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타카는 잃어버린 나를 찾으러 가는 곳희미한 빛처럼 삶의 방향을 비추는 마음결국 우리를 돌아가게 하는 것은 사람우리에게 돌아갈 이타카는 무엇인가
  • ▲ 영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 역을 맡은 맷 데이먼. ⓒ사진 제공=유니버설 픽쳐스/위티
    ▲ 영화 오디세이에서 오디세우스 역을 맡은 맷 데이먼. ⓒ사진 제공=유니버설 픽쳐스/위티
    영화 《오디세이》를 보고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문학동네, 2023)를 떠올렸다.

    한쪽에는 3000년 전의 영웅서사가 있고, 다른 한쪽에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작고 여린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곱 편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영화관을 나오는 순간, 책의 제목 하나가 오래 남았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오디세우스는 10년을 떠돈다. 트로이 전쟁은 이겼지만 귀향은 끝나지 않았다. 바다를 건너다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분노를 사고, 괴물들을 만나고, 칼립소와 세이렌의 유혹에 흔들린다. 부하들의 신뢰도 잃는다. 한때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잊을 뻔한다. 그런데도 그는 돌아간다.

    10년 동안 이타카는 그의 눈앞에 없었다. 지도 위의 한 점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보이지 않는 그곳을 향해 나아간다. 사람은 어쩌면 보이지 않는 것을 믿을 때 가장 멀리 갈 수 있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의 인물들은 거대한 운명을 살아가지 않는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 잠깐의 눈빛, 오래전 건네받은 마음 같은 작은 것들이 삶에 남는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순간이 시간이 흐른 뒤 한 사람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빛은 언제나 환할 필요가 없다. 너무 희미해서 빛이라고 부르기 어려운 것도 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는 그 정도면 충분할 때가 있다.

    오디세우스에게도 그런 빛이 있었을 것이다. 그를 바다 위에서 끝내 놓아주지 않았던 것은 영웅으로서의 명예가 아니라, 돌아가야 할 사람들이었다. 아내 페넬로페와 아들 텔레마코스가 있는 곳.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을 기억하고 있는 곳.

    그러니 귀향은 '장소'로 돌아가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자신'을 다시 데리러 가는 일.

    그 과정에서 사람은 수많은 타인을 만난다. 상처를 주고받고, 뜻밖의 친절에 기대고, 오래도록 잊지 못할 말을 품는다. 결국 우리는 혼자 돌아오지 않는다. 우리가 지나온 사람들을 조금씩 데리고 돌아온다.

    그래서 이타카는 단순한 섬이 아니다. 한 사람이 자신이 누구였는지를 기억할 수 있는 장소다.

    하지만 현대의 삶에서 이타카는 점점 희미해진다. 사는 곳은 있어도 돌아갈 집은 없고, 아는 사람은 많아도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다. 하루를 건너는 데 급급한 나머지 내가 어디를 향하는지 잊을 때도 있다.

    어쩌면 그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거창한 신념이나 삶을 구원할 거대한 목표가 아닐지도 모른다. 문득 떠올릴 수 있는 한 사람, 다시 듣고 싶은 목소리, 끝내 지키고 싶은 약속, 한 번쯤 돌아가 보고 싶은 풍경. 그 정도의 빛이면 충분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최은영의 소설이 조용히 건네는 것도 어쩌면 비슷한 이야기일 것이다. 사람은 혼자서 자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남긴 마음을 품고 살아가는 존재라는 것.

    그러니 귀향은 반드시 먼 길을 건너야 하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내가 돌아갈 곳이 있는지, 그곳을 여전히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를 묻는 일일 것이다.

    오디세우스에게 그것은 이타카였다.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무엇일까.

    돌아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돌아가고 싶은 곳이 있는가. 

    어쩌면 그것이 우리가 가진 이타카일 것이다.
  • ▲ 맷 데이먼. ⓒ사진 제공=유니버설 픽쳐스/위티
    ▲ 맷 데이먼. ⓒ사진 제공=유니버설 픽쳐스/위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