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청 관리‧감독 가능하도록 유도… "과거 사건 때 진작 대처했어야"
  •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7차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15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17차 학교폭력대책위원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교육부
    정부가 최근 경남 하동의 한 서당에서 벌어진 폭력 사건을 계기로 전국의 기숙형 교육시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시행하기로 했다. 이후 교육청의 관리‧감독이 가능한 교육시설로 편입을 유도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과거 서당에서 성추행 등 여러 차례 심각한 사건이 있었는데도 이제야 전수조사를 하는 것에 대해 뒷북 대응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예전 사건 직후 제대로 된 조치를 취했다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서당 등 기숙형 교육시설, 교육청 관리‧감독 가능하도록 유도

    교육부는 15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제17차 학교폭력대책위원회(학폭대책위)를 열고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 2021년 시행계획(안)'과 '학생 사이버 폭력 예방 및 대응 강화방안(안)을 심의·의결했다고 밝혔다.

    학폭대책위는 하동의 서당 학교폭력 사태와 관련해 다음 달까지 실태조사를 하기로 결정했다. 우선 서당과 같은 기숙형 교육시설의 일반 현황·운영 형태 등을 조사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형태에 따라 청소년 수련시설·대안 교육기관 등으로 등록을 유도해 기숙형 교육시설을 제도권 안에 편입시킨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해당 시설 내 거주 청소년을 대상으로 폭력 피해나 폭력 목격 경험을 파악해 피해·가해 학생에게 조치를 내리고, 필요할 경우 아동보호전문기관이나 경찰에 신고할 예정이다. 학교폭력 피해 학생의 회복과 치유를 위해서는 위(Wee) 클래스·위(Wee) 센터를 확충하고, 올해 전문 상담 교사 600명을 증원하기로 했다. 피해 학생 전담 지원기관도 작년 139곳에서 올해 147곳으로 확대하고, 피해 학생·보호자를 대상으로 무료 법률 상담이나 자문·치료비·생계비 지원에 나선다.

    서당 내 학대와 폭행 사건, 이미 수차례 일어났는데...

    앞서 경찰은 지난 12일 경남 하동의 한 서당에서 후배를 수차례 폭행한 A(15)양을 상습 폭행 및 공갈·협박·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구속하고, 함께 폭행에 가담한 여학생 2명도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A양 등은 지난 1월 경남 하동군 청암면 청학동에 있는 기숙형 서당에서 같은 방을 쓰는 여학생의 머리채를 잡아 변기에 밀어 넣고 화장실 청소솔로 이를 닦게 하는 등 학대 행위를 하고, 명치와 어깨를 때리는 등 총 11차례에 걸쳐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달 24일 피해 학생의 학부모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해당 사건을 호소하는 내용의 글을 올려 파문이 확산됐다.

    서당에서 불미스러운 사건이 불거진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2월 경남 하동의 한 서당 남자 기숙사에서는 B군(17)이 함께 생활하던 가해 학생 2명으로부터 잦은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지난 2018년에도 하동의 한 서당에서 여학생이 상급반 남학생 2명으로부터 성폭행과 성추행을 당했다는 신고가 경찰에 접수됐다. 2008년에는 청학동 훈장이 서당에서 교육 중인 여중생들을 성추행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정부의 뒷북 대응으로 추가 피해자 양산"

    이렇게 서당에서 수년간 여러 차례 폭행 등의 사건이 있었지만 정부는 지금까지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서당은 학원과 유사하게 운영되지만 법규상 집단 거주 시설로 등록돼 교육당국의 관리·감독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경남 하동의 서당 학교폭력 사태가 연일 공론화되자 정부는 뒤늦게 기숙형 교육시설 전수조사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뒷북 대응이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백승대 영남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본지에 "과거 서당에서 성추행 등의 문제가 생겼을 때 진작 전수조사 하고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웠더라면 추가적인 피해자들이 나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서당뿐만 아니라 곳곳에서 학교폭력이 이슈가 되니 이제야 정부가 관심을 가지지만 늦었다. 최근의 피해는 정부가 사태를 방조한 결과"라고 지적했다.

    '학교폭력 가해 학생 학생부 기록 삭제' 재검토… '사이버 폭력', 학교폭력 유형에 추가

    한편 이날 학폭대책위는 다른 학교폭력 예방 대책에 대해서도 발표했다. 먼저 매년 4~5월 학교폭력 가해 행위 재발 현황을 조사하고, 가해 행위 횟수에 따라 특별교육 기간을 연장하기로 했다. 아울러 6월부터는 학교장이 가해자와 피해 학생 분리 조처를 의무화하는 제도도 시행된다.

    학교장이 경찰과 검찰 등 수사기관을 거치지 않고 법원에 사건을 직접 접수해 문제를 해결하는 '학교장 통고제'도 활성화할 계획이다. 소년법을 개정해 보호관찰 처분을 강화하고, 학생전담보호관찰관도 120명 내외로 운영한다. 학교폭력 전문수사관도 확대할 예정이다.

    '사이버 폭력'에 대해서는 '학교폭력예방법'의 학교폭력 유형에 '사이버 폭력'을 추가하고 범주도 명확히 해 피해 학생 보호와 가해 학생 조처를 강화하기로 했다. SNS를 통한 가해 학생의 2차 가해를 금지하는 내용도 '학교폭력예방법'에 명시한다.

    학생부에 기재된 학교폭력 가해 학생 조치 여부를 졸업 후 삭제하는 제도도 상반기 중 현장 의견 수렴을 거쳐 재검토한다. 최근 연예인, 스포츠 스타의 학교폭력 이력이 논란으로 번지면서 과거 학교폭력 기록을 삭제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는 의견이 잇따르고 있어서다.

    이에 대해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본지에 "법원에서 유·무죄가 가려지지 않은 학교폭력 기록을 오랜 기간 남긴다면 지나친 낙인찍기가 될 수 있다. 학교는 사실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기관이 아니지 않나"라며 "최근 일들로 인한 국민들의 심정도 이해하지만 억울한 사람을 만들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