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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승만 대통령은 6.25때 수시로 전방부대를 찾아 장병들을 위문 격려했다. 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와 군용 헬리콥터에 동승한 모습.
★“독립 미치광이”--미국무부나 기자들이 독립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이승만을 그렇게 불렀다.
특히 미-일 전쟁기 이승만은 “일본이 물러가면 소련이 내려와 한반도를 공산화시킨다”며 일본이 항복하기 전에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승인하여 조국을 선점하게 해달라“고 연일 간청하였다. 미정부내 소련 간첩과 친소세력은 ”종전후 소련과 협의할 문제“라며 거부했다.
”통일 미치광이“--이것은 38선 때문에 생긴 말이다. 꿈에 그리던 해방 직후 38선을 알게 된 이승만은 그야말로 미쳐버리고 말았다. ”즉시 38선을 철회하라. 미군만 단독 진주하여 민주공화국 건설을 도와달라. 대일전쟁에 피 한방울 흘리지 않은 소련을 왜 끌어들여서 공산당이 동족상잔을 벌이게 만드느냐?“ 이때 이미 이승만은 소련의 침략을 걱정했다.
★미국무부의 귀국방해 때문에 두달이나 발묶인 이승만은 북한 김일성보다도 늦게 귀국한다. 이승만은 이제 ‘독립+통일 미치광이’로 변하여 ‘남북통일독립’ 운동에 동분서주하였다. 독립병에 통일병이 겹쳐 몸부림친 해방 3년간, 소련과 싸우고 미국을 때리고 달래서 가까스로 ‘반토막 국가’나마 세울 수 있었다. 그것도 맥아더 등 미국 네트워크를 활용한 용미전략(用美戰略)이 유엔외교로 남북총선 결의안을 이끌어낸 결과물, 이승만 아니고는 불가능한 국제전쟁이었기에 ”이승만 없었다면 대한민국 없다“는 설화가 나오게 된 배경이다.
1948년 8월15일 건국을 선포한 이승만은 부인에게 말한다.
”북한의 소련을 추방하고 통일을 달성하기 전에는 대한민국은 과도정부이다. 북한동포를 해방시켜 완전독립 되는 날까지 밥상에 반찬을 3가지 이상 올리지 말라.“
부창부수(夫唱婦隨) 오스트리아 여인 프란체스카는 남편을 뺨치는 청도교였다.
”미치광이라, 통일만 된다면 얼마든지 들어도 좋은 욕이오“ 이승만은 웃었다.■국군인가? 적군인가?
건국 다음 달 9월5일 서울운동장(현DDP)에서 역사적인 창군(創軍) 기념식이 열린다.
미군정이 물려준 ‘남조선경비대’(South Korean Constabulary)는 이제 대한민국 국군이다.“여러분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독립을 지키고 남북통일을 달성해야 할 사명을 명심하시오”
연설하는 이승만의 목소리가 떨림은 감격때문이 아니다. 신생 대한민국의 안보 걱정이 태산이다. 주한미군의 전투병력은 이미 단계적 철수를 개시하고, 북한엔 소련이 해방직후부터 양성한 10만대군이 벌써 38선을 넘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미군정이 처음 2천명 규모로 조직했던 조선경비대는 군인도 경찰도 아닌 ‘미군 도우미’로서 인원만 5만명쯤으로 늘었을 뿐 공산당이 우글우글 ‘국군 반 적군(敵軍) 반’이다. 미군정 3년간 남로당(南勞黨)의 조직적 침투와 폭동혐의로 쫓기는 적색(赤色)분자들의 피신처가 되었던 것이다. 도대체 공산주의에 대한 전략적 개념이 전무한 미국 군정은 이승만의 거듭괸 경고에도 아랑곳없이 ‘민주군대’를 표방, 신원조회등 사상검증을 완전히 외면했던 것이다.
제주도에선 5.10총선 전부터 총선저지 폭동이 한창이었고, 건국 두 달 만에 10월19일 급기야 여수-순천에서 군사반란이 폭발한다.
이승만 정부는 즉각 숙군(肅軍)을 단행하며 11월엔 ‘국군조직법’을 만들고 12월1일 ‘국가보안법’을 제정 공포한다. 이때 방첩대장 김창룡(金昌龍)이 남로당 군사조직책 박정희(朴正熙)를 전향시킨 이야기는 잘 알려진 바와 같다.
◆‘연합국방’ 선언...미국에 ‘안보조약’과 무기 요구
’초대 국무총리겸 국방장관 이범석(李範奭,1900~1972)은 독립군 ‘청산리전투’의 영웅, 그가 내세운 한국군의 슬로건이 ‘연합국방“(聯合國防)이다.
말할 나위 없이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연합군 구상을 목표로 정한 것이었다.
건국 즉시 주한미군을 붙잡기 위한 이승만의 노력은 한두가지가 아니다. 미군장교 숙소단지로 경복궁옆 송현동(松峴洞)일대 토지를 제공한 것도 한 예였다.
”한국은 지중해의 그리스보다 더 중요한 아시아-태평양지역 자유의 요충이다.
이대로 미군이 철수하면 세계평화가 깨지고 미국민들이 피를 보게 될 것이다“’트루먼 독트린‘(1947)을 거명하며 이승만은 한미상호방위조약 체결의 불가피성을 제기하고, 소총뿐인 한국군의 무장 지원을 미국에 간절히 애원하였다.
트루먼 대통령은 ”무기 타령 말고 굶주리는 국민 밥이나 먹이라“며 외면한다.
1949년 4월 나토(NATO)가 설립되자 이승만은 ”우리도 나토와 같은 태평양 동맹을 맺자’고 매달렸다. 중국 장제스(蔣介石,1887~1975)와 필리핀 로물로Carlos P. Romulo, 1899~1985) 와 결속하여, 즉각 장제스를 경남 진해(鎭海)로 불러 전략회담을 개최하였다.
미국은 그러나 마이동풍이다. 이승만이 진해를 미해군 기지로 제공하겠다는 제의마저 뿌리친 트루먼은 급기야 1949년 6월 주한미군을 철수, 고문관 450명만 남긴다. 게다가 이듬해 1월엔 ‘애치슨 라인’을 발표, 소련도 전쟁에 지쳤을 것이고 중국도 국공내전 중이므로 해외개입을 최소화, 트루먼이 희망사항대로 오판을 거듭한 결과였다. 이는 남침을 노리던 소련 스탈린과 북한 김일성에게 “미국개입은 없다”는 메시지, 6.25침략전쟁을 불러오고 말았다.
★트루먼의 철군 이유=미국은 세계2차대전이 끝나자 대대적인 군비축소에 들어갔다. 전쟁에 염증난 국민에게 해외주둔 미군 철수도 약속했다. 1948년 11월 대통령 선거, 트루먼은 예상을 깨고 당선된다.
◆ 트루먼에게 “냉전시대 이념전쟁”을 가르치다
1950년 6월25일 공산군의 전면 남침을 확인한 이승만은 맥아더에게 호통을 친다.
“미국이 내 말 안 들어서 전쟁 났으니 어서 이 나라를 구하시오”
탱크 한 대 없는 국군은 소련제 최신탱크200여대의 총공세에 속수무책, 맥아더가 긴급투입한 미24사단마저 연패를 거듭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한국군의 작전권을 맥아더에게 전격 이양한 일은 앞에서 보았다.
“공산군이 먼저 38선을 깼으니 자유통일 기회를 적군이 열어주는구나”
준비된 글로벌 전략가의 머리는 언제나 처변불경(處變不驚) 수처작주(隨處作主)의 표본처럼 돌아간다. 어떤 변화가 오든지 새로운 사태를 새로운 발전의 동력으로 삼는 이승만 특유의 창조적 리더십, 전형적인 전화위복(轉禍爲福)의 해결사 ‘오래 별렀던 전략카드’를 꺼내 들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7월19일 트루먼 대통령에게 중대결심을 통보하는 역사적 편지를 보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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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05년 미국 유학때 장만한 영문 타이프라이터를 이승만은 평생 사용, 수많은 편지와 외교문서, 연설문, 저서까지 직접 타이핑했다. 사진은 1950년대 대통령시절 경무대에서 타이핑하는 모습.
▶영문편지 원문◀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Rhee) to President Truman.
RESTRICTED Taegu, July 19, 1950. (FRUS:미정부문서 아카이브)
Dear Mr. President
I can not find words to express, for myself and for all the people and Government of Korea, our profound gratitude for your prompt and continued actions in bringing aid to Korea in these desperate days. While we deeply appreciate the support of so many free nations, through the United Nations, to the cause of Korea, which also is the cause of freedom, we know full well that without your courageous leadership in a time of bewildering crisis there would have been no support and no aid.
I am deeply moved as I learn of increasing American battle casualties here. It is a tragic thing that so many men should have had to give their lives for liberty in this land so far from their own. It is easier for me to accept word of our own battle casualties than of yours, cruel as ours have been, since our forces are fighting in and for their native land. I wish I could convey to every mother and father and wife and child, and sister and brother of an American soldier killed or wounded here in Korea even some slight comfort through the knowledge that no Korean can ever forget the courage and sacrifice of these men who in the great tradition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have come to the defense of the weak against the cruel aggressor, and have fought and given their life’s blood that liberty and freedom should not perish from the earth.
These soldiers of your great country, Mr. President, have lived and died as Americans, but they have given their lives even beyond love of country as citizens of the world, knowing that to permit the further destruction of the independence of free nations by the Comminazis is to clear the way to assault upon every nation, even the United States itself.
As you know, the Korean people were divided against their will, as a result of military decisions in 1945 regarding the 38th Parallel, to which no Korean was a party. This division permitted the development in the north, under Soviet direction and leadership, of a communist regime wholly alien to Korean traditions and feelings. With absolute control of the military, police and fiscal powers in that region of Korea, the communists, with Soviet direction, were able to create the formidable force which has caused such cruel damage not only to Korea but also to the United States and most members of the United Nations. When the Soviet sponsored regime in North Korea simultaneously attacked the defense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in the early morning of June 25, they ended any possible claim to the maintenance of the 38th Parallel as a political or military dividing line between free and slave Korea.
It would be utter folly to attempt to restore the status quo ante, and then to await the enemy’s pleasure for further attack when he had had time to regroup, retrain and reequip. The time has come to cut out once and for all the cancer of imperialist aggression, the malignant growth artificially grown within the bosom of our country by the world communists.
The people of North Korea are the same as the people of South Korea. All are loyal to the land of their birth with the very few minor exceptions of foreign trained and foreign directed communists. This war is not a conflict between North and South, it is a conflict between the few who are communists, who by an accident got control of half of our country, and the overwhelming mass of the citizens of Korea, wherever they may live.
The Government and the people of the Republic of Korea consider this is the time to unify Korea, and for anything less than unification to come out of these great sacrifices of Koreans and their powerful allies would be unthinkable. I am sure, Mr. President, that you have come to the same conclusion yourself, but I wish to make clear to you the position of this Government.
The Korean Government would consider as without binding effect any future agreement or understanding made regarding Korea by other states or groups of states without the consent and approval of the Government of the Republic of Korea. From statements which you have made recently I believe that this also is the position of the Government of the United States.
Daily I pray for the joint success of our arms, for clear skies so that the planes of the United States Airforce may search out and destroy the enemy, and for the earliest possible arrival of sufficient men and material so that we can turn to the offensive, break through the hard crust of enemy forces and start the victorious march north. I have no slightest doubt in the ultimate victory of our cause I know that both right and might are on our side.
With ever continued warm personal regards,
Sincerely yours, Syngman Rhee
▶한글 번역문◀
친애하는 대통령께
절망적인 위기를 맞은 한국에 신속하고 지속적인 원조를 제공해주신 각하에게, 본인은 물론 대한민국 정부와 모든 국민들은 깊은 감사의 뜻을 무슨 말로 표현할지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대의(大義), 즉 자유의 대의를 위한, 많은 자유 우방의 국제연합을 통한 지원에 깊이 감사드리며, 각하의 용감한 영도력이 이 난처한 위기에 발휘되지 않았던들 그러한 지지도 원조도 없었으리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본인은 한국전선에서 미군의 전사장자(戰死傷者)가 늘어난다는 사실을 보고 받을 때마다 가슴이 아픕니다. 고국에서 머나먼 이곳에 와서 자유를 위하여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생명을 바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은 비극입니다. 우리 군대는 우리의 국토 안에서 조국을 위하여 싸우고 있으니까 우리 군의 사상자 보고를 받는 것이 아무리 참혹하다고 해도 귀국(貴國)의 희생자보다는 그나마 낫겠지요.
이곳 한국 땅에서 죽고 다친 미국 병사들의 모든 부모, 처자, 형제자매들에게 부족하나마 위로의 말을 전하고자 합니다. 우리 한국인들은, 미국의 위대한 전통을 이어받아 약자를 지켜주려고 이 땅에 와서 잔인한 침략자들을 상대로 해방과 자유가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생명을 내걸고 싸우고 피 흘린 그들의 용기와 희생을 결코 잊지 않을 것입니다.
대통령 각하!
위대한 귀국의 병사들은 미국인으로서 살다가 죽었습니다만, 세계 시민으로서 그들의 생명을 바쳤습니다. 공산-나치 집단(Comminazis)에 의하여 자유 국가의 독립이 유린되는 것을 방치한다는 것은 모든 나라들, 심지어 미국 자신까지도 공격받는 길을 터주는 길이 됨을 알고 애국심의 한계를 초월하면서까지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각하도 아시다시피 한국인들은 그 누구도 참여하지 않은, '38도선에 관한 1945년의 군사 결정'의 결과로 자신들의 의사에 반하여 분단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분단은 북한에서 소련의 지령과 통제 아래 한국인의 전통이나 정서와는 전적으로 이질적인 공산정권의 수립을 허용하고 말았습니다.
북한 지역에서 군사, 경찰, 재정의 권력을 절대적으로 장악한 공산 분자들은 소련의 지령 하에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과 대다수 국제연합 회원 국가들에 대하여도 처참한 피해를 줄 수 있을 정도의 막강한 군사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소련이 지원하는 북한 정권이 6월25일 새벽, 한국군을 일제히 공격하였을 때, 그들은 38선을 자유 대한과 노예 북한 사이의 군사 분계선으로 유지되는 근거를 없애버렸습니다.
원상회복(status quo ante)을 시도함으로써 적(敵)이 전열을 가다듬어 또 다시 공격할 수 있도록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행동이 될 것입니다. 세계 공산주의자들이 우리나라의 가슴 속에 심어서 키워온 제국주의적 침략의 악성 암세포들을 이번 기회에 영원히 도려내야 합니다. 북한 사람들은 남한 사람들과 차이가 없습니다. 외부 세력이 훈련시키고 조종하는 소수의 공산주의자들을 제외한 모든 남북한인들은 그들의 조국에 충성합니다.
이 전쟁은 남한과 북한의 대결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우리나라의 반을 어쩌다 점거하게 된 소수의 공산주의자들과 압도적 다수의 한국 시민들(그들이 어디에 살든) 사이의 대결입니다.
한국 정부와 국민들은 이제 한반도를 통일할 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강력한 우방들이 치르는 막대한 희생을 딛고 통일도 이루지 못한다면 이는 언어도단입니다.
대통령 각하, 각하께서도 같은 결론에 도달하셨을 것으로 본인은 확신하는 바이지만, 우리 정부의 입장을 각하께 분명히 밝히고자 합니다.
한국 정부는 대한민국 정부의 동의나 승인 없이 한국에 관하여 장차 타국이나 국가 그룹에서 결정하는 어떠한 협정이나 양해 사항도 이를 구속력이 없는 것으로 간주할 것입니다.
본인은, 각하께서 최근에 발표하신 성명서를 통하여 이것이 또한 미국 정부의 입장이라고 믿습니다.
본인은 매일 기도합니다. 한-미군의 공동작전 승리를 위하여, 미 전투기가 적을 파괴할 수 있도록 날씨가 맑아지기를, 그리고 충분한 병력과 물자가 최대한 빨리 도착하여 공세로 전환, 힘겨운 적진을 뚫고 승리의 북진을 시작할 수 있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본인은 우리의 대의가 궁극적인 승리를 거두리라는 데 추호의 의심도 없으며, 그 승리의 정당성(right)과 강력한 힘(might)이 우리 편에 있음을 믿습니다.
영원히 변함없는 친애의 마음을 담아서,
1950년 7월19일 대구에서, 이승만 드림.
★고도로 국제정치적이며 역사적 예언적 문학적 함축미를 드러낸 명문 외교문서이다. 동서학문에 통달한 문장가이자 기독교 정신에 투철한 이승만의 화려하고도 담담한 듯 날카로운 언어 구사는 매우 따뜻하고 단호하며 전략적이다. 공감한 트루먼도 곧 화답하는 답장을 보냈다.
독립운동기간 이승만의 편지를 받았던 미국 지도자들은 “미국인보다 품격 높은 고급영어”의 설득력에 탄복했다는 증언들이 수두룩하다. 대통령만 쳐도 이승만에게 박사학위를 직접 수여한 스승 프린스턴대학 총장출신 윌슨을 비롯, F. 루즈벨트, 트루먼, 아이젠하워 등이다.
건국이후 대한민국 대통령 13명중 이처럼 역대 미국대통령들과 직접 영어 편지로써 대화, 외교, 협상, 투쟁을 통해 크고 작은 국익을 창출했던 대통령은 누가 있던가? 이승만이 유일하다. 이념전쟁의 격랑 속에서 그는 말과 글로써 나라를 세우고 나라를 지켰다.
위대한 역사가 아놀드 토인비((Arnold Joseph Toynbee,1889~1975)의 역작 [도전과 응전:Challenge and Response]가 말하는 ‘천재적 소수’를 이승만에게서 본다. 6.25라는 도전에 ‘통일’로 응전한 약소국지도자 이승만은 토인비의 논리 “위기를 새 역사로 바꾸는 창조적 천재” 그 인물이 아닐 것인가. 이것은 이승만 우상화가 아니다. 그의 건국과 호국의 행적이 ‘기적적인 성취’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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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54년 8월 미국을 공식방문한 이승만 대통령이 고향 미주리로 은퇴한 트루먼 전 대통령(왼쪽)을 자택으로 찾아가 악수하고 있다. 이것이 처음이자 마지막 만남이었다.
■ “남북한 전쟁 아니다“ 자유통일 강력요구
그렇다면, 이승만의 편지에서 감동적인 감사인사를 제외하고 주요 메시지를 살펴보자.
전쟁당사국 대통령으로서 ‘구원의 천사’ 최강대국 대통령에게 보낸 편지로서는 뜻밖의 메시지와 강력한 요구사항들이 가득하다. 언제나 앞서가는 이승만 특유의 세계관, 역사관, 전쟁관, 자유철학을 보여준다. 특히 최악의 위기에서도 한국정부의 동의 없는 일방적 ‘국제 거래’를 경고하는 대목이 과연 이승만 다운 결의를 토해내고 있다.
1. 6.25전쟁 성격을 ‘냉전시대 이념전쟁’으로 규정
한국전쟁은 남북 한국인끼리 싸우는 내전이 아니라 공산-나치의 전체주의 세력과 자유세계의 전쟁이라는 정의이다. 6.25전쟁의 성격을 <전체주의 v 자유주의 대결>로 규정, 냉전시대 ’이념전쟁‘임을 트루먼에게 강조, 아니 가르쳐주고 있다.
따라서 미군은 반자유세력으로부터 자유를 수호하는 ’자유세계의 시민‘으로 재인식해야며 미국의 자유‘까지 지키는 투
쟁임을 깨닫고 승리를 위하여 충분한 무기와 물량을 신속히 보급하라는 요구까지, 마치 사령관의 명령 같이 읽힌다.
’Comminazis‘ 란 용어도 이승만의 신조어, 일본의 진주만기습을 예고한 저서 [JAPAN INSIDE OUT]에서 처음 선보인 ’공산+나치‘ 합성어로서 공산주의와 나치즘은 똑같은 자유의 적이라는 것, (그 책은 트루먼에게도 보냈고 예언서로 여겨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즉 미국이 우방으로 여긴 소련의 악마적 전체주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였다. 새롭게 급변하는 세계질서의 전략구도를 미국선 아무도 모르고 있던 때, 최강의 미국 파워를 활용하겠다는 이승만 특유의 지구적(地球的) 용병술이라 하겠다.
2. ’한국 패싱 38선 분단책임‘을 상기시키다
간단히 말해 미국이 한국의 의사도 묻지않고 일방적으로 38선을 설정함으로써 소련 공산주의를 한반도에 끌어들여 민족을 분단시키고 국제공산주의 정복전쟁을 일으키게 만들었다는 것, 따라서 38선이 사라진 이상 분단책임자 미국이 통일을 책임지라는 단호한 자주 선언, 공산당을 몰랐던 미국의 양심에 비수(匕首)를 꽂은 것이다.
3. 미국이 남북한을 통일시켜야할 의무를 진다
“세계 공산세력의 제국주의적 암세포‘들을 영원히 도려내야 한다”는 촉구, 미국과 참전국들의 막대한 희생에도 통일을 못한다면 ’언어도단‘이라고 못 박는다. 즉, 소련에게 북한을 내준 미국은 이 전쟁을 통하여 소련을 추방하고 북한을 찾아줘야 할 책임과 북한동포 해방의 의무를 져야한다는 매서운 지적이다. 이때만 해도 이승만은 트루먼의 신속한 참전에 감사와 신뢰를 보냈고 반공동지 맥아더와 함께 통일완수를 믿고있었다.
4. 미국의 또 다른 ’배신‘ 가능성을 정면 경고
독립운동시부터 이승만은 “미국의 한국에 대한 배신”을 폭로하며 이를 규탄하였다. 바로 태프트-가쓰라 밀약이 그것이다. 러일전쟁 직후 조선을 일본에 넘겨준 결과(을사조약)로 일본군국주의 팽창을 도와줌으로써 일본이 미국을 공격(진주만 기습)할 것임을 경고했던 것이다. 뒤이어 ’얄타 밀약‘의 폭로, 이승만의 합리적 의심은 영락없이 38선으로 나타났다.
이승만은 이 두가지 강대국끼리 밀약을 ’미국의 배신‘으로 규정했다.
역사의 고비마다 번번이 한반도를 흥정물로 다루는 미국, 재범시 “이번엔 용서못한다”고 들이대고 있다. 만약 이번전쟁에서도 통일을 포기하고 소련과 거래한다면? “어떤 결정도 구속받지 않겠다”고 다짐주는 이승만의 결의, 그 ’만약‘이 곧 1년 뒤에 현실화 될 줄을 어찌 알았으랴. 트루먼의 일방적 휴전강요가 그것이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