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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수조 서울시립대 객원교수. (사진=본인제공) ⓒ뉴데일리
중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CXMT의 DDR5 D램 수율이 90%를 넘어섰다는 보도가 나왔다. 삼성전자의 92~93%와 불과 몇 %포인트 차이라는 설명까지 붙었다.
이 숫자를 그대로 믿을 필요는 없다. 독립적으로 검증된 수율 자료가 아니고, CXMT의 17나노급 DDR5와 삼성전자·SK하이닉스의 최신 D램을 수율 하나만 놓고 비교해 기술 격차가 2~3%라고 말하는 것도 무리다.
그래도 그냥 넘길 뉴스는 아니다.
중요한 것은 90%라는 숫자 자체보다 중국이 DDR5를 시험 생산하는 단계를 지나 경제적으로 대량생산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반도체에서 수율은 기술이면서 경제성이다. 같은 웨이퍼에서 정상 칩이 60% 나오는 공장과 90% 나오는 공장은 원가가 전혀 다르다. 수율이 90% 수준에 들어가면 충분히 범용시장에서 가격으로 싸울 수 있는 기반이 생긴다.
CXMT의 세계 D램 시장점유율은 2025년 약 7.7%였고 최근에는 8% 안팎까지 올라와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에 이어 세계 4위권이다. 아직 중국 내수 비중이 크지만 HP, 에이서 등의 일부 PC에도 들어가기 시작했다.
중국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전자제품 생산기지와 거대한 내수시장이 있다. 처음부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최고급 제품을 이길 필요가 없다. 중국산 PC와 서버, 스마트폰에 DDR4와 DDR5를 공급하면서 생산량을 늘리고 수율을 높이면 된다. 가격을 낮춰 범용시장부터 차지하고, 거기서 번 돈과 경험으로 다시 위를 추격한다.
한국은 LCD와 태양광에서 이미 이렇게 중국에 밀려났다.
처음에는 품질이 조악해서 쓸 수도 없었다. 그래도 싼 가격으로 계속 생산해 생산 규모를 갖춘다. 그러다 보면 품질이 따라왔다. 마지막에는 압도적인 생산능력으로 가격 자체를 끌어내려 시장을 석권한다.
메모리에서도 같은 경로가 반복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한국에는 아직 HBM이라는 깊은 해자와 높은 성벽이 있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HBM3E에서 HBM4, HBM4E로 올라가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HBM 개발을 시작했다. 당장 엔비디아의 최첨단 GPU용 HBM4를 만들 필요는 없다. 중국산 AI 가속기에 사용할 HBM부터 국산화하면 된다. 생산하고 실패하고 수율을 올리면서 다음 세대로 올라간다.
이 모든 과정에서 중국 정부와 지방정부의 막대한 정책금융과 자금 지원이 뒤를 받친다.
이런 시기에 한국은 정반대 방향의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용인에는 이미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가 건설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평택에 거대한 생산기지를 가지고 있고, SK하이닉스는 이천과 청주에서 생산하면서 용인에 다시 4개 팹을 계획하고 있다.
그런데 여기에 정부는 호남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총 800조원을 투자해 각각 2개씩, 팹 4기를 추가하는 구상을 발표했다.
흔히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마라"고 한다. 투자에서는 맞는 말이다. 주식 하나가 폭락할 위험 때문에 자산을 분산한다. 공장도 자연재해나 전쟁 같은 위험을 생각하면 어느 정도 지리적 분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생산기술의 세계에서는 다른 원리가 작동한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반도체가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산업이다.
애초에 IC(Integrated Circuit), 즉 집적회로라는 이름 자체가 '집적'의 가치에서 나왔다. 트랜지스터와 저항, 배선을 하나씩 따로 만들던 것을 하나의 작은 칩 위에 모으자 배선은 짧아지고 속도는 빨라지고 전력소모와 비용은 줄었다. 수천 개가 수백만 개가 되고 이제는 수백억 개의 트랜지스터를 한 칩에 집어넣는다.
반도체 발전의 역사는 흩어져 있던 것을 더 작고 더 가깝게 모아온 역사다.
산업 생태계도 다르지 않다.
반도체 공장 옆에 장비회사가 있고, 소재업체가 있고, 부품업체가 있고, 대학과 연구소가 있고, 수십 년 경험을 가진 엔지니어가 모여 있을수록 문제가 생겼을 때 해결 속도가 빨라진다.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드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최첨단 D램 팹 하나에는 공정통합, 소자, 포토, 식각, 증착, CMP, 계측, 수율, 장비 전문가가 필요하다. 이들은 대학에서 반도체 전공자를 몇천 명 더 배출한다고 바로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아니다.
수율 90%를 92%로 끌어올리는 마지막 몇 퍼센트는 교과서에서 나오지 않는다. 수없이 웨이퍼를 만들고 깨뜨리며 쌓은 경험에서만 나온다.
장비와 협력업체도 마찬가지다. ASML 노광장비 몇 대를 가져다 놓는다고 팹이 돌아가는 것이 아니다. 수백 종류의 제조·검사 장비와 이를 설치하고 조정하고 유지하는 엔지니어, 소재·부품업체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전력과 물도 필요하다.
호남 팹 4기의 예상 전력수요는 약 6.3GW, 용수는 하루 65만톤이다. 연간 전력소비량으로 환산하면 약 55TWh다. 거대한 발전설비와 광역 용수망을 새로운 지역에 다시 건설해야 하는 규모다. 정부도 호남 반도체 계획과 관련해 2030년까지 하루 65만톤의 용수를 확보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결국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용인·평택·이천·청주를 확장하면서 호남까지 동시에 건설한다면 돈만 나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이 나뉜다. 장비가 나뉜다. 협력업체가 나뉜다. 전력망과 용수 건설 역량이 나뉜다. 기업 경영진의 집중력과 정부 행정력까지 나뉜다.
투자 포트폴리오에서는 분산이 위험을 낮춘다. 그러나 반도체 생산에서는 일정 수준을 넘어선 분산이 오히려 경쟁력을 낮출 수 있다. 클러스터가 만들어내는 집적의 이익이 분산의 위험회피 효과보다 훨씬 크기 때문이다.
세계 반도체 강국들이 클러스터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중국은 CXMT를 집중적으로 키우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따라오고 있다. 실제로 CXMT는 중국 정부와 지방정부가 오랜 기간 자금을 투입해 육성한 대표적 국가전략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기업이 이미 추진하고 있는 거대한 투자를 완성하기도 전에 다시 정치적 욕심으로 생산거점을 넓히려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방 활성화를 명분으로 반도체 팹을 흩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다.
HBM4와 HBM4E, 차세대 D램에서 중국이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 격차를 만드는 몇 년이 한국 메모리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다. 이미 형성된 용인·평택·이천·청주의 생태계를 가장 빠르게 완성하고 최고급 인력과 장비를 더 높은 밀도로 집중해야 할 때다.
CXMT의 DDR5 수율 90%가 정확한지는 시간이 확인해 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생각보다 빠르게 따라오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말은 투자자의 원칙이다.
반도체에는 집적회로(IC)라는 그보다 더 오래된 원리가 있다.
IC는 더 작게, 더 가깝게, 더 밀도 높게 모을수록 강해진다.
중국이 따라오는 지금, 한국 반도체에 필요한 것은 분산이 아니라 집적(integration)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