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호 경찰국장, 과거 '노동운동' 함께한 동료들 밀고한 대가로 경찰 특채됐다는 의혹지난 8일 KBS, 해당 노동운동조직 수사 책임자가 김순호 특채 관여한 정황 보도했는데… 근거로 사용된 자료는 공무상 기밀, 경찰국 설치 반발하는 경찰 일부의 제보로 의심 김종민 변호사 "김 국장에게 타격 가하기 위해 기밀문서 제공한 것, 국기문란 행위"김순호, 11일 '경찰 특채' 의혹 정면반박… "억측에 소설 같은 소리, 프레임일 뿐"
  • ▲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공식 출범한 지난 2일 오전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경찰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 행정안전부 경찰국이 공식 출범한 지난 2일 오전 김순호 초대 경찰국장이 정부서울청사에 마련된 경찰국에서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강민석 기자
    김순호 행정안전부 경찰국장이 과거 노동운동을 함께했던 동료들을 밀고한 대가로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와 관련해 지난 8일 KBS가 수십년 전 작성된 '피의자 신문조서' 등을 근거로 김 국장이 활동했던 노동운동 조직의 사건 수사 책임자가 김 국장 특채 과정에 관여한 정황을 보도했다. 

    하지만 KBS가 근거로 사용한 자료가 공무상 기밀문서임이 드러나면서 경찰국 설치에 반발하는 경찰 내부에서 '김순호 찍어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김순호에 타격 가하려고 구속영장 신청 기록 등 KBS에 제공"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낸 김종민 변호사는 9일 페이스북을 통해 "1989년 수사기록 원본이 통채로 KBS에 제공되었다면 경찰청 내부의 영구보존 주요 사건기록에 접근할 수 있는 자가 행안부 경찰국 설립, 김순호 경찰국장에게 타격을 가하기 위해 공무상 기밀인 구속영장 신청 기록 원본과 피의자신문조서를 KBS에 제공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사태는 국기문란 행위로서 반드시 유출자가 누구인지, 그 유출 동기, 특히 조직적인 경찰 내 특정 세력의 가담 여부 및 KBS가 공무상 비밀누설 범죄행위인 줄 알면서 가담한 경위도 함께 밝혀야 한다"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은 사안의 심각성을 충분히 인식하고 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공개해야 할 것이고, 신임 경찰청장후보자도 이 부분에 대한 입장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김 국장, '동료 밀고, 경찰 특채' 의혹 전면 반박… "억측으로 구성된 소설 같은 소리"

    한편 김 국장은 동료들을 밀고하고 경찰에 특채됐다는 의혹에 '프레임 씌우기'라며 정면으로 반박했다.

    김 국장은 11일 MBC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프락치) 프레임을 씌운 분들은 그것을 입증해야 한다"며 "경찰국장이 되니까 갖은 억측과 의혹을 제기하는데 어떤 의도가 있는 것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김 국장은 다만 "운동권 활동으로 강제징집이 된 것, 녹화사업을 받았다는 것, 전역 후에 경기도 부천지역의 노동현장에서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활동을 했다는 것은 팩트"라고 언급했다.

    지난 2일 김 국장이 초대 경찰국장에 임명된 이후 그의 경찰 입직 과정을 두고 '프락치' 의혹이 터져 나왔다. 1988년 인노회에 가입해 조직 내에서 부천지역 책임자로 활동하던 김 국장이 동료들을 밀고하고 자신은 경찰에 특채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김 국장은 1989년 4월 돌연 종적을 감췄고, 이 시점을 전후해 인노회를 대상으로 한 경찰의 수사가 전방위로 시작됐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경찰은 인노회 회원 15명을 국가보안법 등 위반 혐의로 구속했고, 1989년 6월 주요 활동가들이 기소되면서 사실상 인노회 조직은 해체됐다. 김 국장은 1989년 8월 경장으로 특채돼 이후 대공분실에 근무하면서 여러 차례 검거 표창을 받고 4년8개월 만에 경위로 초고속 승진했다.

    김 국장은 "제가 진짜 밀고를 했거나 프락치였다면 왜 사라지겠느냐. 의심 받을 것이 뻔한데 인노회 사건이 끝나자마자 어떻게 특채가 되느냐"며 "억측으로 구성된 소설 같은 소리"라고 일축했다. 

    "(1989년) 4월에 주사파로부터 단절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고 밝힌 김 국장은 "그 전부터 회의와 갈등이 있었고, 그래서 고향으로 내려갔던 것인데 공교롭게 도피가 돼버린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인노회 해체된 후 자수 … "전문지식으로 특채된 것" 

    김 국장은 이어 자신은 북한의 주체사상과 공산주의 혁명이론 등에 관한 전문지식으로 특채가 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주사파로 오래 활동을 했다. 주사파가 되기까지 주체사상, 북한의 대남혁명노선, 러시아 혁명을 성공한 레닌의 혁명론 등에 대한 학습이 전반적으로 이뤄졌다"며 이 같은 부분이 전문성으로 인정돼 경찰에 특채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김 국장에 따르면, 그는 인노회가 해체된 이후인 1989년 7월 경찰에 자수했다. "인노회 사건이 마무리가 됐는지 진행이 되고 있는지는 모르는 상태에서 (홍제동 대공분실을) 찾아갔다"며 "나흘간 조사를 받았다"는 것이다. 자수했는데도 형사처벌을 받지 않은 이유는 "왜 면책이 되었는지는 잘 알 수가 없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국장은 "실제로는 군 복무 시절에 녹화사업을 직접 기획했던 분도 있고, 프락치 정황을 의심 받으면서도 아직도 건재하신 분도 있는데 왜 이런 분들에 대해서는 '꿀 먹은 벙어리'냐"며 "왜 이렇게 저에게만 이렇게 매섭게 가혹하게 무차별적으로 이렇게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