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오입력 숨기려 다른 투표소 수치로 분산 혐의공식 투표율 신뢰 및 선거 절차 공정성 훼손 우려"관리 부실과 데이터 조작은 별개 … 철저히 규명해야"
  • ▲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앞둔 지난 6월 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앞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선관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과천=정상윤 기자
    ▲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앞둔 지난 6월 5일 오후 경기 과천시 중앙선관위 앞에서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시민들이 선관위를 규탄하는 집회를 이어가고 있다. ⓒ경기 과천=정상윤 기자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둘러싼 수사가 단순한 관리 부실을 넘어 선거 통계 전산조작 의혹으로 확대되고 있다.

    투표자 수 오입력을 발견하고도 정해진 수정 절차를 밟지 않은 채 다른 투표소에 숫자를 나눠 입력한 정황이 드러나면서다.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는 공식 절차가 마련돼 있는데도 선관위 직원들이 이를 우회해 다른 투표소의 수치까지 임의로 변경했다는 점이 문제된다.

    이에 따라 수사의 초점 역시 투표용지 수요를 잘못 예측한 책임에서 공식 선거 통계를 고의로 왜곡 또는 은폐했는지 여부로 옮겨갈 전망이다.

    투표용지 부족으로 시작된 이번 사태가 통계 조작 의혹으로 번진 만큼 수사는 개별 직원의 형사책임을 넘어 선관위의 전산 통제와 관리·감독, 조직 구조 전반의 신뢰를 다시 세우는 계기가 돼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 ▲ 국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 가운데 개표소 내부에 투표지 보관박스가 쌓여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국회 전국동시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사태 등 국민 참정권 침해 진상규명 및 선거관리 개혁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가 지난 2일 오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에 대한 현장조사에 나선 가운데 개표소 내부에 투표지 보관박스가 쌓여있다. ⓒ국회사진기자단
    ◆ 합수본, 선관위 압수수색 … '오입력 은폐' 정조준

    국민참정권 침해 진상규명을 위한 검경 합동수사본부는 23일 중앙선관위와 경기도선관위,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선관위 등에 대한 압수수색에 나섰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공전자기록위작과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혐의가 적시된 것으로 파악됐다. 합수본은 선관위 직원들이 투표자 수 오입력을 발견하고도 정해진 수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전산상 수치를 임의로 조정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선관위는 투표 당일 전국 투표소의 투표자 수를 일정 시간 단위로 집계해 투표율을 공개한다. 각 투표소가 투표자 수를 보고하면 읍·면·동선관위가 이를 시스템에 입력하고 구·시·군선관위와 시도선관위, 중앙선관위가 순차적으로 확인하는 구조다.

    입력된 숫자에 오류가 발견되면 수정 지시와 재승인을 거쳐 해당 수치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일부 직원들은 이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잘못 입력된 투표자 수를 다른 투표소 여러 곳에 나눠 입력한 것으로 조사됐다.

    합수본은 선관위 직원들이 내부 메신저에서 오입력 사실을 상부에 보고하지 않은 채 수치를 임의 조정하자는 취지의 대화를 나눈 정황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정황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단순한 입력 착오로 보기는 어렵다. 오류를 인지하고도 정상적인 수정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다른 투표소 수치까지 손댔다면 허위 전산기록을 새로 만든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식 투표율 통계를 내부 직원들이 절차 밖에서 바꿀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선관위 전산 관리와 내부 통제의 허점이 드러났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 ▲ 서울 송파구 투표지 부족 사태로 인한 파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6월 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기 과천=서성진 기자
    ▲ 서울 송파구 투표지 부족 사태로 인한 파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지난 6월 4일 오전 경기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앞에서 시민들이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기 과천=서성진 기자
    ◆ 관리 부실 넘어 '부정선거' 논란 … 선관위 개편론까지

    선거의 공정성은 결과의 정확성뿐 아니라 선거 관리 절차의 적법성과 투명성까지 포함한다. 투표자 수 집계와 공표 과정이 임의로 변경됐다면 최종 당락과 별개로 선거 절차의 신뢰가 훼손될 수 있다.

    시간대별 투표율은 정당과 후보자의 투표 독려 전략, 언론 보도, 유권자의 선거 상황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공적 정보로, 실제와 다른 수치가 공개됐다면 선거 참여 주체들이 왜곡된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고 대응했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오입력을 공식 수정 절차로 바로잡지 않고 다른 투표소의 수치를 조정해 덮었다면 통계의 변경 경위와 책임자 역시 추적하기 어려워진다. 외부에서 선거 관리 과정을 재현하고 검증할 수 있어야 한다는 투명성 원칙이 무너지는 셈이다.

    이에 따라 이번 사태를 두고 최종 득표수나 당락에 영향을 미쳤는지와 별개로 공식 선거 통계의 진실성과 선관위의 절차적 중립성을 훼손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중대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는 "선거 관리를 부실하게 한 것과 선거 제도의 기초가 되는 데이터를 임의로 조작한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라며 "투표율 통계를 의도적으로 조정했다면 그 자체로 부정선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선거 데이터는 선거 과정과 결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단순한 관리 소홀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며 "내부 메신저에서 오입력 사실을 보고하지 않고 수치를 임의로 조정하자는 대화까지 나눴다면 실수가 아니라 오류를 의도적으로 감추려 한 범죄행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수사를 통해 통계 조정이 일부 직원의 일탈인지, 선관위 내부에서 반복돼 온 관행인지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며 "문제가 확인된다면 선거 관리 체계 전반을 정비하고 잘못된 부분은 과감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후 수사에서는 공식 투표율 통계가 어느 범위까지 임의로 변경됐는지와 같은 방식이 다른 지역이나 과거 선거에서도 반복됐는지, 관리자급 인사들이 이를 알고 있었는지를 규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수치 조정이 일부 실무자의 즉흥적인 대응이 아니라 내부 관행으로 확인될 경우 선관위의 전산 통제와 보고 체계 전반에 대한 책임론도 불가피하다.

    김 교수는 "오늘날 선거 관리는 유권자 신원 확인부터 투표자 수 집계와 통계 공표까지 상당 부분 전산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며 "선거 데이터가 임의로 변경되지 않도록 입력·수정 권한과 승인 절차를 더욱 엄격하게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전산상 변경 기록을 사후에 추적하고 외부에서도 검증할 수 있는 통제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내부 통제 강화에 그치지 않고 선관위의 조직 구조까지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대법관이 중앙선관위원장을 맡아 선거 관리에 관여한 뒤 법원이 선거소송을 심리하는 현행 구조에 대해 "사법부의 객관성과 제3자성을 둘러싼 논란이 생길 수 있다"며 "법관이 선관위원장을 맡아온 관행도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