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중’ 국민당 제안한 미국산 돼지고기 금지·제4원전 상업발전 개시 등 국민투표 부결
  • ▲ 지난 18일 대만 국민투표에서 국민당이 요구한 4개 안건이 모두 부결, 집권당인 민진당이 사실상 승리했다.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열심이다. 대만 국민들 또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10월 타이페이에서 열린 대만독립시위 모습. ⓒ
    ▲ 지난 18일 대만 국민투표에서 국민당이 요구한 4개 안건이 모두 부결, 집권당인 민진당이 사실상 승리했다. 대만독립을 추구하는 민진당은 미국과의 관계개선에 열심이다. 대만 국민들 또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거부하는 사람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은 2018년 10월 타이페이에서 열린 대만독립시위 모습. ⓒ
    대만 국민들이 지난 18일 치러진 국민투표에서 차이잉원 정부의 손을 들어줬다. 현지 언론들은 “대만이 중국 말고 미국을 선택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중국 관영매체는 대만 국민투표 결과를 두고 “외세를 끌어들이기 위해 국민을 희생했다”며 차이잉원 정부를 비난했다.

    18일 대만 국민투표…국민당 요구 4대 안건 모두 부결돼

    연합보 등 현지언론에 따르면, 지난 18일 대만에서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 ▲제4원전 상업용 발전개시 ▲타오위안 산호초 해안에 건설 중인 천연가스 시설 이전 ▲국민투표일과 대선일 연계를 안건으로 국민투표를 실시했다. 투표 결과 4개 안전 모두 부결됐다.

    이번 국민투표는 야당인 국민당이 추진했다. 4개 안건 모두 집권당인 민주진보당(이하 민진당) 정부의 정책을 뒤집자는 것이다.

    가장 주목 받은 안건은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였다. 국민당은 “미국산 돼지고기에는 락토파민이 함유돼 있다”며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는 독극물”이라고 주장했다. ‘락토파민’은 돼지 등 가축의 성장을 촉진하는 물질이다. 현재 미국, 호주, 캐나다, 한국, 브라질 등 20개국에서 일정 수준 이하(0.01~0.09ppm)의 ‘락토파민’이 함유된 돼지고기는 유통을 허용하고 있다.

    국민당이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를 ‘독극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2011년 중국 본토에서 발생한 ‘독돼지 사건’ 때문이다. 당시 중국에서 문제가 된 돼지고기에는 락토파민이 허용치를 훨씬 넘긴 수준으로 함유돼 있었다. 게다가 고기에서 천식약 성분으로 동물 사료로 사용할 수 없는 클렌부테롤도 다수 검출됐다. 미국이나 한국의 돼지고기와는 차이가 컸다.

    단순한 돼지고기 수입 아닌 대만-미국 FTA를 위한 문제

    차이잉원 정부는 지난해 12월 ‘락토파민 함유 미국산 돼지고기’의 수입을 허용한다는 행정명령을 발표했다. 이는 미국-대만 간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기 위한 조치였다.

    대만은 중국의 압박이 거세지자 미국과의 우호협력을 강화하고 서방진영에 관여하기 위해 미국과의 FTA는 물론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TP)에 가입하려 했다. 그러나 2007년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한 것이 발목을 잡았다. 미국이 돼지고기 수입을 허용해주지 않으면 FTA 협상을 할 수 없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차이잉원 정부가 ‘락토파민 함유 돼지고기’ 수입을 시작한 뒤 그동안 중단됐던 대만-미국 간 무역협상이 재개됐다.

    친중파인 국민당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국민당은 미국산 돼지고기를 ‘독극물’이라 부르며 국민들 감성에 호소했다. 그 덕분인지 투표 직전 여론조사에서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를 찬성한다는 응답자가 55%로 많았다. 하지만 18일 국민투표 결과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금지’를 반대한다는 표가 413만1000여표(50.7%)로, 찬성 393만6000여표(48.3%) 보다 20만 표 더 많이 나왔다. 이를 두고 차이잉원 총통은 “대만 국민은 이번 국민투표를 통해 세계로 나아가겠다는 명확한 신호를 전달했다”고 평가했다.

    연합보 등 현지 언론들은 “차이잉원 정부가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결정한 것은 중국의 군사적 압박 속에서 안보를 의존하는 미국과의 전방위적 관계 강화를 위한 포석이었다”며 “이번 투표 결과는 대만 국민들이 중국이 아닌 미국을 선택한 것”이라는 해석을 내놨다.

    中환구시보, 투표결과 두고 “민진당, 국민 건강 희생해 미국에 줄 섰다” 비난

    ‘탈원전 정책’을 뒤엎으려던 ‘제4원전 상업발전 개시’ 안건도 반대 426만2000여표(52.3%), 찬성 380만4000여표(46.7%)로 부결됐다.

    대만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뒤 거의 완공된 제4원전을 가동하지 않고 봉인했다. 차이잉원 정부는 이후 ‘탈원전 정책’을 표방하며 현재 가동 중인 3개의 원전이 노후화하면 이를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국민당은 꾸준히 원전 가동을 요구했지만 이번 투표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됐다.

    국민당은 이번 투표 결과를 두고 패배를 인정했다. 하지만 중국은 차이잉원 정부를 맹비난했다. 중국 관영 환구시보는 19일 사설을 통해 “민진당이 국민투표에서 승리하기는 했지만 대만 주민의 이익을 배신했다는 진실을 감출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환구시보는 특히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문제를 언급하며 “집권 전에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반대하던 민진당이 집권 후에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의) 강력한 옹호자가 됐다”며 “국민의 건강을 희생해 미국에 줄을 선 것이며, 외세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다 내주겠다는 뜻”이라고 민진당과 차이잉원 정부를 비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