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FTA 등 통상 문제도 복병… '혈맹행보' '선물보따리' 등 사전 준비 신경
  •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유라시아 국회의장회의 대표단 초청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청와대 충무실에서 열린 유라시아 국회의장회의 대표단 초청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자료사진)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을 위해 성남서울공항을 통해 전용기편으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DC로 출국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내달 2일까지 3박 5일간 워싱턴DC에 머물며, 백악관 환영만찬과 정상회담·공동성명 등의 일정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간의 긴밀한 교감을 시도한다. 이를 통해 우리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 강화와 함께 양국 관계에 균열을 야기하고 있는 사드 배치 논란의 극적 봉합을 이룰지 관심이 쏠린다.

    ◆ 사드 배치가 최대 현안… 통상 문제도 복병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행은 꽃길이 아니다. 취임 50일 만에 첫 해외 순방에 나서는 대통령의 앞길에 놓여 있는 현안은 무겁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비롯한 난제들이 산적해 있다. 북한의 핵위협·탄도미사일 도발이라는 안보 현안에 밀려 있지만, 미국을 상대로 막대한 무역흑자를 내는 입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제기할 통상 이슈도 부담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첫 해외순방인데도 도열환송 행사 등을 생략한 채 성남서울공항 귀빈실에서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우원식 원내대표를 비롯한 핵심 인사들과의 간단한 환담만 나눈 뒤 출국한 것도 이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번 미국 방문과 관련해 자신의 양 어깨에 무거운 짐이 지워져 있다는 것을 의식했다는 분석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환송 행사와 인원을 최소화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상회담을 앞둔 양국 간의 최대 현안은 단연 사드 배치 문제다.

    북한의 침략으로부터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기 위해 파병된 주한미군 2만8500명이 북핵의 위협 앞에 그대로 노출돼 있는 것을 미국 측은 대단히 심각하게 여긴다. 미국은 이 때문에 자비로 사드를 배치해 자국군과 동맹국을 적의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지키려 하고 있다.

    반면 새로 출범한 우리 정부는 사드 배치를 위해 미군 측에 공여한 경북 성주골프장의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치권 일각에서는 환경영향평가가 사드 배치를 고의로 지연하거나 뒤엎기 위한 수순이 아닌지 의구심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 배치 지연 상황과 관련해 격노했고, 미국 상원의원 18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를 눈앞에 두고 "사드 배치를 방해하는 절차를 가속화하는 방안을 찾으라"고 공개 서한을 통해 촉구했다.

    북핵 폐기를 위한 '대화'의 전제 조건도 논란이 될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한미 당국의 접근 방식은 상이하다. 우리 정부는 일단 북한이 '동결'을 하면 대화를 시작할 수 있고, 이를 통해 궁극적 폐기로 나아간다는 단계적 접근법을 고집한다.

    반면 지난 1994년 제네바 합의 이후 20년이 넘게 번번이 기만당해온 미국 정부의 입장에서는 '단계적 접근법'에 선뜻 동의할 수 없는 상황이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지난 3월 일본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20년간 북한에 13억5000만 달러(약 1조5000억여 원)를 지원하면서 비핵화에 애썼지만 실패했다"고 진단했다. 대화 개시의 전제조건을 놓고 서로 간의 이견이 있을 수밖에 없는 여건인 것이다.

    안보 문제가 가장 심각한 당면 현안이지만 '협상의 귀재'로 불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통상 문제로 성동격서(聲東擊西)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중국·독일 등과 함께 대미 무역흑자 과대국가 16개국 중의 하나로 꼽은 만큼, 한미FTA 재협상 등을 제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국 CBS '디스 모닝(This Morning)'이라는 아침 뉴스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문재인 대통령이 20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미국 CBS '디스 모닝(This Morning)'이라는 아침 뉴스프로그램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출국 전 세심한 준비… 첫 일정은 '혈맹 행보' 강조

    물론 우리 정부도 이같은 무거운 현안을 순조롭게 풀어내기 위해, 한미정상회담 사전 준비에 많은 공을 들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순방을 앞두고 미국지상파 CBS·정론지 워싱턴포스트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과 잇달아 인터뷰를 가지며 한미 공조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지난 2일에는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2시간 가까이 만나며 한미정상회담에 대비한 전략·전술적 조언을 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 스승'인 리처드 하스 미 외교협회장에게 회담의 '팁'을 전수받고, 전직 주미 대사들에게 조언을 듣는 등 사전 준비에 심혈을 기울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방미 첫 일정도 예사롭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국 현지에서의 첫 일정으로 장진호 전투 기념비에 헌화한다. 장진호 전투는 6·25 전쟁 당시 올리버 프린스 스미스 소장이 지휘하는 미 해병1사단이 중공군 12만 대군의 포위섬멸전에 맞서 지연 및 탈출 작전을 성공시켰던 전투다.

    장진호 전투에서 미 해병이 8000여 명의 사상자를 낸 끝에, 연합군은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다. 피난민 9만여 명이 함경남도 흥남부두를 통해 탈출했다.

    흥남 출신인 문재인 대통령의 부친이 이 작전을 통해 거제로 피난한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이후 거제에서 태어난 문재인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된 만큼, 장진호 전투는 문재인 대통령에게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30일 오전에는 마이크 펜스 미 부통령과 함께 워싱턴 DC에 있는 한국전 기념비에 헌화할 예정이다.

    펜스 부통령의 부친은 6·25 참전 용사다. 흥남철수작전을 성공시킨 미 참전군인을 부친으로 둔 미국 부통령과 그 작전을 통해 자유의 땅으로 내려온 부친을 둔 대한민국 대통령의 공동 헌화는 한미 혈맹 관계를 새삼 부각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통상 이슈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동행하는 경제사절단이 풍성한 '선물보따리'를 준비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미국 내의 생산라인 구축에 각각 3억 달러와 2억 5000만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 미국인의 일자리를 강조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회담 성과로 내세울만한 것으로 원만한 회담에 도움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 블레어하우스 이례적 3박 허용… 미국도 신경쓰는 모습

    문재인 대통령이 이번 방미는 '공식실무 방문(official working visit)' 형식이다. 의전 격식에는 △국빈 △공식 △공식실무 △실무 △사적 방문의 5단계가 있는데 그 중 3단계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취임한 해인 2013년 5월 5일부터 10일까지 미국을 실무 방문했던 때보다 격이 높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5년에야 미국을 공식 방문했다. 2000년대 들어 미국을 국빈 방문한 우리 정상은 2011년 10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다만 이명박 전 대통령도 취임 직후인 2008년 4월에는 '실무' 방문이었다.

    공식실무 방문이므로 예포 발사 등 국빈 의전 절차는 생략됐지만, 백악관 환영만찬의 의전이 포함됐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백악관에서 외국 정상에게 환영 만찬을 준비하는 것은 모디 인도 총리 이후 문재인 대통령이 두 번째다.

    "국빈에 준하는 예우"는 항상 나오는 말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의 영빈관에 해당하는 블레어하우스에서 3박을 하는 것은 눈여겨 볼만 하다는 분석이다.

    우리나라 역대 대통령 중에서 첫 방미길에 블레어하우스에서 3박을 하는 경우는 문재인 대통령이 최초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 모두 첫 미국 방문 당시 2박을 했다.

    이와 관련, 청와대 관계자는 "역대 대통령이 (워싱턴에서) 2박 3일밖에 일정을 잡지 못했던 이유가 블레어하우스를 쓰지 못해서"라며 "이런 점에서 이번에 문재인 대통령이 3박을 다 사용하게 된 점은 외교 의전상 의미있는 조치"라고 평가했다.

    당초 백악관 측은 공식실무 방문인만큼 내규에 따라 우리 정부에 블레어하우스에서의 2박을 제안했다. 이에 우리 정부는 백악관에 "고조되는 북핵 위기 대처 및 폭넓은 한미동맹 구축을 위해 워싱턴에서 3박을 구상하고 있다"며, 블레어하우스에서의 3박 가능성을 타진했다. 주미한국대사관은 물론 외교부, 청와대까지 나서며 백악관과의 조율 끝에 3박 요구를 관철해냈다.

    일각에서는 외교적 결례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지만, 미국 측이 내규에도 불구하고 3박을 허용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이같은 미국 측의 배려에 우리도 사드 배치를 비롯해 우호적인 화답을 할 필요가 있다는 시각도 있다. 미국의 이례적인 의전 배려에 지난달 국방부 보고누락부터 최근 로이터 인터뷰까지, 사드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고 양국 관계에 균열이 일어난 것이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극적 봉합, 타결되기를 바라는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