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 밝혀내도록 직접 챙기겠다더니… 약속 1년4개월 지났지만 연락 못 받아"피살 이씨 아들 "대통령 편지는 비판여론 면피용… 필요없으니 돌려드리겠다"정부, 피격 상황 정보 공개 계속 미뤄… 유족들, 분수대 앞에 文편지 놓고 떠나
  • 서해상에서 북한의 피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의 부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고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 서해상에서 북한의 피격으로 사망한 해수부 공무원의 부인이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이 고인의 아들에게 보낸 편지를 공개하고 있다. ⓒ정상윤 기자
    2020년 9월 서해 최북단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모 씨의 유족이 문재인 대통령의 위로편지를 반납했다. 유족들은 정부를 향해 "더 이상 기대하는 것이 없다"며 피격 당시 상황을 공개하라고 촉구했다.

    이씨의 부인 권모 씨와 친형 이래진 씨 등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2020년 10월 문 대통령이 유족에게 전달한 위로편지를 청와대에 반납했다. 당시 문 대통령은 이 편지에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고 적었다.

    이씨 부인, 아들 편지 대독… "대통령의 약속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

    권씨는 기자회견에서 "여기까지 오게 한 대통령께 화가 난다"며 "약속한 지 1년4개월이 지났지만 어떤 액션도 없고 연락도 받지 못해 더는 대통령 편지를 가지고 있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권씨는 "아들은 앞으로 할 일이 많아 사찰 등 불이익이 있을 수도 있어 궂은일(회견)은 제가 하려 한다"며 아들 이모(19) 군이 직접 작성한 편지를 대독했다.

    편지에서 이군은 "아버지를 월북자로 만드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대통령님의 '직접 챙기겠다. 항상 함께하겠다'는 약속만이 유일한 희망이었다"며 "하지만 대통령의 편지는 당시 비판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면피용에 불과했다"고 편지 반납 이유를 설명했다. 

    이군은 이어 "법이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사실관계를 알고 싶어하는 제 요구를 일부분 허락했지만, 대통령님께서 그것을 막고 계신다"며 "힘 없고 억울함을 외치는 국민을 상대로 항소하는 행동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사실 알고 싶어하는 요구를 대통령이 막고 있다"

    이군은 "무엇이 두려워 법 위에 군림하려는 것이냐"고 따져 물으며 "아버지 죽음에 대한 것들이 왜 국가기밀이며 대통령 기록물로 지정돼야 하는지, 감추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제 의구심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이제 대통령께 기대하는 것이 없다. 무책임하고 비겁했던 그 약속의 편지도 더는 제게 필요가 없으니 돌려드리겠다"고 밝힌 이군은 "저는 지치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 몇 년이 더 걸리고, 싸움의 상대가 설령 대통령님일지라도 진실은 밝혀지고 정의는 살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드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씨의 형 이래진 씨도 "정부가 패소해도 항소를 자제하라고 했던 대통령의 취임 이후 말씀은 무엇이었느냐"며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고 자신의 말씀처럼 행동하시기 바란다"고 꼬집었다.

    유족 측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는 "대한민국 대통령은 부끄러움이 없어야 한다"며 "그것은 투명함에서 시작된다"고 꼬집었다.

    행정법원 "이씨 관련 정보 일부 공개"… 정부 항소로 공개 미뤄져

    기자회견 후 유족들은 청와대 앞 분수대 바닥에 문 대통령의 편지를 놓고 떠났고, 청와대 관계자가 이 편지를 챙겼다. 

    유족들은 청와대로 들어가 1심 법원이 명령한 청와대 국가안보실 자료 공개를 요구하려 했으나, 청와대 직원 및 경찰에 가로막혀 무산됐다. 

    지난해 11월 서울행정법원은 이씨 유족 측이 청와대 국가안보실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소송 1심에서 개인정보를 제외한 부분을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정부가 해당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정보공개가 미뤄지는 상황이다.

    해수부 공무원이었던 이씨는 2020년 9월21일 연평도 해상 인근에서 북한군에 사살된 뒤 시신이 불태워졌다. 국방부는 같은 달 24일 이씨가 피격된 후 시신이 소훼됐다고 공표했고, 해경은 "월북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후 문 대통령은 이씨 아들에게 "아버지를 잃은 아들의 심정을 깊이 이해한다"며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진행하고 진실을 밝혀낼 수 있도록 내가 직접 챙기겠다는 것을 약속드린다"는 취지의 편지를 전달했다.

    김 변호사는 기자회견 이후 뉴데일리에 "문재인정부는 고인이 북한에 의해 살해당하는 것을 막지도 못하고 시신이 불에 타는 것도 막지 못했는데, 이제는 법원 판결에 따른 자료 공개도 막고 있다"며 "문재인정부가 도대체 우리 정부인지, 북한 정부인지 모르겠다"고 질타했다.
  • 이씨 유족들이 기자회견 직후 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편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모습이다. ⓒ정상윤 기자
    ▲ 이씨 유족들이 기자회견 직후 문 대통령의 편지를 반환하기 위해 청와대로 향하다 경찰의 저지로 무산되자 편지를 바닥에 내려놓은 모습이다. ⓒ정상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