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원유 수송 길목 불안에 유가 1%대↑파키스탄 중재에도 미·이란 입장 차 팽팽…장기전 우려
  • ▲ 예멘 하니시섬 인근 홍해를 통과하는 상선.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연합뉴스
    ▲ 예멘 하니시섬 인근 홍해를 통과하는 상선. 기사 내용과 직접 관련 없음.ⓒ연합뉴스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 입구에서 상선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르면서 미국과 이란 간 긴장이 다시 고조되고 있다. 주변국의 중재로 협상 가능성은 남아 있지만 양측이 핵심 쟁점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으면서 종전 협상의 동력도 갈수록 약해지는 모습이다.

    11일(현지시간) 주요 외신에 따르면 이날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미군이, 홍해 입구인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는 예멘의 친이란 반군 후티가 각각 상선을 공격했다.

    미 중부사령부는 파나마 선적 선박이 대이란 해상봉쇄를 위반하려 했다며 미 해군 MH-60 헬리콥터가 공대지 정밀유도 미사일인 헬파이어 2발을 발사해 선박을 무력화했다고 밝혔다.

    해당 선박은 오만만으로 진입하던 중 파키스탄 연안에서 공격받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선원 17명은 모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비슷한 시각 호르무즈 해협의 대체 항로인 홍해 입구 바브엘만데브 해협에서도 공격이 발생했다. 예멘 정부에 따르면 후티 반군은 이집트 회사 소유의 소형 화물선 티하마호를 향해 탄도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이 공격으로 선원을 포함해 6명이 숨졌다.

    지난 2월 28일 이란 전쟁이 발발한 이후 후티의 상선 공격으로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란이 이끄는 이른바 '저항의 축'에 속한 후티는 반미·반이스라엘 노선을 내세우고 있다. 지난달 20일에는 홍해에서 사우디아라비아를 상대로 해상봉쇄를 전격 선언한 뒤 선박 공격을 이어가고 있다.

    후티의 공격으로 홍해 항로까지 불안해지면서 호르무즈 해협 통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하는 이란의 영향력도 커지고 있다. 세계 원유 수송의 핵심 길목인 호르무즈 해협과 홍해가 동시에 위협받으면서 국제유가도 다시 상승했다.

    이날 ICE선물거래소에서 10월 인도분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배럴당 88.91달러로 1.4% 상승 마감했다. 뉴욕상업거래소에서 9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전장보다 1.3% 오른 배럴당 83.20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다만 미국과 이란 사이에서 중재에 나선 파키스탄에서는 협상 진전을 시사하는 발언도 나왔다.

    카와자 아시프 파키스탄 국방부 장관은 이날 블룸버그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이란이 "모종의 합의"에 근접했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 2~3일간 나타난 신호들은 양측이 어떤 형태로든 합의에 도달하기 직전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란 관영 SNN 통신도 모신 나크비 파키스탄 내무부 장관이 이날 테헤란을 방문해 이란 관리들과 만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실제 협상 재개로 이어질 만한 구체적인 돌파구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양측의 요구 조건이 크게 엇갈리고 있어서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의 조건으로 중동 내 미군 철수와 대이란 해상봉쇄 해제, 전쟁 배상금 지급, 대이란 제재 및 동결자산 해제, 이란의 대리세력에 대한 공격 중단 등을 요구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의 조속한 재개방이 필요한 미국으로서는 사실상 미국의 패전을 전제로 한 이란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 이 때문에 이란이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부담을 키우기 위해 장기전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측은 대외적으로 강경한 메시지를 쏟아내며 기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리얼 아메리카 보이스'와의 인터뷰에서 경제 제재와 추가 군사 행동 가능성을 동시에 거론했다.

    그는 "우리가 그들의 자금을 통제하고 있다. 우리가 내버려 두기만 해도 그들은 실패할 것"이라며 경제적 압박을 강조했다. 동시에 또 다른 선택지로 이란을 "정말, 정말 강하게 타격하는 것"을 언급하며 추가 군사 행동 가능성도 열어뒀다.

    이란 역시 강경파를 앞세워 맞섰다. 혁명수비대 사령관 출신의 초강경파로 이란 최고국가안보회의(SNSC) 수장에 오른 모흐센 레자이는 미국이 전쟁을 끝내고 동결된 이란 자금을 반환하지 않는 한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레자이는 중국 대사와의 면담에서 "미국은 페르시아만과 호르무즈 해협, 오만만의 불안정을 초래하는 근원"이라며 "이란에 불법적인 전쟁을 강요해 지역 전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이어 "호르무즈 해협은 미국이 태도를 바꾸고 이란의 조건을 수용할 때까지 절대 열리지 않을 것"이라며 대이란 제재 해제와 동결자금 반환을 거듭 압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