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北 비핵화 우선 '확고'… 북한도 "시기상조" 부정적… "대선용 정치 이벤트" 분석외교안보 전문가 "중국 끼워 베이징올림픽에서 '종전선언' 이벤트 가능성" 예상도
  • 지난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 지난 21일(현지시간)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임기 8개월을 남기고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서 또다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과 관련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 직전 북한의 탄도미사일 도발이 발생한 데다 연설 하루 전에는 "북한이 전속력으로 핵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는 국제원자력기구의 분석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대선을 불과 6개월 앞 둔 상황에서 나온 이번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두고 정치적인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도 나왔다.

    앞서 지난 21일(현지시각)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76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모여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종료됐음을 함께 선언하길 제안한다"고 밝힌 바 있다.

    중국 끼워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서 종전선언 노린 듯

    문 대통령이 임기 마지막 유엔 총회 연설에서 제안한 '종전선언'은 내용면에서 보면 지난 2018년과 2020년의 제안과 크게 다르진 않다. 다만 갑자기 중국을 언급했다는 점이 눈에 띤다.

    취임 이후 줄곧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추진해 온 문 대통령 입장에선 임기 내 이에 대한 일정 부분 효과를 거둬야 한다는 압박감에 중국에게 조력을 구하는 모양새를 취한 것으로 분석된다. 내년 2월 베이징 동계올림픽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남·북·미·중 4자가 모인 가운데 종전선언을 이끌어 낼 수만 있다면 역사에 기록될 정치적 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중국 입장에서도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종전 선언'이 이뤄질 경우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종전선언이 이뤄지지 않더라도 시진핑 주석의 조력 하에 한국과 북한이 '종전 선언'과 관련한 합의 정도만 이끌어낼 수 있다면 중국의 외교적 성과로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방증하듯 중국은 문 대통령의 '종전 선언' 제안 직후 "관련국의 노력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오리젠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2일 정례브리핑을 통해 "한반도의 전쟁 상태를 끝내고 휴전 체제를 (종전 체제로) 전환하는 것은 한반도 문제의 정치 해결 프로세스에 중요한 부분이며 국제사회의 보편적 기대"라며 "중국은 이를 위한 관련국들의 노력을 지지하며 한반도 문제의 중요한 한 나라이자 정전 협정을 체결한 당사자로서 역할을 계속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지난 15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문 대통령을 예방한 자리에서 '종전 선언'에 대한 사전 논의가 있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성사 가능성, 희박해"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과 관련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의견을 냈다. 우선 북한이 최근까지 탄도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어 종전 선언 협상에 응할 가능성이 낮은 데다 종전 선언 이후 취해야 할 조치에 대해 미국과 중국의 입장이 상반되기 때문이다. 특히 비핵화 방식을 두고 미국과 북한의 이견이 좁혀지지 않기 때문에 두 나라가 선언에 동참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범철 경제사회연구원 외교안보센터장은 "종전선언을 위해선 유엔사령부 해체와 주한미군 철수가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여건이 성숙되지 못한 상태"라며 "중국은 없애려고 하고, 미국은 가능하면 지키려 할텐데 8개월 안에 협상을 매듭짓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지적했다.

    신 센터장은 "미·중 간 사전 조율이 없는 상태에서 '종전 선언' 자체만 고집한다면 한반도 평화 문제는 더욱 복잡해질 수 있다"고 부연했다.

    북한이 내년 베이징 동계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는 것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앞서 국제올림픽위원회, IOC는 2020 도쿄올림픽 불참을 이유로 북한올림픽위원회에 2022년 말까지 자격 정지 징계를 내린 바 있다.

    '종전 선언에 대한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을 내놓긴 했지만, 미국의 반응은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종전선언보다 북한 비핵화가 우선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북한의 호응을 끌어내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존 커비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2일(현지시각) 문 대통령의 제안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문에 "종전선언 논의 가능성이 열려 있긴 하지만, 우리는 또한 비핵화를 위해 북한과의 외교 그리고 대화에도 전념하고 있다"며 "목표는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라고 답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유엔 총회 기조 연설에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북한은 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할 당시 김성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아닌 3등 서기관 김남혁을 방청석에 앉혔다. 국내로 따지면 3등 서기관은 5급 사무관 정도의 직급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제원자력기구는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기조연설 하루 전인 20일 "북한의 핵 프로그램이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종전선언'을 대선용으로 활용하려는 의도"

    정치권에는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비핵화, 유엔사령부 해체, 주한미군 철수 등 현실적인 문제를 외면한 채 나온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을 두고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불과 지난주에 있었던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과 계속되는 핵무기 개발에 대해선 언급조차 하지 않은 채 '종전 선언'이란 긍정적인 면만 부각하는 것이 '타이밍'상 적절치 않다는 것을 청와대가 인식하면서도 유엔 총회에서 '종전선언' 카드를 꺼낸 것은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정치평론가는 "시급한 국내 현안을 뒤로 한 채 유엔 측의 화상 진행 권고에도 뉴욕까지 가서 '종전선언'을 제안한 것을 보면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숨어 있다"며 "형식적인 '종전선언' 이벤트가 성사된다면 내년 대선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지 않겠나"고 반문했다.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은 "현실과 동떨어진 제안을 하며 '지독한 짝사랑'만 보여준 문 대통령의 현장 연설은 상호 간에 민망함만 남겼다. 그리고 그 민망함은 항상 국민들 몫"이라며 "'보여주기 위한', '기록용' 참석이 아니었는지 되돌아봐야 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같은 당 김연주 부대변인은 "평화는 선언으로 찾아오는 것이 아니며 실질적인 변화, 북한이 비핵화를 향한 의지가 있음을 실제로 보여주는 실천적 제시가 있을 때 가능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이날 MBC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여러 계기에 북한도 (종전선언을) 합의했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의 테이블에 나오면 언제든지 추진할 수 있다"며 "종전선언은 정치적, 상징적 행위이며, 비핵화를 위한 신뢰구축의 '첫 단계'"라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은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제안에 대해 24일 시기상조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이 '대북 적대시 정책'을 철회해야 종전선언과 관련한 협상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부상은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한 담화에서 "눈앞의 현실은 종전선언 채택이 시기상조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