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킷브레이커보다 늦은 감독리더십의 공백이 키운 불안정책보다 늦었던 시장의 경고전문성은 선택이 아닌 자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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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융에는 연습경기가 없다.

    프로 스포츠에는 시범경기가 있다. 실수를 해도 다음 경기를 준비하면 된다. 금융은 다르다. 금융감독 수장과 중앙은행 총재가 내리는 판단은 처음부터 본경기다. 한 번의 오판은 시장을 흔들고 국민의 자산으로 이어진다. 되돌릴 기회도, 다시 시작할 연습경기도 없다.

    영국 경제학자 찰스 굿하트는 정책이 숫자에만 매달리는 순간 그 지표는 본래 기능을 잃는다고 지적했다. 금융감독도 다르지 않다. 규정을 지켰는지가 아니라 시장에서 어떤 위험이 커지고 있는지를 먼저 읽는 것이 감독의 본령이다.

    이번 증시 대란은 그 본령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되묻게 했다. 코스피는 사상 처음 이틀 연속 서킷브레이커가 발동됐고, 하루 만에 코스피와 코스닥 시가총액 283조원이 증발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시가총액만 약 141조원이 사라졌다. 올해 들어 코스피 사이드카는 43차례, 서킷브레이커는 9차례 발동됐다. 시장은 오래전부터 과열과 쏠림의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이억원 금융위원장과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취임 당시부터 전문성 논란 속에 출발했다. 이 원장은 변호사 출신으로 금융감독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았고 대통령 보은 인사라는 정치권의 공세도 이어졌다. 이 위원장 역시 기획재정부 차관을 지낸 거시경제 전문가지만 금융시장과 감독 실무 경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인사의 배경보다 중요한 것은 위기 국면에서 보여준 판단과 대응이다. 시장은 이력보다 결과를 기억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다. 특정 종목에 자금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는 우려는 출시 전부터 꾸준히 제기됐다. 그럼에도 금융당국은 상품 출시를 허용했고, 개인 자금이 급격히 몰린 뒤에야 위험 관리와 보완책을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이찬진 원장은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뒤늦게 인정했지만, 시장이 기대했던 것은 사후 평가가 아니라 선제적 대응이었다. 감독의 성패는 위기가 터진 뒤가 아니라 위기가 오기 전에 결정된다. 시장보다 한발 앞서야 할 감독이 오히려 시장을 뒤쫓았다.

    더 큰 문제는 리더십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대통령 정책을 집행하는 기관인 동시에 시장을 지키는 최후의 안전판이다. 시장이 과열될 때는 먼저 경고하고, 필요하다면 정책에도 제동을 걸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위험이 현실이 된 뒤에야 F4 회의가 열렸고 대응은 늘 시장보다 한 박자 늦었다.

    비슷한 모습은 부동산 금융정책에서도 반복됐다. 가계대출 총량규제를 시행한 뒤 실수요자의 잔금대출이 막히고 입주 차질 우려가 커졌다. 금융당국은 뒤늦게 집단 잔금대출을 총량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이억원 위원장은 한 달 넘게 "규제를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시장은 어떤 기준으로 정책이 바뀌는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규제를 먼저 만들고 예외를 나중에 찾는 방식이 반복되면서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도 흔들렸다. 시장 신뢰는 정책의 강도가 아니라 예측 가능성에서 나온다. 

    통화정책을 책임지는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도 시장과의 소통에서는 아쉬움을 남겼다. 증시가 급락하는 와중에도 추가 금리 인상 기조를 거듭 강조하면서 시장이 기대했던 신호와는 엇박자를 냈다. 국제기구와 학계에서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평가받지만, 시장에서는 여전히 현장보다 이론에 강한 '서생형 총재'라는 이미지가 남아 있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비이성적 과열'이라는 한마디만으로 시장의 기대를 바꿨던 것은 중앙은행 총재의 말이 금리만큼 강력한 정책 수단이기 때문이다. 통화정책은 기준금리를 결정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시장과 소통하며 기대를 조율하는 것 역시 중앙은행 수장의 중요한 책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실물경제다. 신규 사업자는 5년 연속 감소했고, 신규 사업자 100명당 폐업자는 2013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수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올랐고 자영업자의 부실도 빠르게 늘고 있다. 반도체 호황 하나만으로 경제를 떠받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금융시장의 충격은 기업과 가계로 더 빠르게 번질 가능성이 크다. 

    금융감독 수장에게 필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전문성이요, 권력과의 보조가 아니라 시장과의 적절한 거리감이다. 시장이 들뜨면 먼저 경고하고, 위험이 커지면 누구보다 먼저 브레이크를 밟을 수 있어야 한다. 금융감독의 독립성과 전문성은 미덕이 아니라 시장 신뢰를 지탱하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선수는 다음 경기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감독 수장은 그렇지 않다. 한 번의 오판은 곧바로 국민의 자산으로 계산되고, 한 번 잃은 신뢰는 뒤늦은 보완책만으로는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금융에는 연습경기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