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가 된 대한민국 떠안은 尹…前 대통령 취임사 때 없었던 '자유' 외쳐'남북 주사파' '기회주의 중간파' '가짜 뉴스' 업자에겐 고통의 시대 될 것
  • 윤석열 대통령 치세는 어떤 시대가 될 것이고, 되어야 할 것인가? 이걸 그의 취임사에서 판독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을 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대통령 취임사와 비교할 땐 윤석열 대통령만의 차별성을 간파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의 중심 개념은 자유다. 그는 ”우리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제한다. 보편적 가치란 ’자유‘를 말한다. 반지성에 맞서는 ’지성적 자유‘다.  

    ”자유로운 정치적 권리, 자유로운 시장이 숨 쉬고 있던 곳은 언제나 번영과 풍요가 꽃 피었다“ ”개별 국가뿐 아니라 국제적으로도 자유 시민의 존엄한 삶이 유지되지 않으면 모든 세계시민이 연대해 도와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윤석열 취임사는 ’자유‘를 35번이나 절규한다. 자유의 적(敵)을 향한 자유 레지스탕스의 도전장인 셈이다. 그의 취임사가 가진 고유성이다.

    김영삼 대통령 취임사 화두는 ‘문민 민주주의’였다. 그의 민주주의 앞엔 ‘자유’란 접두사가 없다. 단지 ‘문민’이란 말만 있다. 나중엔 무엇이 어떻게 될 값에, 우선 급한 대로 ‘군사 권위주의 타파’만 내세우면 될 것이란 식이었다.

    김영삼 대통령은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더 나을 순 없다”고도 했다. ‘자유 민주주의자’라 하던 그의 말치곤 뜻밖의 것이었다. 한·미 동맹이 그의 마음속에서 그만한 비중밖엔 안 되었다니.

    김대중 대통령 취임사 취지는 ‘민주주의와 경제 동시발전’과 ‘참여 민주주의’였다. 그의 민주주의에도 ‘자유’란 접두사는 없다. 그 대신 ‘참여’란 진보적인 말만 붙어있다.  

    참여 민주주의는 간접 민주주의가 가진 엘리트주의와 관료주의의 단점을 보완하자는 것이다. 발전적 취지다. 그러나 그게 타락하면 중우정치, 홍위병 정치로도 간다.  

    이명박 대통령의 주제는 ‘선진화’였다. 이를 위해 그는 “이념의 시대를 넘어 중도실용 시대로 가자”고 했다. ‘자유’란 말은 또 없었다.

    그는 ‘중도실용’으로 계층갈등을 녹이고, 강경투쟁을 풀고, 노사가 한마음 되자고 했다. 그러나 그의 회유는 먹히지 않았다. 허탕이었다. 운동꾼들이 ‘광우병 난동’으로 그를 정면으로 후려쳤으니 말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사 명제는 ‘경제민주화’였다. 취임사에서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 구호는 퇴색했다. ‘자유’란 말이 새롭게 등장한 것도 아니었다.  

    주목할 것은, 김영삼·김대중·이명박·박근혜 대통령의 이 모든 선의를 남북 주사파는, 호응은커녕 모조리 걷어차고 배척하고 타도하려 했을 뿐이란 사실이다.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democracy after democratization)’ 안착을 위해 지난 대통령들은 그 나름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그래서 일정한 성과도 있었지만, 좌절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무엇이 어땠기에 그런 좌절이 있었던 것일까?

    남북 주사파는 김영삼의 ‘문민’과 ‘민족’ 그리고 김대중의 ’참여‘와 ’진보성‘을 자신들의 숙주(宿主)로 이용만 했을 뿐, 존중하진 않았다.

    남북 주사파는 이명박의 ’이념무장 해제(解除)‘에 ”보수 너희만 해제하고 우리는 안 하고“로 나왔다.  

    남북 주사파, 보수 안 기회주의 중간파, 가짜 뉴스 업자들은 ’촛불‘ 때 박근혜 대통령을 아예 ’죽이다시피‘ 했다. 그 함분(含憤)의 과정에 대해선 더 말하는 것조차 고통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이 아픈 사연들을 배경으로 거의 시체가 된 대한민국을 떠안은 셈이다. 그런데도 그의 시대가 또다시 그 허망한 ’민족 우선주의‘ ’홍위병 정치 ’어중간·어정쩡 기회주의‘를 답습한다면, 그건 말도 안 될 것이다.

    이 성찰에서, 윤석열 대통령 취임사가 ’자유‘를 단순한 경제적 자유주의 수준을 넘는, 철학적·가치론적 세계관 수준으로까지 끌어올린 것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한국 근·현대 정신사에서 가장 결핍된 대목은 개인, 근대성(modernity), 자유 사상(esprit fort), 그리고 글로벌 인식이다.  

    수천 년에 걸쳐, 심지어는 민주화 이후에 와서도, 우리 사회엔 백성·신민(臣民)·가신(家臣)·민중·대중·문중(門中)·강성 지지층·군중·폭민(暴民)·씨족·부족·종족·민족은 있었어도, 자유 개인·자유 시민·자유 국제인은 없었다.

    이런 전근대적 잔재를 의식해 윤석열 대통령은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에서 나아가 ’세계시민‘ 여러분이라고 외쳤다. 오늘의 한국인은 국내 차원뿐 아니라 국제 차원에서도 자유에 기초한 지속 가능한 평화체제를 구축할 연대적 사명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부터 한국인은 인도·태평양 지역은 물론, 글로벌 자유 네트워크의 선두 주자군(群)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선언이다.

    이민진 원작 드라마 ’파친코‘ 주인공들은 말한다. ”역사가 우리를 망가뜨렸다. 그러나 괜찮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 그렇다. 한국인들은 이제 모든 상처를 뒤로한 채 자유와 번영의 새 지구 문명 창출을 향해 항진(航進)할 차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