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김치공정 단초 제공" 민간단체 지적에 1년 만에 훈령 바꿔… 그런데 '신치'가 뭐지?
  • ▲ 올해 초 중국의 유명 유튜버가 김장하는 동영상을 올리고는 '중국 음식'으로 소개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유튜버 리쯔치(李子柒) 동영상 캡처. ⓒ뉴시스
    ▲ 올해 초 중국의 유명 유튜버가 김장하는 동영상을 올리고는 '중국 음식'으로 소개해 논란이 일었다. 사진은 유튜버 리쯔치(李子柒) 동영상 캡처. ⓒ뉴시스
    우리나라 고유의 발효음식 '김치'의 중국어 번역(표기) 용례로 중국 음식인 '파오차이(泡菜)'를 제시해 논란을 빚었던 문화체육관광부가 1년 만에 표기 지침 훈령을 개정했다.

    파오차이는 양배추나 고추 등을 염장한 중국 쓰촨(四川) 지역의 절임식품으로, 서양의 '피클'에 가까운 음식이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중국 관영언론과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한국의 김치가 파오차이고, 김치가 중국에서 유래됐다"는 등 왜곡된 정보가 올라오면서 이른바 '김치공정(工程)' 논란이 일었다.

    특히 문체부가 지난해 7월 15일 "중국에서 이미 널리 쓰이고 있는 음식명의 관용적인 표기를 그대로 인정한다"며 "'김치찌개'를 '泡菜湯(파오차이탕)'이라고 불러도 된다"는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훈령(제427호)을 제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김치공정의 단초를 우리 정부가 제공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올해 초 사이버 외교사절단 '반크(VANK)'를 비롯해 다수 언론에서 이 같은 문제점을 지적하자 문체부는 지난 1월 13일 "김치의 중국어 번역에 대한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관계부처와 전문가 협의를 거쳐 '신치(辛奇)'와 '파오차이(泡菜)'를 혼용하는 현재의 김치 표기 지침 훈령을 정비하겠다"고 밝혔다.

    김치와 발음·의미 유사한 '신치'로 중국어 표기 통일

    이로부터 7개월가량이 흐른 지난 22일 문체부는 "기존 훈령에서 김치의 중국어 번역 및 표기 용례로 제시했던 '파오차이'를 삭제하고, '신기(중국어 발음: 신치)'로 통일하는 '공공 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표기 지침' 훈령 개정안(제448호)이 시행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한국어와 달리 중국어에는 '기'나 '김' 같은 소리를 내는 글자가 없어 김치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하지 못한다. 이에 농림축산식품부는 8년 전 중국어 발음 4000개와 중국 8대 방언을 검토하고 주중 대사관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김치의 중국어 표기로 '신치'를 제안한 바 있다.

    문체부 관계자는 "올해 초 김치의 중국어 번역 후보 용어(16개)를 추가 검토할 때에도 '신치'는 김치와 발음이 유사하고, '맵고 신기하다'는 의미를 나타내므로 김치를 표현하기에 적절한 용어로 선정됐다"며 "최근 식품업계 등 민간에서 신치를 비롯한 김치의 중국어 표기 방안을 계속 요구했던 점도 고려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치의 중국어 번역 표기를 신치로 사용함에 따라 우리의 김치와 중국 음식 파오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고, 나아가 중국에서 우리 고유 음식인 김치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덧붙였다.

    개정된 훈령은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작성하는 누리집과 홍보 자료 등에 적용된다. 정부 부처와 지방자치단체는 훈령에 제시된 원칙대로 해외 홍보 자료 등을 제작한다.

    이에 따라 관계 기관은 김치 관련 중국어 홍보 콘텐츠 등을 제작할 때 김치를 신치로 표기해야 한다. 단, 민간 부문에는 해당 훈령 적용을 강제하지 않기 때문에 김치업계 및 관련 외식업계 등에서는 사업 환경에 따라 훈령을 참고해 번역·표기할 수 있다.

    중국에서 김치 팔 때 신치-파오차이 병기해야

    한편, 우리 기업이 중국에서 김치를 판매하는 경우에 김치를 신치로 단독 표기할 수는 없어 주의가 필요하다. 중국 식품안전국가표준(GB) 등 현지 법령상 중국 내에서 유통·판매되는 식품에는 제품의 '진실 속성(소비자들에게 친숙한 명칭)'을 반영하는 표기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농식품부는 김치수출협의회 등 유관 단체를 통해 우리 수출기업들을 대상으로 신치 용어의 사용 가능 범위에 대해 자세히 안내할 계획이다.

    박태영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우리의 김치와 중국의 파오차이를 구분할 필요성이 있으므로 훈령에 신치라는 표기를 명시했다"며 "한-중 문화교류의 해(2021~2022)를 기념해 양국의 음식 문화 등 다양한 고유문화에 대한 논의와 교류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김인중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훈령 개정을 통해 김치와 파오차이 간 혼란이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며 "김치 고유의 표기를 사용해 김치의 세계적 위상이 높아지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