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선에서 그 표가 유지될까… '대중주의'에 기댄 경선은 위험
  • ▲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부터 윤석열, 최재형, 박찬주, 안상수, 장성민, 원희룡, 하태경, 황교안, 박 진, 장기표, 유승민, 홍준표 예비후보). ⓒ이종현 기자
    ▲ 국민의힘 대선 예비후보들이 지난달 25일 오후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국민 약속 비전 발표회'에 앞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왼쪽부터 윤석열, 최재형, 박찬주, 안상수, 장성민, 원희룡, 하태경, 황교안, 박 진, 장기표, 유승민, 홍준표 예비후보). ⓒ이종현 기자
    정당은 같은 정체성을 공유하는 사람들끼리 만드는 이념 집단이다. 2020년 총선에 패한 이후 보수 정당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주장이 “이념에서 벗어나자”는 주장이다. 기존의 보수당 정체성이 지나치게 극우적이니, 중도 포괄 스펙트럼에 맞는 입장으로 방향을 선회하자는 것이다. 정치도, 선거도 승패가 갈리는 게임이라는 점에서는 일견 전술적으로 맞는 판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문제는 정당이 전략적으로 외연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이질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들어오는 것에 더해, 도저히 합의할 수 없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들까지 개입하게 될 때 벌어진다. 지난 2020년 4.15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출마를 준비했다가 서울의 당선가능성이 높은 지역구에 미래통합당 후보로 공천을 받은 어느 청년이 문제가 됐다.

    2019년 조국사태 이후 여권 심판 프레임이 확산되지 않았더라면, 그는 미래통합당을 쳐다보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또 그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받은 선물에 공개적으로 감사 표시를 하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취임식을 온라인으로 생중계하기도 했던 업체의 대표였다. 그런 인물을 두고 당시 모 공관위원은 “이 정도 인사는 포용력 있게 받아주는 당이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런저런 내홍 끝에 공천은 없던 일이 됐다.

    제 1 야당은 지난 4.15 총선에 실패한 후 독특한 반성문을 썼다. “지나치게 극우적이고, 정권 심판론에 기대어 선거에 망했다.” “과거에는 보수당 안에 개혁파가 있었지만 탄핵 정국이 되고, 자유한국당이 되면서 개혁파의 씨가 말랐다.” 한마디로 중도층, 아니 진보지지층까지 포용할 수 있는 수준의 보수가 되겠다는 선언이었다.

    소비자층을 확대해야 하는 정치마케팅 관점에서 보면 썩 틀린 말 같지도 않다. 지금의 2.30대는 보수 정당에 투표해본 경험이 많지 않은 세대다. 그러나 조국 사태로 인한 불공정에 대한 분노가 자리 잡혀 있어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이 자리잡은 이들에게 보수당이 민주당에 비해 꿇릴 것 없는 브랜드를 장착하고, 부동층 유권자들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상품을 공급하는 것은 충분히 ‘전술’로 이해할 수 있다.

    문제는 정당 민주주의의 본질

    그런데 이러한 부동층, 무당층을 넘어 민주당을 ‘익숙한 상품’ 내지는 ‘거부감 없는 상품’ 정도로 여기는 사람이, 당을 대표하는 대선주자의 선발까지 개입할 수 있는 상황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조직력이 강한 강성 민주당 지지자에게 의견을 묻는 경우는 문제가 더 심각하다.

    더불어민주당에서도 한때 ‘역선택 논쟁’이 제기됐다. 우파 성향 유권자들이 대거 당 경선에 개입할 가능성을 차단해야 한다는 요지였다. 이에 민주당은 ‘예비경선’이라는 제도를 두고 말 그대로 ‘컷오프’ 차원에서만 외부인까지 참여하는 여론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그리고 수치는 대외적으로 공개하지 않았다. 또한 민주당은 본경선에서는 ‘국민선거인단’이라는 제도를 통해 비(非) 당원 유권자들의 난입으로 인한 부작용을 어느 정도 여과할 수 있는 절차를 거쳤다.

    대선후보 경선의 막이 오른 국민의힘에서도 ‘역선택 논쟁’이 시끄럽다. 어떤 후보는 과거에 자신이 역선택을 반대하던 입장을 뒤집어 이를 외연 확장이라고 이야기하고, 어떤 후보는 역선택 방지조항을 여론조사에 넣자는 후보들을 겁쟁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이것은 본선에서의 경쟁력을 생각하면 함부로 일축할 수 없는 걱정이다.

    지금 경선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에게 받은 지지가 본선에서 유지되느냐는 진보 보수 양 진영의 응집력을 고려했을 때 그렇지 않다는 대답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한마디로 ‘줬다 뺏는 표’다. 여론조사가 악용될 가능성을 여러 모로 차단하는 절차가 고려되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대중주의에 기대어 경선을 운영하는 것은, 정당 조직으로서의 기본을 포기하는 길 아닐까.

    국민의힘 대선 경선은 정권교체 열망을 온전히 담아낼 최후의 보루다. 개방 여론조사를 시행하면서 "정권교체에 찬성하십니까" 여부를 묻는 것은 물론이고, 이외의 다양한 대책을 마련해 과학적인 경선을 치뤄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의 힘은 계속해서 민주당과 그  지지자들의 조종으로 우롱당하는 정당으로 전락할 위험이 높다. 그 어떤 후보도 왜곡된 세력에 편승한 결과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권·의석·지자체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야당의 결정권마저 빼앗기려 하는가. 국민의힘이 '줬다 뺏는 표'에 휘둘려 견제 능력을 상실한 '관제야당'으로 전락하지 않기 바란다. 미래를 걱정하는 청년들의 간절한 절규를 들어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