 조희대 대법원장이 지난해 12월 5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국법원장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서성진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대통령과 직접 만나 대법관 후보를 제청해 온 관례를 깨고 서면으로 제청하면서 여권이 '대통령 패싱'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과 법률 어디에도 대법관 제청 전 대통령과 후보자를 협의하거나 대면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는 인선 과정에서 이어져 온 관례일 뿐, 대법원장을 구속하는 법적 절차는 아니라는 의미다.

    오히려 청와대와의 이견을 이유로 제청을 계속 미룰 경우, 헌법이 대법원장에게 부여한 제청권이 사실상 대통령의 사전 동의를 전제로 작동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대법관 한 자리가 이미 5개월 넘게 비어 있고 추가 퇴임까지 임박한 만큼 조 대법원장 역시 더 이상 관례적 협의에만 매달리기 어려웠다는 분석도 이어진다.
  • ▲ 대법원. ⓒ뉴데일리DB
    ▲ 대법원. ⓒ뉴데일리DB
    ◆ '대통령 대면'은 관례일 뿐 … 헌법상 제청권은 대법원장에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조 대법원장은 전날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내달 7일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 과정에서 청와대를 방문하지 않고 서면으로 제청했다. 통상 대법원장과 대통령 측이 후보자를 사전 조율한 뒤 대면 제청했던 관례와 다른 방식이다.

    이번 서면 제청의 배경에는 장기간 이어진 인선 교착이 있다.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 1월 노 전 대법관 후임 후보 4명을 추천했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은 최종 후보를 놓고 의견을 좁히지 못했다. 청와대는 김민기 고법판사를, 대법원 측은 다른 후보를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노 전 대법관은 지난 3월 후임 없이 퇴임했고 공석은 5개월 넘게 이어졌다. 여기에 이 대법관까지 내달 퇴임하면서 제청이 더 늦어질 경우 대법관 2명이 동시에 공석이 될 가능성도 커졌다.

    대통령실과의 협의가 길어질수록 대법관 공석이 장기화하고, 대법원장의 제청권 행사도 계속 미뤄지는 구조였다.

    한편 더불어민주당은 이번 제청을 두고 "대통령 임명권에 대한 도전", "대통령 패싱"이라며 공세를 펴고 있다.

    다만 현행 헌법 제104조 2항은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국회의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할 뿐, 사전에 합의하거나 직접 만나 제청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

    이에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서면으로 제청했다는 것이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다"며 "그동안 서로 상의해 왔다면 오히려 그 관례가 권력분립 원칙에 맞는지를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법부 수장과 행정부 수장이 사전에 합의해야 할 이유가 없다"며 "대법원장은 자신의 권한에 따라 제청하고 대통령도 자신의 권한에 따라 절차를 밟으면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헌법이 제청과 임명 권한을 각각 다른 기관에 배분한 취지 역시 무색해질 수 있다고 짚었다.

    그는 "각각의 헌법기관이 행사할 권한을 따로 규정해 놨는데 사전에 모두 합의해야 한다면 헌법 규정이 필요 없어진다"며 "권력분립은 각각의 권력이 주어진 권한에 따라 견제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이 이번 제청을 비판한 데 대해서도 김 교수는 "대통령의 뜻을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도전'이라고 보는 것 자체가 민주주의적 사고와 맞지 않는다"며 "왕의 명령을 거스르면 안 된다는 군주 시대 사고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 ▲ 대법원. ⓒ뉴데일리DB
    ▲ 대법원. ⓒ뉴데일리DB
    ◆ 대법관 증원 앞두고 다시 불거진 '제청권 경계'

    이번 충돌은 대법관 정원이 현행 14명에서 26명으로 늘어나는 사법부 재편을 앞두고 불거졌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개정 법원조직법에 따라 2028년부터 대법관 12명이 단계적으로 추가된다. 대법원 구성이 대폭 바뀌는 만큼 향후 대법관 인선 과정에서 대통령의 임명권과 대법원장의 제청권이 어떻게 작동할지를 둘러싼 논란도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이번 손봉기 후보자 제청 과정에서도 후보군을 둘러싼 변수가 잇따랐다. 청와대가 선호한 것으로 알려진 김민기 고법판사는 배우자인 오영준 헌법재판관과의 관계가 재판소원 도입 이후 부담 요인으로 거론됐고,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무작위 추첨으로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이 됐다. 

    중앙선관위원을 겸하는 박순영 고법판사 역시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후 제청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평가가 법원 안팎에서 나왔다.

    결국 추천된 4명 가운데 손 후보자가 제청됐지만, 청와대와 대법원이 최종 후보를 놓고 완전한 의견 일치를 이루지 못하면서 서면 제청 논란으로 이어졌다. 손 후보자 개인의 적격성 문제보다는 양측의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한 절차 자체가 쟁점이 된 셈이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도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협의했다"며 "협의는 했지만 합의는 못했다"​고 밝혔다. 이번 제청이 청와대와의 협의 자체를 생략한 것이 아니라, 협의에도 불구하고 최종 합의에 이르지 못한 상황에서 이뤄졌다는 설명이다.

    헌법은 대법원장에게 제청권을, 대통령에게 임명권을 각각 부여하고 있다. 그동안 양측이 인선 전 후보자를 조율해 왔지만, 이를 최종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제청을 미뤄야 하는 절차로 볼 경우 사전 협의가 사실상 대통령의 승인 절차로 작동할 수 있다는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이 같은 상황은 향후 증원되는 대법관 인선에서도 재현될 수 있다. 후보자를 둘러싼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판단이 엇갈릴 경우 사전 협의를 어느 시점까지 이어갈 것인지, 최종 합의 없이 대법원장이 제청권을 행사할 수 있는지를 두고 같은 논란이 불거질 수 있기 때문이다.

    조 대법원장은 2027년 퇴임해 증원되는 대법관을 직접 제청하지는 않는다. 다만 이번 서면 제청을 계기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사전 협의가 대법관 인선에서 어느 정도의 구속력을 갖는지, 각각의 헌법상 권한과 어떤 관계에 놓이는지가 향후 사법부 재편 과정의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