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 버스 개조해 대학가 임시주택 제안"황 의원부터 먼저 살아보라" 분노 확산논란 커지자 "순수한 아이디어" 급해명
  • ▲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 황희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청년 주거난의 해법으로 '폐기 버스'가 등장했다. 더불어민주당 황희 의원이 사용 연한이 끝난 버스를 주거 공간으로 개조해 대학가 청년들에게 제공하자는 이른바 '버스 하우스' 구상을 내놓으면서다.

    정부가 조만간 주택 공급 대책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나온 여당 중진 의원의 제안이었다. 하지만 청년층의 반응은 싸늘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게 버스냐", "그렇게 좋은 집이면 황 의원부터 살아보라"는 비판이 온라인을 뒤덮었다. 논란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황 의원은 게시물을 약 2시간 만에 삭제했다.

    황 의원은 지난 7일 페이스북에 폐기되는 버스를 리모델링해 대학가 청년들의 단기 주거 공간으로 활용하자는 방안을 제시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를 참고한 발상이라는 설명도 붙였다.

    황 의원의 계산은 간단했다. 버스 한 대를 약 5000만 원에 개조하고 이를 1만 세대 규모로 확대하면 총사업비가 약 5000억 원에 그친다는 것이다. 대학가나 지하철역 주변에 배치하고, 이동형 또는 트레일러형으로 활용하면 공급 속도와 공간 활용성도 높일 수 있다는 논리였다.

    그러나 '얼마나 많이 만들 수 있느냐'와 '사람이 과연 그곳에서 제대로 살 수 있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였다.

    비판의 핵심은 황 의원의 제안에 주거의 기본 조건이 빠져 있었다는 점이다. 버스라는 좁은 공간에서 화장실과 위생시설을 어떻게 확보할지, 얇은 외벽으로 겨울과 여름을 견딜 수 있을지, 소음과 사생활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제시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청년층이 불편함을 감수하고라도 들어가야 할 '임시 거처'를 마련하는 것이 청년 주거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있느냐는 반문이 이어졌다.

    온라인에서는 "집값과 전월세 부담은 그대로인데 대책이 버스냐", "그 돈이면 청년 월세 지원을 하는 게 낫다", "청년을 위한 정책이라면서 정작 청년에게 물어보기는 했느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특히 "황 의원부터 먼저 살아보라"는 반응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정책을 제안한 정치인과 실제 그 정책의 대상이 되는 청년 사이에 생활환경의 간극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냉소가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야권도 가세했다. 박충권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황 의원의 구상을 비판하며 황 의원 본인과 가족부터 '버스 하우스 1호 입주자'가 돼 보라고 꼬집었다. '도로 위 난민'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하며 정치권 공방으로 번졌다.

    네덜란드 사례를 한국에 가져오는 과정도 도마에 올랐다. 암스테르담의 보트하우스는 운하라는 독특한 도시환경과 역사적·지리적 배경 속에서 형성된 주거 형태다. 이를 국내 대학가 청년주택에 적용하려면 단순히 '폐기된 것을 주거로 재활용한다'는 발상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논란이 확산되자 황 의원은 결국 처음 올린 글을 삭제했다. 이후 다시 올린 글에서는 버스 하우스가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이 아니라 청년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을 개선할 방안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해명했다.

    황 의원은 자신이 주장해 온 청년주택 대안은 버스 하우스가 아니라 주교복합과 공유공간형 주택 개발이라며 관련 법안도 발의했다고 설명했다. 도시 인프라가 이미 갖춰진 지역 곳곳에 주택을 분산 공급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는 취지다.

    하지만 '아이디어일 뿐'이라는 해명이 청년층의 '불쾌지수'를 떨어뜨릴 수 있울지는 미지수다.

    이번 논란이 단순한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따로 있다. 주거비 부담에 허덕이는 청년들에게 집은 더 이상 '주택 공급량'이라는 숫자로만 설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월세를 감당할 수 있는지, 안전한지, 출퇴근과 통학이 가능한지, 냉난방과 위생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는지, 최소한의 사생활이 보장되는지 등, 청년들이 따져봐야 할 주거의 조건은 수두룩하다.

    그런데 정치권에서 청년 주거 대책을 논하면서 '폐기 버스를 개조하면 1만 세대를 만들 수 있다'는 계산부터 내놓았다. 청년들이 반발한 지점도 바로 여기에 있다. 공급의 속도와 숫자만 계산하고, 정작 그 안에서 살아야 할 사람의 삶은 계산에서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정부의 주택 공급 대책 발표를 앞두고 정치권의 부동산 공방이 거세지는 상황에서 '버스 하우스' 논란까지 불거지면서 청년 주거 문제를 둘러싼 민심은 더욱 날카로워지고 있다.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어디든 몸을 눕힐 수 있는 공간'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는 집이다.

    황 의원이 촉발시킨 버스 하우스 논란이 정치권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청년에게 집을 이야기하려면, 먼저 그들이 어떤 집에서 살고 싶어 하는지부터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