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역사의 교훈
  • ▲ 지난 8월 22일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현지인과 외국 체류자가 수도 카불의 하마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C-17 글로브매스터3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미 공군 제공 / 뉴시스
    ▲ 지난 8월 22일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현지인과 외국 체류자가 수도 카불의 하마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C-17 글로브매스터3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미 공군 제공 / 뉴시스
    [이철영 칼럼]

    <아프가니스탄 사태와 역사의 교훈>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의 정권 장악 후 8월 30일 미군병력이 탑승한 미군의 마지막 C-17수송기가 아프가니스탄 ‘카불’공항을 이륙함으로써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20년 만에 끝났다. 2001년 미국이 ‘9.11테러’의 배후자 ‘빈 라덴’의 인도를 거부한 ‘탈레반’ 정권의 아프가니스탄을 공격하면서 시작된 이 전쟁에서 미국은 2조 달러(약 2,300조 원) 이상을 쏟아 부었고 미군 2,400여명이 사망했다.

    미국이 철수작전을 펼치고 있던 지난 8월 26일 ‘카불’공항에서 'IS-K'가 미군을 포함 100여명이 사망한 자살폭탄테러를 저질렀다. 국내외의 비판과 우려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강행한 바이든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논란이 계속되는 가운데, ‘탈레반’ 정권의 재등장과 ‘IS-K’의 테러 위협 등의 위기 상황에 대한 미국의 향후 대응을 전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이 지역의 정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슬람무장단체들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무자헤딘’, ‘탈레반’, 그리고 ‘알 카에다’

    ‘무자헤딘(Mujahideen)’은 성전(聖戰, 지하드)을 행하는 이슬람 전사(戰士)를 뜻한다. 아프가니스탄에서는 1979년 소련의 침공을 계기로 결성되었다. 이란에서는 1965년에 노동자와 학생을 주축으로 ‘인민의 성전 전사(戰士)’라는 의미의 이슬람사회주의 무장단체 ‘모자헤딘 할크(Mojāhedine Khalq)’가 결성되어 반(反)팔레비 무장투쟁에 이어 1979년 ‘호메이니’ 정권 탄생 이후에는 ‘호메이니’ 정권에 항거하는 투쟁을 벌였다.

    미국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당시 돌풍작전(Operation Cyclone)이라는 이름으로 파키스탄정보부(ISI: Inter-Services Intelligence)를 통해 아프간 ‘무자헤딘’에게 자금과 무기를 지원했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는 막대한 돈으로 ‘무자헤딘’ 요원들을 양성했고, 'ISI'는 미국 지원금 분배와 ‘무자헤딘’ 요원들의 아프가니스탄 투입을 맡았다. 특히 ‘무슬림형제단’ 단원이었던 ‘압둘라 아잠(Abdullah Azzam)’과 그의 제자 ‘오사마 빈 라덴(Osama bin Laden)’이 결성한 ‘마크탑 알-키다맛’(Maktab al-Khidamat: MAK)은 사우디아라비아와 'ISI'의 지원 속에 ‘무자헤딘’ 대원들을 훈련시키고 무기를 공급했다.

    그 후 아프가니스탄을 군사력으로 지배하려던 ‘압둘라 아잠’과 무장단체에 자그을 지원해 중동의 이슬람혁명을 확대하려던 ‘빈 라덴’간의 의견 차이로 ‘빈 라덴’이 독자적으로 창설한 무장단체가 ‘알 카에다(Al-Qaeda)’이다. 1989년 ‘압둘라 아잠’이 암살되면서 MAK는 ‘알 카에다’에 흡수됐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파키스탄이 반미국, 반유대를 표방하는 이슬람원리주의 과격무장단체 ‘알 카에다’ 결성에 결정적인 지원을 한 셈이다.

    아프간 ‘무자헤딘’은 10년간 미국·파키스탄·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지원을 받으며 1989년 소련군 철수에 이어 1992년 ‘나지불라(Najibullah)’ 친소련 괴뢰정권을 몰아냈다. 소련의 철수 이후 북아프리카 국가에서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되었던 ‘무자헤딘’들은 투쟁 방향을 잃고 혼란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 미군의 사우디아라비아의 이슬람 성지 메카와 메디나 상주는 전체 무슬림들의 반발을 초래하여, 오갈 데 없던 ‘무자헤딘’들이 반미성전이란 기치 하에 ‘빈 라덴’의 ‘알 카에다’로 결집하게 되었고, 아프가니스탄 참전 ‘무자헤딘’들에게 새로운 투쟁 방향을 제시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 후 아프간 무장단체간의 갈등과 분열을 거치면서 1994년에 ‘탈레반’이 결성되었고, ‘무자헤딘’은 1996년에 ‘탈레반’에게 수도 ‘카불’을 빼앗겼다. 이후 ‘무자헤딘’은 ‘아프가니스탄 북부동맹’ 등 반(反)탈레반 동맹에 참가해 게릴라전을 펼치다가 2001년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상대로 전쟁을 벌이자 ‘탈레반’ 정권 축출에 가담했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주(州)에서 수니파 이슬람근본주의 교리를 공부하던 파슈툰족 대학생 조직에서 결성된 무장 이슬람정치조직이며, 이들은 안정적인 이슬람국가 건립을 목표로 삼고 파키스탄정보부(ISI)의 지원을 받으며 성장했다. 집권 후 ‘탈레반’은 이슬람교리의 엄격한 해석과 이슬람식 가혹한 처벌제도 부활, 여학교 폐쇄, TV 금지, 아동학대 등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샀으며, 아프가니스탄 내 불교 유적과 불상 등 역사적 유물들을 파괴하는 등의 만행을 일삼았다.

    ‘빈 라덴’의 ‘알 카에다’는 1993년 소말리아, 수단에서의 미군 공격을 비롯해 2001년 9.11테러,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미군기지 폭파, 케냐와 탄자니아 미국대사관 폭파 등의 대규모 테러를 저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프가니스탄이 미국의 ‘빈 라덴’ 인도 요구를 계속 거부하자 2001년 10월 7일 미군과 영국군이 합동으로 공격을 시작하면서 미국·아프가니스탄 전쟁이 시작되었고, 결국 ‘알 카에다’를 비호하던 아프간 ‘탈레반’ 정권은 축출되어 파키스탄 접경지역으로 도피했고 '알 카에다’도 큰 타격을 입었다.

    ‘IS(ISIS)’와 ‘IS-K’

    ‘이슬람국가(IS: Islamic State)’는 ‘알 카에다’의 하위조직으로 2006년 ‘이라크 이슬람국가(ISI: Islamic State of Iraq)’로 처음 등장한 후 2014년에 급진 수니파무장단체인 ‘이라크-레반트 이슬람국가(ISIL)’로 독립하여 이라크에서 테러활동을 벌였다. 이들은 ‘알 카에다’와 20여년간 우호관계를 유지했던 ‘탈레반’까지도 적대시하는 극단적인 이슬람 무장단체이다.

    서방국들은 ‘IS’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들을 폄하해서 ‘다에시(Daesh)’라고 부르거나 다른 이슬람 국가들과의 혼동을 피해 이들을 ‘ISIS(Islamic State in Iraq and Syria)’나 ‘ISIL(Islamic State of Iraq and the Levant)’로 칭한다. ‘IS’는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와는 달리 중앙집권적 체제로 조직을 이끌면서 시리아 일부 지역과 이라크 제2도시 ‘모술’ 등으로 세를 확장했으나 2014년부터 미국 주도의 국제동맹군이 ‘IS’ 격퇴에 나서면서 와해되기 시작했다.

    2017년 7월 ‘IS’는 3년간 점거했던 거점도시 이라크 ‘모술’에서 쫓겨난 후 10월엔 미국 등 서방국가들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민주군(SDF: Syrian Democratic Forces)’에 의해 본거지인 시리아 ‘락까’에서도 패퇴했다. 이어서 2019년 3월 ‘IS’의 마지막 거점이었던 시리아 동부 접경도시 ‘바구즈’까지 잃고, 같은 해 10월 26일 미군에 쫓기던 ‘IS’ 수장 ’아부 바크르 알 바그다디(Abu Bakr al-Baghdadi)’가 자폭하면서 조직 대부분이 와해되었다.

    그럼에도, 2021년 8월 15일 ‘탈레반’이 재집권한 이후 8월 26일 극단주의 무장단체인 ‘IS-K(IS Khorasan: 이슬람국가-호라산)’가 ‘카불’ 공항에서 대규모 자살폭탄테러를 자행했듯이 아프가니스탄에서 다시 ‘IS’의 테러 위험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IS-K’는 ‘IS’의 지부를 자처하며 2014년부터 아프간 동부지역에서 2,000명 내외의 조직원이 활동하고 있는 무장단체이다. ‘호라산’은 고대 페르샤어로 ‘해 뜨는 땅’을 의미하며, 오늘날 파키스탄과 이란, 아프간 등 중앙아시아의 일부를 나타내는 역사적 명칭이다.

    이 단체는 조직원수가 적어 숨어 지내면서 올해 초부터 아프가니스탄 내에서 수십 건의 테러를 자행했다. UN 발표에 따르면 최근 몇 달에 걸쳐 1만명 내외의 이슬람 전사(戰士)들이 국외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진입했으며 이들 대부분이 ‘탈레반’이나 ‘알 카에다’ 관련자들이지만 일부는 ‘IS-K’와 동맹관계에 있다고 한다. 미국과 평화협상에 나섰다는 이유로 '탈레반'을 배교자로 규정한 ‘IS’가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을 제압하고 진정한 ‘칼리프(Kalif) 국가’를 세우려 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

    ‘헤즈볼라(Hezbollah)’는 아랍어로 '신의 정당’을 의미하며 ‘호메이니’의 이슬람원리주의에 영향을 받아 1983년 레바논에서 결성된 중동 최대의 시아파(Shiite) 이슬람 무장단체이자 정당조직이다. 이들은 시리아와 이란의 지원을 받으며 레바논 정규군보다 강력한 무력을 소유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주로 미국과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테러를 자행한다.

    ‘헤즈볼라’는 1983년 4월 레바논 주재 미국대사관 건물에 자살차량폭탄테러 감행, 같은 해 10월 베이루트 주재 평화유지군 막사에 자살폭탄테러 감행 등으로 그들의 존재를 과시했다. 미군 241명과 프랑스군 58명이 사망한 이 공격 이후 미국 레이건 정부는 레바논에서 철수를 결정했고, ‘헤즈볼라’는 자폭테러로 미국을 이긴 아랍권의 영웅으로 떠오르며 급격히 성장했다.

    ‘헤즈볼라’는 설립자 ‘아바스 알무사위(Abbas al-Moussawi)’가 1992년 이스라엘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사망한 이후 ‘핫산 나스랄라(Sayyed Hassan Nasrallah)’가 이끌고 있다. 2000년 이스라엘군이 레바논 남부에서 철수한 이후 ‘헤즈볼라’는 무장집단에서 정당으로 변신하여 2005년 최초로 연정내각에 참여했다. 2018년 ‘헤즈볼라’는 레바논 총선에서 동맹정파와 함께 전체 128석 중 과반수인 67석(52.3%)을 차지했다.

    ‘하마스(Hamas)’는 1987년 이스라엘에 항거하는 팔레스타인인들의 대대적인 봉기(1차 인티파다, ‘Intifada’) 당시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Muslim Brothers)’의 팔레스타인 지부가 독립해 셰이크 ‘아마드 야신(Ahmad Yasin)’이 설립한 정치조직이다. ‘하마스’는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머리글자로 '용기'를 뜻하며, 이슬람 수니파(派) 원리주의를 근본으로 이스라엘 점령하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완전한 해방과 이슬람 교리를 지키는 국가 건설을 목표로 한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슬람교와 유대교의 투쟁으로 정의하며 이스라엘과의 협상에 적극적인 ‘PLO(팔레스타인해방기구)’ 지도자에 대한 공격 등 각종 테러에 관여해 왔다. 한편 ‘하마스’는 자폭테러·무력투쟁 등의 투쟁활동 외에 학교·병원 건설 등의 사회사업을 병행하며 민심을 얻었다. 2000년의 2차 ‘인티파다’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PLO’가 급속히 약화되면서 ‘하마스’가 주류세력으로 부상했다.

    이스라엘은 2004년 3월 ‘하마스’의 지도자 ‘아마드 야신’을 아파치헬기의 미사일 공격으로 살해하고 4월에는 후임 지도자인 ‘압델라지즈 란티시’까지 미사일 공습으로 살해했다. 그러나 ‘하마스’는 2006년 1월 치러진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총선에서 132석 중 73석을 차지하며 40년 동안 집권해온 ‘파타당(Fatah Party)’을 누르고 집권당이 되었다.

    아프간 사태의 교훈

    2021년 4월 미국 바이든 정부가 9월 11일 이전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완전히 철수한다고 밝히자 ‘탈레반’은 그 세력을 더욱 확장시켜나갔다. 미군 철군이 시작되고 ‘탈레반’이 수도 ‘카불’ 점령을 코앞에 둔 상황에서 8월 15일 ‘아슈라프 가니’ 아프가니스탄 대통령은 “평화로운 정권이양”을 내세우며 항복을 선언하고 국외로 도피했다.

    결국 ‘아프가니스탄 이슬람공화국’은 미군철수 시작 3개월만에 무너졌고 ‘탈레반’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이슬람토후국’이 다시 들어섰다. 싸울 의지도 없이 기강이 무너진 아프간 정부군에겐 최신 장비도 무용지물이었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군이 스스로 싸우려 하지 않는 전쟁에 미군이 대신 싸울 순 없다”고 했다.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전쟁에서 2조 달러(약 2,300조원) 이상의 돈을 퍼붓고  2,400여명의 미군이 사망한 것뿐만 아니다. 아프간 정부군은 실제로 존재하지도 않는 군인을 명부에 올려 급여를 착복했다. 문서상 정부군 병력은 30만명이 넘었지만 실제는 6분의 1 수준이었다고 한다. 철군 종료 후 미국 바이든 대통령은 “미국의 국익 없는 곳에서 싸우는 과거 실수를 반복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과거 베트남전 때에도 비슷한 상황이었다. 당시 남베트남의 공군력은 세계 4위 수준이었고, 정규군 57만명에 전차, 함정, 항공기 등 모두 북베트남군을 압도했다. 그러나 남베트남군 수뇌부가 미군이 지원한 전투기, 탱크 등을 북베트남군에 팔아 넘겼고 남베트남군 57만 중 10만명 정도가 뇌물을 주고 대학에 다니거나 기업에 취업했다고 한다.

    또한 오랜 전쟁에 지친 남베트남 국민들과 정치인들은 사이공 시내에서 연일 “민족끼리 평화롭게 살자”며 ‘민족해방’과 ‘민족통일’을 외치는 시위를 했다. 북베트남의 평화협상 제안에 따라 1973년 1월 27일 ‘파리평화협정’이 체결되고 2개월만에 미군이 완전 철수했다. 남베트남은 미군 철수 2년 후 북베트남의 침공으로 4개월 만인 1975년 4월 30일 결국 항복하고 공산화됐다.

    미군 철수 이후 ‘탈레반’이 정권을 장악한 현재에도 아프가니스탄 정부군 잔존 세력과 ‘탈레반’에 반대하는 군벌들이 ‘카불’ 북동부 판지시르주(州)에 집결해 결사항전을 다짐하고 있다. 이들은 '아프가니스탄공화국'의 국부이자 전쟁영웅인 ‘아흐마드 샤 마수드(Ahmad Shah Massoud)’의 아들 ‘아흐마드 마수드’(1989년생)의 휘하로 집결하고 있다고 한다. 테러를 계속하고 있는 ‘IS-K’와의 충돌 또한 '탈레반' 아프간 향후 정국의 화약고이다. 이런 점에서 아프간 내전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아프가니스탄과 남베트남의 패망은 우리에게 교훈을 준다. 양국이 모두 미군철수 직후 패망했고, 특히 베트남의 경우는 우리처럼 남북분단국이었고 지금 우리처럼 “민족끼리 평화롭게 살자”며 평화와 통일을 외치다 공산화되었다. 그런데 지금 문재인 정권의 대한민국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우선, 우리 군의 기강과 사기가 망국의 수준이다. “훈련 때 땀방울이 전시의 피를 줄인다(Sweat more in training – Bleed less in battle!)”는 말이 있다. 문재인 정부의 대한민국 국군은 북한 눈치를 보며 스스로 경계초소들을 허물고 코로나 방역을 핑계로 야외기동훈련을 하지 않고 있다. 기강이 해이되면서 대한민국 전군의 최대 이슈가 ‘성추행’과 ‘부실급식’이라니 기가 막힌다. 일당독재의 국회에서는 국가보안법 철폐를 외치고 있고, 범여권 의원 74명이 한미연합군사훈련 연기 촉구 성명서를 냈고, 국내외의 반대여론에 아랑곳없이 언론에 재갈을 물리는 언론중재법 입법을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도 “미국의 국익이 없는 곳"이 될 수도 있다. 남의 실수를 보고도 배우지 못하면 죽고 나서야 자손들이 죽는 맛을 알게 될 것이다. 월남, 독일, 아프간의 역사에서 보듯이 평화나 통일은 무력이나 경제력으로 이긴 자가 쟁취하는 것이지 '평화통일'을 목청 높여 외친다고 공동의 향유물로 떨어져 내리는 것이 아니다.
  • ▲ 지난 8월 22일 탈레반 치하의 아프간을 탈출하려는 아프간 현지인과 외국 체류자가 수도 카불의 하마드 카르자이 국제공항에서 미군의 C-17 글로브매스터3 수송기에 오르고 있다. ⓒ미 공군 제공 / 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