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반도 분단과 침략의 원흉 3인방.스탈린, 김일성,마오쩌둥(왼쪽부터).
    ▲ 한반도 분단과 침략의 원흉 3인방.스탈린, 김일성,마오쩌둥(왼쪽부터).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능력자, 6.25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이 대표적이다.
    트루먼에게 보낸 편지에서 보았듯이 그것은 남북통일 달성을 위해 하늘이 내린 기회였다.
    자칭 ‘통일의 광신자’ 이승만은 6.25가 세가지 ‘행운’을 가져왔다고 판단, 승리를 확신한다.
    ▶첫째, 북한의 소련을 몰아내고, 오랜 ‘한국의 적’ 스탈린에 복수할 행운이다.
    ▶둘째, 최대의 행운은 한미동맹을 거부하고 미군을 철수한 트루먼의 즉각적인 참전이다. 
    ▶셋째, 예상했던 중공(中共:중국공산당)의 참전에 이승만은 또 한번 쾌재를 불렀다. 
    수천년 한만족을 괴롭힌 침략국 중국까지 박살내고 대한민국의 생존권을 확보할 역사적 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국가존망이 걸린 최악의 위기에서 좌절 대신 전화위복의 대반전을 설계하는 전략적 사고는 아무나 할 수 없다. 23세때 고종(高宗)을 지배하는 러시아에 여러번 태클을 걸어 밀약을 좌절시켰고, 임시정부 대통령시절 레닌-스탈린의 공산화 공작과 싸우며 ‘공산당의 당부당’ 논문을 발표하여 반공주의를 자유대한의 국시로 삼았으며, 태평양 전쟁시 스탈린의 한반도 공산화를 예견, 미국과 싸웠던 이승만이다. 또한 해방3년간 북한을 장악한 소련을 추방하고자 얼마나 투쟁하였던가.
    ★지정학(地政學)의 대역전! 그동안 이승만의 전략적 사고가 거둔 최대 승리는 유엔외교였다. 소련에 끌려가는 미국을 설득하여 한국독립문제를 유엔에 회부하였고, 유엔 결의에 따라 유엔관리로 세워진 나라 대한민국은 이제 유엔군이 총출동하여 공산침략군을 물리치고 있다. 
    즉, 수천년 주변강대국들의 먹잇감이던 한반도를 역사상 최초로 자유세계 전체의 지원을 얻어 지킬 수 있도록 이승만이 바꿔놓았던 것이다. 지정학의 전략가 이승만은 민족의 해결사였다.
    ★이승만의 요구를 무시했던 트루먼의 뒤늦은 고백이 이를 증명한다. 
    “내가 한국전쟁에 즉시 유엔군을 출동시킨 것은 공산국이 유엔의 권위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를 방치하면 또 다른 지역에서 도발할 것이고, 세계3차대전을 우려했다”고 그는 설명한다. 이승만이 진작부터 예견했던 냉전시대 이념전쟁의 현실화를 트루먼은 그제서야 알아챘다는 말이다. 그는 “한국을 구하려고 참전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 1950년 10월1일 38선을 돌파한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이 기념목을 세우고 '아아 감격의 38선 돌파'라는 붓글씨를 직접 쓰고있다.
    ▲ 1950년 10월1일 38선을 돌파한 국군 1군단장 김백일 장군이 기념목을 세우고 '아아 감격의 38선 돌파'라는 붓글씨를 직접 쓰고있다.
    두 명의 작전사령관--이승만+맥아더

    6.25전쟁 3년 한달간 전쟁지휘자는 2명이었다. 
    전쟁당사국 대통령 이승만은 국군통수권자이자 유엔군사령관 맥아더를 앞서는 작전사령관이다. 이 보다 더 좋은 명컴비가 어디 있으랴. 
    .독립운동 시기 맥아더 소령을 알게된 이승만은 최고의 군인이자 최상의 지성을 겸비한 엘리트에 반해 금방 이념적 평생동지로 발전한다. 건국선포식에 맥아더만을 초청한 이유이다. ‘반토막 신생국’을 지켜줄 미국대표이니까. 이승만의 용인술(用人術)이 돋보이는 사례중 하나였다. “이럴 때 써먹으려고” 아끼고 관리한 맹장 맥아더는 이승만의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승만이 ‘장군’하면 맥아더가 ‘멍군’으로 화답하는 전쟁파트너, 한반도 자유통일전쟁은 2인3각 하니문이다. 그들은 마치 손자병법(孫子兵法)과 서양전술을 공동연구한 전우 같았다. 
    특히 인천상륙작전에서 거둔 승리는 손자의 허실(虛實) 전법이 말하는 ‘인세이변(因勢而變)’의 세기적 성공이다. 
    동양학에 통달한 선비 이승만은 청년시절 한성감옥에서 임진왜란을 비롯, 청일전쟁 등 조선이 겪은 외침역사를 연구 번역책을 남겼다. 웨스트포인트 육사 우등생 맥아더 역시 “내 책상엔 손자의 책이 늘 놓여있었다”고 회고록에 전한다. 
    이승만의 국군작전권 이양으로부터 그것이 한미동맹에 각인되기까지 두 명의 작전사령관이 엮어낸 기적(Miracle)의 서사(敍事)는 수많은 에피소드를 남긴다.  

    ■ 장면-1 <권총 뽑은 대통령>

    망명 요구하는 미국대사에게 권총 들이대다

    스탈린이 김일성을 네세워 남침한지 두 달째 8월14일, 미국대사 무초가 이승만 대통령을 찾아왔다. 공산군이 낙동강 전선을 압박하며 대구를 위협하던 때였다.
    “대통령 각하, 정부를 제주도로 옮기시오. 최악의 경우 남한 전체를 공산군이 점령한다 해도 귀하의 망명정부는 미국이 지켜낼 것이니 속히 결심하시는 것이...” 
    무초가 다급하게 떠드는 그 순간, 이승만이 허리에 찬 모젤 권총을 빼들었다.
    “만약 적이 내 앞에 나타나면 이 총으로 내처를 먼저 쏘고, 적을 죽이고, 나를 쏠 것이오. 무슨 일이 있어도 정부를 한반도 땅에서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소. 총궐기하여 싸울 것이오. 결단코 도망치지 않겠단 말이오” 이승만은 권총을 흔들며 단호히 소리치는 것이었다.
    무초 대사는 혼비백산 하얗게 질린 얼굴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크게 놀랐던 부인 프란체스카는 그날 밤 악몽을 꾸었다. 
    ‘대통령이 나를 쏘았다. 그런데도 죽지는 않고 피만 흘리며 공산당에게 이리저리 끌렸다니다가 소스라쳐 잠이 깨었을 때 온몸이 식은 땀에 젖어있었다’고 일기에 적어놓았다.
    낙동강 전선이 무너지면 없어지는 대한민국, 그 판에 미국이 망명을 요구하다니...공산군에게 한국을 내주겠다는 트루먼 정부에 이승만은 다시 한번 이를 갈았다. 
    만약 그때 대통령이 미국 요구에 응했다면? 아찔한 풍전등화(風前燈火)의 위기, 공산군의 남침 두 달 간 두 번이나 ‘없어질 뻔한 나라’를 지켜낸 이승만이다. 

  • ▲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 인천상륙작전을 진두지휘하는 맥아더 장군.
    ■ 장면-2  <거인들의 하모니>

    “중앙청 태극기는 국군이 먼저 꽂아라”
    “38선은 국군이 먼저 돌파해야 한다“

    성공확률 5,000대 1이라는 인천상륙작전을 맥아더가 기획하자 뛸 듯이 기쁜 이승만은 일심동체로 총력전을 감행한다. 미합참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통일을 위한 건곤일척의 대모험은 보기좋게 성공, 맥아더는 세계전쟁사에 또 다른 세기적 승전보를 추가하였다. 이 작전이야말로 손자병법 그대로다. 공기무비(攻其無備) 출기불의(出其不意)-인천은 낙동강에 집중한 공산군이 무방비로 방치한 곳, 불의의 기습을 받은 공산군은 일패도지(一敗塗地) 완전몰락이다.

    ”중앙청 태극기는 유엔군보다 먼저 국군이 꽂아라“ 이승만은 늘 이런 식이다.
    해병대 박정모 소위 등 국군이 깊은 밤 ‘9.28 서울탈환’의 깃발을 꽂은 그 다음날 9월29일 공산군의 포화에 검게 그을린 중앙청 중앙홀에서 환도식(還都式)이 열렸다. 주기도문으로 기도를 마친 맥아더가 감개어린 눈길로 노대통령의 손을 잡는다. 
    ”대통령 각하, 이제 귀하의 수도를 돌려드리게 되어 참으로 기쁩니다.“
    맥아더는 약속을 지켰다. 2년전 건국선포식부터 만날 때마다 ”만약 귀국이 침략당하면 캘리포니아가 당한 것처럼 미국이 구해낼 것“이라고 맥아더는 연신 다짐했던 것이다. 
    감격의 눈물을 흘린 이승만은 맥아더 장군 가슴에 최고무공훈장을 달아주었다.

    ”고맙소 장군, 이제부터는 하루바삐 북한을 수복해야지요“ 
    이승만은 한시가 급하다. ’유엔이 세운 나라, 유엔이 통일까지‘ 책임지라는 말이다.  
    맥아더는 알고 있다. ‘북진통일’을 노래하는 이승만에게 수도 서울을 넘긴 것도 유엔방침 위반, 수복지역은 유엔군 관할이거늘 소신에 따라 주저없이 돌려주었다. 이제부터 북진이다. 그러나 38선을 넘는 진격은 유엔의 새로운 결정을 필요로한다. 왜냐하면 6.25직후의 유엔 결의안 규정은 ‘원상회복’, 즉 침략자를 38선 이북으로 몰아내고 멈춰야하기 때문이다. 

    이승만이 이를 모를 리 없다. 그러기에 트루먼에게 ‘원상타파’를 주장하지 않았던가.
    환도식후 이승만은 33세 국군총사령관 정일권(丁一權,1917~1994)) 소장을 따로 불렀다.
    ”유엔군을 믿고 기다릴 시간이 없소. 우리 국군이 38선을 먼저 돌파해야겠소“
    맥아더의 북진을 촉진하려면 이승만이 선수를 쳐서 행동해야한다. 미국을 움직이기 위해서다. 
    ”각하, 유엔사령관 지시가 없으면...“ 정일권은 난처하다. 지금까지 전작권(戰作權)을 가진 유엔사령관의 지휘를 받아온 국군인데 어찌 단독으로 진격명령을 내린단 말인가. 
    ”국군통수권자가 누구요? 이 별은 누가 달아주었소?“ 
    젊은 장군의 계급장을 만지는 이승만은 다정한 아버지 미소를 던진다.
    ”반공 충성!“ 정일권은 전선으로 달려갔다. 그의 고향도 속히 탈환해야 할 함경북도 아닌가. 
    정일권의 3사단이 최초로 38선을 뚫었다. 동향의 동갑내기 김백일(金白一) 장군이 선봉에 서서 ‘38선 돌파 기념’ 글을 써서 말뚝까지 세웠다. 
    김일성 남침 97일만에 북진전쟁으로 반전시킨 국군은 질풍처럼 북으로 북으로 압록강을 향해 진군한다. ”통일은 우리 부대가!“ 사단끼리 경쟁까지 붙었다.
    그날이 10월1일, 휴전후 1956년 ’국군의 날‘로 지정되었음은 잘 아는 역사다. 

    ▶이때 ’전작권‘ 문제는 어찌 되었느냐고? 
    한마디로 철부지 같은 질문이다. 전작권이 뭔지도 모르고, 이승만-맥아더가 어떤 관계인지 전혀 알지못하는 무식의 폭로에 불과하다. 전쟁당사국 대통령 이승만의 38선돌파 명령은 국군통수권자로서 당연한 것, 맥아더를 대신한 유엔사령관의 명령이나 같다. 
    단하나의 목표는 통일 승리! 일심동체 두 전쟁지도자는 누가 유엔사령관이고 누가 한국대통령인지 모를 지경이었다. 다시 말하건대 전작권 일원화는 연합군의 기본상식, 그것은 국적문제도 주권문제도 아니고 자존심도 아니며 오로지 ”전쟁승리 작전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임을 한국정치판 우물안 개구리들은 언제나 깨달을 것인가.  

    ★맥아더의 북진=유엔군은 1주일 뒤 10월8일에야 북진을 개시한다. 
    당초 ’38선 원상회복‘을 목표로 했던 트루먼 대통령도 어쩔 수 없이 ”유엔군의 전투 범위를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한다“는 데 동의, 유엔이 수정 결의안을 통과시킨 날이 7일이었다. 
    이 ’10.7결의안‘은 한반도 통일과 경제부흥 지원까지 약속한 것으로서, 뒷날 이승만 대통령이두고두고 ’10.7결의‘를 들고나와 대미투쟁을 벌이게 된다.  
    ★김일성 평양 탈출=10월12일 ‘조국의 위기에 처하여 전 인민에게 고함’이란 연설을 녹음한 김일성은 ”방송하라“ 내던지고는 황급히 평양을 탈출한다. 백선엽 장군의 평양 입성 일주일 전, 전쟁도발자 전범은 압록강 국경 만포진(滿浦鎭)을 향해 깊은 산속을 헤맨다. 
    패장의 탈주는 처참하였다. 경호부대가 집단이탈 미군에 투항하고 호위대장도 배신, 김일성의 전용차를 빼앗아 타고 사라진다. 스탈린의 선물이라는 그 리무진은 지금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되어있다. 천신만고 만주로 달아난 김일성은 박헌영과 연명으로 중공 마오쩌둥에게 SOS 편지를 날린다.    

  • ▲ 9.28 서울수복후 환도식에서 맥아더장군의 공로를 치하하며 훈장을 수여한 이승만 대통령. 오른쪽 문서는 맥아더장군이 탈환한 서울을 이승만대통령에게 반환한다고 본국에 통고한 보고문.
    ▲ 9.28 서울수복후 환도식에서 맥아더장군의 공로를 치하하며 훈장을 수여한 이승만 대통령. 오른쪽 문서는 맥아더장군이 탈환한 서울을 이승만대통령에게 반환한다고 본국에 통고한 보고문.
    ■ 장면-3 <너무나 짧았던 꿈 >

    감격의 평양 연설 “자유화 총선거” 북한해방 선언

    10월 한달은 ’통일병자‘ 이승만 대통령에게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다. 통일이 눈앞이기 때문이다. 백선엽의 1사단이 평양을 탈환(10.19)하고 1주일 뒤 26일 육군 6사단이 드디어 압록강에 도달하였다. “통일 만세“를 부르짖는 병사들이 강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께 갖다드리자”며 트럭에 올라 서울로 달렸다.  그 물을 받은 대통령 이승만의 감격을 그 무엇에 비길 수 있으랴. 
    소련 때문에 남한만의 반토막 건국을 감수, 이런 날을 학수고대했던 이승만은 유엔군도 백두산을 향해 진격하여 혜산진이 멀지않았다는 보고를 받자 벌떡 일어섰다.  
    “아직은 위험합니다” 만류를 뿌리친 이승만의 마음은 평양으로 북한으로 달려간다.  
    “더 기다릴 수 없어. 평양 가서 북한 동포들을 안심시켜야 해.” 
    건국 대통령은 이제 ’통일 대통령‘이다. 아직도 ’해방‘을 모르는 북한 동포의 얼어붙은 마음부터 공산주의 질곡에서 해방시켜야 한다. 빠를수록 자유통일 민족통합이 빨라지기 때문이다.
    10월29일 한강 여의도에서 군용기에 오른 이승만은 대동강 능라도까지 55분, 민족의 숙원 통일의 장밋빛 날개에 실려 적도(敵都) 평양에 개선장군처럼 입성하였다.
    그날 평양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 거리마다 “국부 이승만 만세” 플래카드와 참전국기들이 나부꼈으며 태극기와 성조기를 휘두르는 5만여 시민들은 눈물을 흘리며 만세를 열창하였다. 평양시청 광장에서는 숨어 지내던 조만식의 조선민주당 등 우파들이 앞장서 준비한 시민환영대회가 열리고 주변 교회당마다 ’자유의 종소리‘가 힘차게 울려퍼지는 순간, 이승만이 나타났다.
    그것은 이승만환영대회가 아니라 바로 남북통일 기념식 같았다. 
    소련군의 만행과 공산당 약탈에 모든 것을 상실한 동포를 ’통일국민‘으로 끌어안는 대통령의 열변은 길어졌다. 이승만 특유의 동포애가 넘치는 북한해방 연설은 안타깝게도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었기에 여기 전문을 들어보자.

  • ▲ 북한군의 남침 3개월만에 국군이 평양을 탈환, 이승만 대통령(오른쪽사진)은 10월29일 평양으로 날아가 수만명의 동포들에게 북한 해방과 자유통일,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말자
    ▲ 북한군의 남침 3개월만에 국군이 평양을 탈환, 이승만 대통령(오른쪽사진)은 10월29일 평양으로 날아가 수만명의 동포들에게 북한 해방과 자유통일, 그리고 '다시는 헤어지지말자"고 감격의 연설을 토했다.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자유통일 다 함께 맹서합시다”

    이승만 평양시청 연설
    본인이 39년 만에 다시 대동강을 건너 이 평양을 찾아보게 되니 감개무량하여 무한히 기쁩니다. 여러분,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시었습니까.
    제2차대전후 적국 일본이 패망하자 나는 자유조국이 독립하여 즐거운 신생활을 할 줄 알았더니, 세계정복을 꿈꾸는 소련이 하등 정당한 이유도 없이 비법적으로 우리나라를 양단하여 38선이란 운명의 선을 그었습니다. 소련은 그리고 김일성 공산도당을 시켜 한국의 소련 예속화를 통한 충성을 다하도록 교사하는 한편, 살인방화 약탈을 감행하도록 하여 아름다운 우리조국 향토를 더럽혔습니다. 
    그동안 2백만 이상의 북한 동포들이 재산과 가족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왔으며 우리는 없는 것도 서로 나눠 먹으면서 화평하게 살아왔습니다. 이북에서 피난 온 동포들은 그 동안 대한민국의 헌법을 준수하고 민주의 선두에 서서 공산당의 비행을 지적하며 눈부신 활동을 해왔습니다. 

    소련은 소위 모스크바 삼상(三相)결정이라 하여 우리나라를 신탁통치하에 두어 자기의 위성국가화 하려고 갖은 모략과 술책을 다하여 왔으나 우리는 죽음을 걸고 한마음 한뜻으로 싸워 왔습니다. 좌우합작이니 뭐니 하는 방법을 쓰다 못해 실패에 돌아가자, 소련은 무기를 김일성에게 주어 급기야는 지난 6월25일 38선을 넘어 대한민국에 침범하야 수도 서울을 점령하고 전국을 정복하려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돈을 가지고 무기를 사려해도 여러 가지 국제관계상 무장을 못하였습니다. 소련이 대한민국의 무비(武備)가 약한 것을 보고 침략을 한 것은 어느 면 그들에게는 옳았다고 하겠으나, 그러나 그들은 목전의 침략에 눈이 어두워 대한민국 뒤에 53개국의 자유민주진영이 있음을 몰랐던 것입니다.
    보시지요. 우리 우방 53개국의 평화애호 국가들은 24시간 내로 자유를 위하여 총궐기하여 오늘날 우리 국군을 도와 용감히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소련은 조그만 한 나라를 위하여 전 세계가 다 같이 일어날 줄은 몰랐을 것이요. 지금은 머리를 싸매고 앓고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이제 유엔의 지원을 얻어 다시 통일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떠한 나라일지라도 우리를 다시 분단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공산당은 한국에서 축출되었으며 앞으로 중공이나 소련이 나온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등 겁낼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자유와 정의를 위하야 싸울 뿐이요, 우리가 합하면 감히 덤벼들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 나와 같이 맹서 합시다.
    자유와 독립과 민주주의를 위하여 싸울 것을!
    우리 대한민국은 앞으로도 국토를 튼튼히 방위하기 위하야 강력한 군대를 보유할 것이며
    유엔은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 세계는 우리 대한사람들이 얼마만큼 훌륭히 일을 잘 해나갈 것인가 많은 기대를 가지고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루속히 부흥건설에 노력하지 않으면 아니 됩니다. 
    여러분, 이제는 도지사도 중앙에서 임명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분 자신의 의사로 선량한 대표를 선출하여 임명할 것입니다. 멀지 않아 도지사 선거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여러분에게 가장 긴요한 것은 의식주인데 우리 다 같이 모자라는 것은 나눠먹고 서로서로 살아 나갑시다. 정부는 하루속히 교통이 통하는 대로 쌀과 광목(廣木:무명옷감)을 남에서 가져와서 여러분에게 나눌 작정인데, 모자랄 경우에는 외국에서 쌀과 광목 같은 것을 우선 사다가 보내 드리려고 합니다.
    정부는 현재 만반 준비를 가지고 여러분과 같이 한 살림을 하려고 하는데 유엔을 비롯한 국제적인 관계와 시기를 기다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는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과 맥아더 장군이 우리와 뜻을 같이 하고 우리를 지지하고 있으므로 그다지 멀지 않습니다. 현재 무초 대사가 워싱턴에 가서 모든 것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유엔도 앞으로 우리들 도와 만사를 잘 되도록 할것입니다.

    여러분!
    이제 와서 누가 남쪽사람이니 북쪽사람이니 하거든, 우리 대한민국의 앞날을 저해하는 사람으로 지목해두어 규탄하십시오. 그리고 언제든지 본인(대통령)이 필요하시거든 청해 주십시오. 다 같이 의논하여 살아가십시다.
    끝으로 여러분이 당장 필요한 화폐 사용도 관계자들에게 일러두었으니 상의껏 경제재건을 위하야 노력하여 주십시오. 
    자, 여러분! 다시 한 번 나와 같이 맹서합시다.
    통일된 자유 조국을 위하야 싸워나갈 것을!

    ★평양 주민들은 “대만힌국 만세, 이대통령 만세”를 연호하며 울부짖었고, 연설을 끝낸 이승만은 만류도 뿌리치고 시민들 속으로 들어가 얼싸안고 눈물을 흘리며 호응하였다. 
    이 순간 이승만은 완벽한 통일대통령이다. 이 역사적인 이승만의 평양방문 행사를 경쟁적으로 대서특필한 신문들을 보면 ’삼천리 강산은 드디어 하나다!‘ 남북통일은 끝났으며, 이 통일이 다시 산산조각 날 줄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다. 

    ■ 장면-4 <전쟁중 대미투쟁>

    미, 북한에 유엔군정 실시방침...이승만 “내정간섭 말라” 단호히 거부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서울에 돌아오니 날벼락같은 뉴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미국이 북한에 유엔 군정(軍政)을 실시, 북한 총선거를 시행할 방침임을 밝힌 것이다. 
    이승만은 격분했다. 이튿날 30일 아침, 경무대에서 내외기자 회견을 열고 <한국 통일문제에 관하여>라는 긴급담화를 발표한다. 
    해방후3년간 미군정이 남한을 공산당세상으로 만들어놓더니, 또 북한까지 망칠 셈인가. 건국헌법은 ’한국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로 규정해놓았고, 국회엔 북한 의원들 자리 100석까지 비워두고 있다. 이런 대한민국을 제쳐놓고 미국이 왜 또다시 내정간섭을 하려는가? 
    이승만의 담화요지는 한마디로 “미국은 북한에 손대지 말라”는 강력한 경고였다. 
    ⚫한반도의 지역적 통일과 정치적 해방 및 부흥은 우리에게 맡겨라.
    ⚫미국은 유엔의 ’10.7결의안‘에 따라 협력-지원만 해달라.
    ⚫탄압에 쫓겨 월남한 북한동포들이 북한 민주화의 주역이 돼야한다. 
    ⚫공산당정부기관이나 공산당원은 결단코 재사용-재기용할 수 없다.
    ⚫이북5도 도지사들은 북한동포들이 직접 자유선거로 선출해야한다.
    이승만 대통령은 대한민국 정부수립시 남한 도지사들의 임명과 함께 ‘이북 5도’(함경남북, 평안남북, 황해) 지사들을 임명했지만 그 취지는 이제 통일된 마당에 소멸했다는 것을 밝히고, 북한 동포들에게 자유민주주의 선거를 대한민국이 실시해야만이 남북통일의 목적에 부합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주도의 자유통일이 성공한다는 말이다. 
    이렇게 하여 이번에도 이승만은 미국의 일방적 내정간섭 시도를 사전에 봉쇄해버렸던 것이다. 

  • ◆중공군 참전하자 “잘됐다” 무릎을 친 이승만

    눈앞에 펼쳐지는 통일의 황홀한 꿈, 하지만 그 꿈은 너무나 짧았다. 
    이승만은 미처 몰랐다. 그 시간 압록강을 몰래 도강한 중공군이 북한군에 합류하고 있음을! 중공의 참전은 예상보다 너무 빨랐으며, 그들은 낮에는 숨고 밤에만 나타나 무장이 취약한 한국군을 집중공격하는 중공식 게릴라 전법을 구사하였기 때문이다.
    “오히려 잘됐다. 이런 때를 기다렸어. 이 참에 중국공산당마저 뿌리를 뽑아야지”
    중공군참전 보고를 받은 이승만 대통령의 첫 반응이 손자병법 뺨치는 전략가의 결단이다.
    이승만과 맥아더는 북진 초반부터 최악의 경우 중공군 참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였다. 국공내전으로 피폐해진 중공군이 얼마나 강하랴...한미연합군과 유엔군의 상대가 되지 못할 것, 맥아더는 완승을 장담하였다. 이승만은 “미국만 내 말을 듣는다면” 남북통일 달성은 물론, 아시아의 공산당을 말끔히 청소할 때가 왔다고 믿었다. 그 미국이 동지 맥아더이므로!
    과연 이승만이 설계하는 자유아시아는 이 발걸음으로 탄생할 것인가. 
    그러나 어쩌랴, 역사란 요물은 언제나 설계자의 뜻대로 움직이지는 않는 법이다. 
    이번엔 스탈린 대신 마오쩌둥! 새로운 ‘분단의 원흉’이 나타났다. 
    청일전쟁에 쫓겨난 ‘500년 종주국’ 중국이 65년 만에 붉은 깃발을 들고 밀려들어와 한반도 자유통일을 가로막는 것이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