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서 서북청년회가 세운 '신화적 전공',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나
  • 인천앞바다 팔미도 등대.ⓒ뉴데일리DB
    ▲ 인천앞바다 팔미도 등대.ⓒ뉴데일리DB
    "팔미도 등대 불을 켜라."

    9월 15일 맥아더의 인천 상륙작전에 가장 중요한 것은 깊은 밤 낯선 항로의 '길잡이'다.

    세계적으로 간만의 차가 심한 경기만 바다에 등대들은 모두 파괴되거나 단전상태.

    야간작전에 함정들이 개펄에 좌초되지 않도록 밝혀줄 '안내자'가 절실하였다.

    누가 나섰는가? '서북청년회'다.

    1945년 8월 소련군이 '해방군'을 자처하며 보름만에 북한을 완전 점령한 즉시, 소비에트 공산국으로 바꾸는데 몇 달도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무차별 약탈, 재산몰수, 집단 학살, 강간 등을 자행하며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사람은 모조리 '친일파' 딱지를 붙여 숙청해버렸다.

    그 석달째 함흥에서 청년학생들이 소련군과 북한공산분자들의 만행에 항거하는 시위가 시작되어 급기야 11월 압록강 입구 용암포에서 '반공 폭발'이 일어난다.

    북한공산당이 인민위원회 지지대회를 열어 스탈린과 공산당 찬양을 강요할 때, 중학생(당시 5년제)이 일어나 공산체제를 비판 하자 반공집회로 돌변하였다. 공산당은 적위대를 동원 군중을 공격, 13명의 사상자가 났다.

    잇따라 23일 이웃 신의주에서 6개학교 3500여명이 인민위원회를 향해 항의시위를 벌였을 때 공산군이 무차별 발포, 소련 전투기가 기관총을 난사하였다. 23명이 즉사, 수백명 중상, 2000여명 구속, 100여명 시베리아 유형, 살아 남은 학생들은 탈북한다.

    이 '신의주 학생 반공의거'를 계기로 남한으로 탈출한 북한 청년학생과 일반인의 숫자는 이때만 50만명이 넘었다.

    이들이 유명한 '서북청년회'다.

    그때부터 대한민국 건국과 6.25참전까지 서북청년회가 펼친 반공투쟁 역사는 그야말로 자유투사의 십자군 전쟁이었다.

    미군정의 취약한 경찰력으론 감당 못한 남로당의 총파업에서 기업 구하기, 테러, 제주4.3등 폭동과 반란 진압에 번번이 미군의 지원요청을 받으면 달려가 싸우고 몸을 바쳤다.

    "북한을 해방시키자. 고향에 자유를! 남북한 통일을!"

    김일성 암살시도 세 번, 북한 지하조직 게릴라 투쟁 등은 제외하고라도, 6.25 전쟁에서 국군 서북청년회가 세운 '신화적 전공'은 아무리 높이 평가해도 부족하다.

    첫째, 낙동강 최후전선 대구 교두보의 결사적 방어.
    둘째, 인천 상륙작전 함대 인도 성공, 20여명 전사.
    셋째, 단신 월남자로만 구성한 국군 '백골부대' <철의 삼각지> 혈전 등이다.
    이러니 공산세력은 두고 두고 서북청년회를 저주한다.
  • ▲ "짧은 일생을 영원한 조국에" 비문이 새겨진 반공청년운동기념비(남산공원). 순국한 17,274명의 위패를 모셨다. 1969년 추모제 기념 사진.ⓒ뉴데일리DB
    6.26 도쿄에서 잠자던 맥아더는 이승만 대통령의 호통에 벌떡 일어났다.

    "장군, 미국이 내 말 안 들어서 전쟁 났소. 어서 달려와 이 나라를 구하시오."

    38선에서 무력충돌을 일삼던 북한군이 전면남침하였음을 확인한 이승만은 땅을 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건국직후부터 미군철수 반대, 군사원조 요청, 한미방위조약 체결 등을 수없이 간청했건만 트루먼 미국대통령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무기 타령 말고 국민들 밥 먹일 생각이나 하시오" 이런 답장을 보내고 끝이었다.

    한걸음에 날아 온 맥아더는 수원 비행장에서 평생동지 이승만과 얼싸안고 대책을 서둘렀다.

    6월 29일 한강변 일대를 시찰하면서 "나는 인천상륙작전을 구상했다"고 기록을 남겼다. (맥아더 회고록)

    성공 확률 1/5000이라며 반대하는 미국정부 걱정에 미소로 응답한 맥아더, 국군 특수부대 서북청년회 30명은 미군장교3명과 함께 먼저 출발하였다. 영흥도를 전진기지 삼아 덕적도, 팔미도 등 섬들을 샅샅이 탐색하며 준비완료.

    D데이 H아워 9월 15일 0시.

    팔미도 등대에 불이 켜졌다.

    기다리던 261척 대선단이 월미도 앞으로 대거 쇄도, 인천일대에 함포사격을 퍼붓는다. 상륙작전 승리!

    침투작전 등대 점화 유공자는 미국 훈장을 받았다.

    오호라…. 영흥도에 남아 수비하던 서북청년회 20여명은 북한군과 현지 공산패들에게 역습당하여 안타깝게도 전사하고 만다.

    여기 '서북청년행진곡'을 소개한다.

    날마다 정오를 알리는 싸이렌이 울리면 광화문에 모여 반공시위할 때나 행사때마다 부르던 노래, 만주 독립군 노래에 가사만 바꾼 것, 서북은 평안도를 말한다.

    우리는 서북청년군 조국을 찾는 용사로다
    나가 나가 38선 넘어 매국노 쳐버리자
    진주(眞珠) 우리 서북(西北) 지옥이 되었구나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등잔 밑에 울고 있는 형제들이 있다
    원수한테 짓밟힌 꽃봉오리가 있다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동지는 기다린다 어서 가자 서북에!


    지금 우리 국군 병사들은 인천상륙작전에 대하여 무엇을 어떻게 알고 있을까?

    그 기념식을 열기는 하겠지?

    국군통수권자도 참석 하겠지?
  •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자료사진
    ▲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을 지휘하는 맥아더 장군.ⓒ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