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는 정치 도구 아냐군 경쟁력 높일 근본 처방부터 마련해야
  • ▲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헌정회에서 열린 국군사관학교 창설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홍철 국방부 정책실장이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대한민국헌정회에서 열린 국군사관학교 창설 정책 토론회에 참석해 기본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제 이재명 대통령은 "육사는 쿠데타를 세 번 했는데 책임을 물은 적 없다"며 군의 정치 개입 차단을 위해 통합 사관학교 창설을 신속히 추진하라고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했다. 애초 정부가 내세웠던 군의 합동성 강화나 미래전쟁 대비 첨단과학강군 육성이라는 명분을 걷어내고, 사관학교 통합이 결국 12·3 비상계엄 책임을 묻는 정치적 성격의 조치임을 스스로 드러낸 셈이다. 육사 폐교의 순장조로 내몰린 해군사관학교와 공군사관학교 입장에서는 난데없는 일이다.

    우리 헌정사에서 군의 정치 개입은 5·16 군사정변, 12·12 군사반란, 12·3 비상계엄 등 세 차례였다. 모두 군내 특정 출신과 군 정보기관이 깊숙이 개입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안보 환경과 미래전 양상, 군사전략, 군 구조 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은 채 사관학교 통합을 밀어붙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

    ◆ 절차적 정당성과 방첩 기능 훼손

    첫째, 민주주의의 절차적 정당성이 결여됐다. 국가 안위와 직결되는 장교 양성체계를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군사작전 하듯 밀어붙이는 것은 개혁이 아니라 안보를 허무는 악수(惡手)다. 국민 절반 이상이 반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둘째, 방첩사령부를 방첩·보안·안보수사 기능으로 분리하는 개편 역시 세계적 흐름과 맞지 않는다. 북한은 오히려 정찰총국을 정보정찰총국으로 개편하며 군사정보와 감시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 프랑스, 영국 등도 최고 수준의 방첩기관을 유지하고 있으며 정치적 이유로 조직을 인위적으로 분해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 사관학교 통합의 역설

    셋째, 사관학교 통합은 오히려 군 정치 개입을 막기는커녕 새로운 부작용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력이 군을 입맛대로 길들이려 할수록 군 내부의 유착과 공생 구조가 강화되고, 결과적으로 정치 개입의 토양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군의 정치적 중립은 정부와 군이 "동등하게 대화하되 권한은 비대칭적(Equal dialogue, but unequal Authority)"이라는 문민통제 원칙이 확립되고, 군의 전문 직업성과 자율성이 보장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여기에 국가 지도자의 도덕성과 안보 전문성은 기본 전제다.

    오늘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서 정부가 국정 운영에 실패했다면 국민은 선거를 통해 정권을 교체하면 된다. 군이 정치에 개입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 해법은 장교 양성체제 개혁

    이재명 정부가 진정 군의 정치적 중립과 경쟁력 강화를 원한다면, 추진 방향과 목표조차 불분명한 사관학교 통합이 아니라 장교 양성체계와 인사제도를 근본적으로 손질해야 한다.

    우선 장교 양성 경로를 단순화할 필요가 있다. 각군 사관학교는 유지하되 학사사관과 일반대학 군사학과는 ROTC나 간부사관 과정으로 통합하고, 육군3사관학교는 육군사관학교와 통합하는 방안이다. 사관학교 출신과 ROTC 출신이 서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면 군 정치 개입 가능성을 낮추면서도 장기 직업군인을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미국군의 시스템과도 유사한 방식이다.

    ◆ 공정한 인사제도가 핵심


    다음으로 공정한 인사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군에는 아직도 정치군인들이 만든 '출신별 진급 공석 할당제'의 잔재가 남아 있다. 이 제도는 특정 출신이 보직과 진급, 장기복무를 사실상 독점하도록 만들며 군 내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최근 10년간 육군 기행병과 장성의 대부분과 국방부 주요 국장 보직 상당수가 특정 출신에게 집중됐고, 장성 진급률 역시 육군사관학교 출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언론 보도는 이러한 현실을 보여준다.

    이 같은 쏠림 현상은 사관학교 설치법과 정치군인들이 만든 제한 경쟁 구조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비사관학교 출신은 사실상 '비정규 장교'처럼 취급받았고, 우월주의와 선민의식, 집단사고(Group Think)까지 고착됐다.

    군 내부의 견제와 균형이 무너지면 통수권자나 지휘관의 부당한 명령을 거부하기보다 맹목적으로 따르는 문화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다. 군 정치 개입이 반복되는 구조를 끊기 위해서는 이러한 체질부터 바꿔야 한다.

    군 개혁은 특정 출신을 겨냥한 정치적 보복이 아니라 전문성과 경쟁력 강화에서 출발해야 한다. 능력 중심의 인사와 공정한 평가, 건강한 경쟁 문화는 군 정치 중립을 지키는 방파제이자 국방력을 높이는 기반이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안보 체계를 흔드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무너진 안보는 다시 세우는 데 훨씬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든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