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공중전화’ 설치협약 맺은 민간업체들, 훈련병까지 휴대전화 허용 검토하자 고사 위기국방부 “민원 접수했고 검토 중… 훈련병 휴대전화 사용 확정 안 돼. 업체들 우려는 기우”
  • 2019년 1월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부대의 영상공중전화 부스. 휴대전화 사용 허용 전에는 항상 북적였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9년 1월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시범적으로 실시한 부대의 영상공중전화 부스. 휴대전화 사용 허용 전에는 항상 북적였다고 한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국방부는 지난해 7월부터 일반 부대 장병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휴가가 제한되면서 병사들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조치였다. 최근에는 훈련병에게도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런데 이 같은 조치로 수백억원의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있다. 전국 군부대에 영상공중전화를 설치한 기업들이다. 국방부는 이들 기업과 맺은 협약을 내세워 정책 변경 때문에 발생한 손실의 보전 요구도, 사업 철수 요구도 거절하고 있다.

    국방부, KT 공중전화 철수할 때 민간업체와 화상전화 설치협약

    과거 군부대마다 있던 공중전화는 이미 사라졌다. 군 당국은 2016년부터 중대마다 수신 전용 공용 휴대전화를 두고 병사와 부모 또는 친구·연인 간의 영상통화를 제한적으로 허용했다. 2018년 4월부터는 국방부 직할부대를 시작으로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했다. 

    이후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는 부대는 늘었다. 그 결과 군부대 공중전화는 사용자가 사라졌다. 결국 KT링커스(KT의 공중전화사업 자회사)는 2019년 5월 군 부대 공중전화사업을 철수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런데 군 당국은 2019년 2월 민간기업을 대상으로 ‘영상공중전화’사업 공개입찰을 진행했다. 병사 100명당 영상공중전화 1대를 설치하는 사업이었다. 3개 업체가 ‘영상공중전화’사업자로 선정됐다. 이들 업체는 국방부와 협약한 뒤 육·해·공군과 계약했다. 협약의 총괄 관리는 국방부가 맡았다.

    업체들은 이후 전국 군 부대에 영상공중전화 1만5000여 대를 설치했다. 군부대에 영상공중전화를 설치하고, 통신망을 연결하는 데 국방부의 돈은 거의 들지 않았다. 통신망과 기기 유지·보수비용도 업체가 100% 부담하기로 했다.

    육군훈련소와 신병교육대, 후반기 교육기관 등에 설치한 공중전화는 더 많다. 사업 추진 당시 국방부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므로 군 공중전화 시장에 변화가 생겼다”며 당초 5만5000대를 설치하려던 것을 1만5000대로 줄였다. 

    국방부는 이런 환경 변화가 있어도 영상공중전화사업에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방부가 “병사들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다고 해도 카메라 기능은 차단하고, 사용 시간 또한 제한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는 것이 업체 측의 주장이다. 

    특히 국방부는 병사들의 휴대전화 영상통화를 금지하는 동시에 신병훈련소 등 교육기관, 전방 소초(GP)에서는 휴대전화 사용 자체가 제한된다면서 각 부대에 맞는 영상공중전화 종류를 제시하는 등 사업 추진을 독려하기도 했다.

    업체들은 국방부만 믿고 2019년 11월1일 5년짜리 사업협약을 맺었다. 기업들은 그러나 국방부가 협약으로 자신들을 궁지에 몰아넣으리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KT 공중전화가 철수한 뒤 각급 부대에 설치된 영상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병사들. ⓒ영상공중전화 업체 공개사진.
    ▲ KT 공중전화가 철수한 뒤 각급 부대에 설치된 영상공중전화를 이용하는 병사들. ⓒ영상공중전화 업체 공개사진.
    코로나 대유행으로 병사 휴대전화 사용 제한 사실상 없애… 기업들 외면한 국방부

    영상공중전화사업을 시행한 지 얼마 안 돼 코로나 사태가 터졌다. 군 당국은 방역 강화를 위해 모든 병사들의 외출·외박·면회·휴가를 제한했다. 

    이 조치가 두 달을 넘기자 병사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다. 언론도 비판했다. 병사 부모들의 항의도 심각했다. 결국 군 당국은 ‘지휘관 재량'으로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제한을 줄이도록 유도했다.

    국방부는 또한 코로나가 한창 확산하던 지난해 7월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하기로 했다. 규제는 한 번 풀어지면 다시 조이기 어려운 법. 병사들의 불평불만을 달래기 위해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늘려주는 부대도 생겨났다. 이는 영상공중전화 매출의 급격한 감소로 이어졌다.

    A사 관계자는 이로 인한 손해를 상세히 설명했다. 업체들이 전국 군부대에 1만5000대의 영상공중전화를 설치하는데 들인 돈은 150억원가량이다. 여기에 영상공중전화를 유지하는 데 사용되는 통신회선 비용은 월 2억원 상당, 기기 유지·보수에 드는 비용은 월 6억원이나 됐다. 

    영상공중전화 대수가 많다 보니 업체들이 이를 유지하는 데 드는 비용이 실제로는 연간 80억원이 넘는다는 것이 A사 관계자의 설명이었다.

    그나마 육군훈련소와 신병교육대 등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는 곳에서 발생하는 매출, 각 업체들이 다른 곳에서 버는 수익으로 적자를 메우는 상황이라고 A사 관계자는 밝혔다. 

    이런 가운데 최근 육군훈련소의 무리한 방역조치로 문제가 생기자 이를 해결한다며 구성한 병영생활 개선 민관군협의회에서 “훈련병의 휴대전화 사용 허용을 검토하겠다”고 밝히자 업체들은 “더 이상 못 참겠다”며 공동으로 법적 대응을 준비 중이라고 A사 관계자는 밝혔다.

    “정책 변화로 수익 못 내는데 사업 철수 허용하고 손실 보전해 줘야”

    국방부와 업체들이 맺은 협약 가운데는 영상공중전화 서비스를 5년간 무조건 유지하도록 하는 규정도 있다고 한다. 사업 환경이 바뀐 업체들은 이 같은 규정이 자신들을 고사시키는 ‘독소조항’이라고 주장한다.

    업체들이 “병사들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정책 변화로 사업 환경이 바뀌었다. 손실 보전이 필요하니 요금 인상을 허용해 달라”고 요구하면 국방부의 화상전화사업 담당 부서는 “계약 당사자는 우리가 아니다. 계약을 맺은 각 군부대에 가서 논의하라”며 검토를 거부했다고 한다. 

    업체가 실제로 계약한 각 군 22개 사령부급 부대는 “우리는 국방부 지시를 따를 뿐”이라면서 논의를 거절했다. 이렇게 국방부와 각 군이 사업 변경 또는 철수에 관한 논의를 거부한 것이 1년도 더 넘었다고 업체 측은 주장했다.
  • 영상공중전화 업체가 지난 7월 제공한 사진.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뒤 영상공중전화 부스는 쓰레기통처럼 변했다. ⓒ영상공중전화 유지보수 기사 촬영사진.
    ▲ 영상공중전화 업체가 지난 7월 제공한 사진.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을 허용한 뒤 영상공중전화 부스는 쓰레기통처럼 변했다. ⓒ영상공중전화 유지보수 기사 촬영사진.
    이와 관련해 국방부의 견해를 물었다. 담당 부서는 며칠 뒤 공보실을 통해 “관련 내용에 대한 업체들의 민원을 현재 접수해 검토 중”이라면서 “향후 업체 측과 분쟁이 발생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관련 답변을 드릴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놨다. 

    담당 부서는 또한 “훈련병의 휴대전화 사용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업체들이 너무 앞서나가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군서도 허용 않는 ‘훈련병 휴대전화 사용’ 허용하려는 文정부

    업체들의 상황은 지난 4월 이후 더욱 악화했다. 소위 ‘병영문화 개선 민관군협의회’가 내놓은 정책이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지난 4월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이하 육대전)’에서 휴가 후 격리조치된 병사들의 부실급식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다. 5월에는 육군훈련소에 입소한 신병들이 급식에서부터 휴대전화 사용 등에 관한 불만을 쏟아냈다.

    현재 육군훈련소를 비롯해 각 부대 신병교육대는 훈련병의 휴대전화 사용을 제한한다. 이는 미군을 비롯해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 ‘군 기강 확립’을 위해 시행하는 조치다. 

    하지만 육군훈련소 부실급식에서 시작된 문제가 정치적 쟁점으로 비화하면서 국방부와 각 군은 훈련소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제한을 풀어 주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결국 국방부가 지난 6월에 꾸린 ‘병영문화 개선 민관군협의회’는 회의 끝에 7월14일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 시간을 기존의 일과시간 이후에서 하루 종일로 바꾸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일주일 뒤에는 육군훈련소와 각 부대 신병교육대 훈련병들에게 휴대전화 사용 허용을 검토한다고 밝혔다. 

    계획은 먼저 육군 1개 사단 신병교육대를 대상으로 시범실시한 뒤 그 결과에 따라 확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군 안팎에서는 ‘병영문화 개선’이라는 주제가 ‘정치적 쟁점’이 된 만큼 사실상 훈련병에게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허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병사들의 휴대전화 사용에 대한 군 정책이 지금 방향대로 계속 이어진다면 저희들 업체의 사업이 망하는 것도 망하는 것이지만 그보다 군 보안정책에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것”이라고 A사 관계자는 지적했다. 

    ‘육대전’ 사태를 통해 “휴대전화로 군 내부 상황을 폭로하면 국방부는 물론 지휘관·장교들이 꼼짝 못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된 일부 병사들이 지휘관과 간부들의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는 것은 물론 군의 작전·장비 등 기밀을 외부로 유출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A사 관계자는 경고했다.

    한편 업체들은 지난 4일 “국방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하는 한편 국방부에 민원을 다시 넣었다”면서 국방부에 ▲신병훈련소에서는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하고, 훈련병들에게 일과 후 영상공중전화 사용을 자유롭게 허용해 주고 ▲일반 군부대에서는 영상공중전화 서비스를 전면 중단하고, 철수 비용 및 통신회선 비용 위약금을 국방부가 부담해 주고 ▲만약 영상공중전화 서비스를 계속한다면 영상공중전화 요금의 인상을 허용해 줄 것을 요구했다고 밝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