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주인 입주 고민 커지면 세입자 주거불안 더 커질 수 밖에갱신권도 무용지물 … 비거주자 규제하면 세입자 방어권 無부동산 국민대토론회 4번 했지만 … 세입자 보호 대책 미비
  • ▲ 서울 아파트 모습.ⓒ뉴데일리
    ▲ 서울 아파트 모습.ⓒ뉴데일리

    "집주인이 당장 나가라는 건 아니지만 직접 들어와 살 수도 있다고 하니 불안하죠. 아이 학교 때문에 멀리 옮기기도 어려운데 재계약이 안 되면 이 동네에서 전셋집을 다시 구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서울 강동구 한 아파트에 전세로 사는 A씨는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집주인으로부터 실거주 여부를 고민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퇴거를 통보받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집주인이 세 부담을 따져 직접 들어올 수 있다는 말만으로 재계약 계획은 불투명해졌다.

    지난 3일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2026년 세제개편안'에 따르면 실거주 1주택자의 종합부동산세 기본공제는 현행 12억원에서 14억원으로 늘어난다. 비거주 1주택자는 12억원에서 9억원으로 줄어든다.

    정부 시뮬레이션상 시가 30억원 주택을 10년간 보유한 60세 비거주 1주택자의 종부세는 현재 91만원에서 2028년 424만7000원으로 오른다. 같은 조건의 실거주자는 76만원으로 줄어든다. 같은 한 채라도 직접 사느냐에 따라 5배 넘는 차이가 벌어진 것이다.

    세제개편안 발표 이후 부동산 커뮤니티에는 실거주를 고민하는 집주인들의 글이 잇따랐다. 한 1주택자는 "세입자가 갱신권을 청구하기 전에 직접 들어가 살 계획을 알려야 할지 고민된다"고 밝혔다. 지방 발령으로 서울 집을 월세 놓은 집주인은 "월세로 대출을 갚고 있는데 세금을 줄이려면 세입자와 계약을 끝내고 가족이 서울 집으로 돌아가야 하느냐"고 토로했다.

    집주인의 사정도 제각각이다. 문제는 집주인이 어떤 선택을 하든 그 결과를 피하기 어려운 쪽이 세입자라는 점이다. 세금은 집주인에게 부과되지만 재계약과 이사 부담은 세입자에게 먼저 돌아간다.

    현행 주택임대차보호법은 세입자에게 한 차례 계약갱신요구권을 보장한다. 다만 집주인이나 직계존속·직계비속이 실제 거주하려는 경우 갱신 요구를 거절할 수 있다. 정부가 실거주에 혜택을 몰아줄수록 세입자의 갱신권은 집주인의 절세 선택 앞에서 힘을 잃는다.

    강남권 한 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아직 계약을 정리하겠다는 단계는 아니지만 세를 계속 놓을지, 만기 뒤 직접 들어갈지를 묻는 집주인이 늘었다"며 "재계약을 앞둔 세입자들은 집주인의 결정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주인이 들어간 주택은 임대차시장에서 빠진다. 기존 세입자는 다시 전월세 수요자로 나온다. 임대 물량은 한 채 줄고 집을 구하는 사람은 한 가구 늘어난다.

    이미 서울 임대차 매물은 줄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업체 아실에 따르면 지난달 21일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1년 전보다 14.1%, 월세 매물은 10.1% 감소했다. 집주인의 실거주 전환까지 늘면 세입자의 선택지는 더 좁아지는 상황이다.

    정부는 취학과 전근, 장기 치료·요양, 해외 체류, 부모 봉양 등에 예외를 뒀다. 그러나 취학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질병은 1년 이상 치료·요양, 부모 봉양은 60세 이상 직계존속과의 합가가 기준이다.

    가족이 번갈아 부모를 돌보거나 부부 중 한 명만 지방으로 발령받는 등 집을 비우는 사정은 제각각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개인의 삶을 정해진 요건에 끼워 맞춰 실거주 여부를 가른다. 현실을 외면한 천편일률적인 규제다.

    비거주 1주택자의 전세대출을 제한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집을 한 채 가진 채 직장과 자녀 교육, 간병을 이유로 다른 집에 전세로 사는 사람의 대출을 조이면 자기 집으로 돌아가라는 압박이 된다. 그 집에 살던 세입자는 다시 밀려난다.

    정부는 비거주 1주택자의 보유 부담을 높여 실거주나 매도를 유도하고 있다. 매물이 늘면 집을 살 수 있는 사람에게는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시장에는 집을 사려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집을 당장 살 형편이 안 돼 전세와 월세로 살아야 하는 사람도 있다.

    비거주 1주택은 시장에 나올 매물인 동시에 세입자가 살고 있는 집이다. 집주인에게 집을 팔거나 직접 들어가 살라고 떠밀수록 임대주택은 줄어든다. 집을 사라는 정책이 정작 집을 살 수 없는 세입자를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정부는 공급·금융·세제 분야별 경청토론회 3차례에 이어 대통령 주재 부동산정책 국민 대토론회까지 열었다. 네 차례 의견 수렴을 거쳤지만 세입자를 직접 보호할 대책은 희미했다.

    실거주 1주택자를 보호하는 일은 필요하다. 그러나 비거주자에게 매도나 입주를 압박하는 방식이 해법일 수는 없다. 집주인이 자기 집에 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집이 비어 있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이미 세입자의 삶의 터전이기 때문이다.

    세입자는 세율도, 대출 규제도, 집주인의 선택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도 정책의 충격은 재계약 불안과 이사 부담으로 가장 먼저 세입자에게 닿는다. 실거주를 늘리는 동안 이들이 어디서 살아야 하는지, 토론회를 거듭한 정부가 아직 내놓지 않은 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