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 대통령 "형소법, 검사는 수사 안 된다고 돼있나"국무회의서 하루 전 의결 … '검토 불충분' 인상野 "李,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까봐 책임 회피"
  •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행정안전부, 법무부, 국무조정실 등에 대한 부처 업무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5일 청와대에서 열린 행정안전부, 법무부, 국무조정실 등에 대한 부처 업무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이재명 대통령이 검사의 직접수사권과 보완수사권 폐지를 골자로 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안 읽어봤다"고 말해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발언의 진의를 파악하기 어렵지만 국민 다수가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개정안을 최종 심의·의결한 대통령으로서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뒤따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개정안에 문제의식을 갖고 보완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6일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전날 행정안전부와 법무부 등 부처 업무보고에서 "저는 지금 개정된 형사소송법을 안 읽어봐서 그런데 개정된 형사소송법에 의하면 검사는 수사하면 안 된다고 돼있는가"라고 말했다.

    이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그렇다"며 "일체 수사의 법적 근거가 없어졌다"고 답했다. 이 대통령은 재차 "근거가 없어졌는데 (수사를) 하지 말라고 금지된 거냐"고 물었다.

    해당 발언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통과된 후 검사의 수사권이 사라지는데 기존의 검·경 합동수사본부가 운영될 수 있는지를 묻는 과정에서 나왔다. 당시 윤호중 행안부 장관은 "검사가 직접 수사를 하는 건 아니다"라면서도 합수본을 가동할 수 있다는 취지로 답했다. 하지만 정 장관은 "운영 근거가 매우 취약하다"고 반박했다.

    윤 장관과 정 장관의 의견 대립이 이어지자 이 대통령은 "두 분 사이가 엄청 나빠진 모양"이라며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그러면서 "합수본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미리 보고해 달라"고 마무리를 지었다.

    이날 이 대통령의 발언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줬다. 검사의 직접·보완수사권을 폐지하는 법안에 대해 "검사는 수사하면 안 된다고 돼있는가"라고 묻는 장면은 법안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키웠다.

    아울러 이 대통령은 바로 전날 국무회의에서 개정안을 심의·의결한 당사자였다. 의결하기 직전 모두발언에서 "사필귀정의 필연적 조치"라며 일각에서 요구했던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해 거절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 강경파가 주도한 개정안에 대해 거리 두기에 나선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당초 이 대통령은 '예외적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강경파의 '완전 폐지' 목소리가 커지자 국회 판단에 따르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를 두고 민주당 당권 도전에 나선 정청래 전 대표가 보완수사권 폐지로 강성 당원을 결집시키는 것을 의식해 이 대통령이 맞수를 놓은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가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은 보완수사권 폐지로 수사 지연, 피해자 권리 구제 후퇴 등 국민 피해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자 이 대통령이 책임 회피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장동혁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읽어보지 않았다는 이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태연하게 망언을 쏟아내서 국민이 이게 망언인지조차 느끼기 어려울 정도"라며 "역사의 죄인으로 남을까봐 책임을 회피한 무책임한 대통령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응답자 60%가 보완수사권 폐지에 반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와 '부산 돌려차기 사건' 피해자 김진주(가명) 씨가 보완수사권 존치를 호소하고 있는 점도 언급했다. 

    전날 한길리서치가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62.5%가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민주당 지지자 53.8%도 '필요하다'고 답했다(쿠키뉴스 의뢰로 지난 1~3일 전국 유권자 1000명 대상 조사).

    김 씨는 지난달 31일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자 개정안을 발의한 김용민 민주당 의원의 인스타그램에 "지옥에나 가세요"라는 댓글을 달았다. 김 씨는 지난 2022년 부산에서 귀가하다가 무차별 폭행을 당했다. 당시 경찰은 가해자를 중상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검찰은 살인미수 혐의로 가해자를 기소했고, 이후 보완수사를 통해 성범죄 정황을 확인하고 강간살인미수 혐의로 바꿨다.

    이 대통령이 이 같은 반대 여론을 의식하고 개정안에 대한 보완 작업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의 전날 발언에 대해 "대통령이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고칠 가능성이 있다는 시그널로 받아들였다"며 "오히려 개정안이 문제가 없다면 '안 읽어봤다'는 얘기를 할 이유가 없다"고 꼬집었다.

    이어 "민주당 지지층 중에서도 과반이 반대하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지지율도 떨어지고 있는데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이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냥 놔뒀다가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의결하기 전 "개혁은 가죽을 벗긴다는 의미다. 한 번의 제도 변경으로 쉽게 종결되는 개혁은 없다"며 "부족하거나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신속하고 과감하게 그리고 철저히 보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이날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나와 "대통령께서는 이번 형사소송법 개정에 대한 내용의 전반적인 취지라든지 핵심 내용을 당연히 충분히 숙지하고 계신다"고 해명했다.

    기사에서 인용한 여론조사는 유·무선 RDD 방식으로 표본을 추출해 유선 전화면접 3.6%, 무선 ARS 96.4%로 이뤄졌다.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응답률은 2.1%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