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대공수사권 넘기는 건 안보 포기와 같아… 이대로면 대한민국은 간첩 천국 된다"
  • ▲ 23일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이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개최한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 모습. ⓒ송원근 기자
    ▲ 23일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이 한국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 개최한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 모습. ⓒ송원근 기자
    "대공수사권 경찰로 이관… 국가안보 위한 수사역량 사실상 무력화"
    "현 집권세력, 국정원 해체를 민주주의 회복인 양 호도… 간첩천국 될 것"
    "정치적 중립성 되레 떨어지는 경찰로 권한 집중… 정권 안위 목적일 수밖에"
    "정보기관이 수사권도, 조사권도 없는 나라? 세네갈·파나마·에콰도르·콜롬비아 등"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수사권만은 안 건드렸는데… 이대로면 사립탐정 수준 된다"

    23일 서울 프레스센터 18층 외신기자클럽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이 추진하는 국가정보원법 개정을 향해 이 같은 성토가 쏟아졌다. 

    국가정보원을 퇴직한 전직 정보요원들이 개최한 이날 국민대토론회에는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김승규 전 국가정보원장 등 전임 원장들도 참석해 국정원법 개악을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함께 다졌다.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라는 제목의 이날 토론회는 2 세션으로 나눠 진행됐다. 제1세션의 주제는 '더불어민주당 발의 국정원법 개정안의 문제점'으로, 발제는 황윤덕 전 국정원 안보기획관이 맡았다. 두 번째 세션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의 문제점'과 관련해서는 제성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제했다.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안, 3권분립 위반 등 위헌 소지 다분"

    제1세션에서 황 전 안보기획관은 국정원법 개정안의 위헌성을 지적하고 나섰다. 대공수사권 이관, 국정원 직원을 대상으로 한 가중처벌, 정보감찰관제 신설 등이 모두 위헌적 규정이라는 것이다. 

    황 전 안보기획관은 "대통령의 헌법상 책무인 국가안전보장 역할을 대폭 축소한 이 개정안은 위헌이다. 일반 공무원보다 국정원 직원의 형량을 3배 이상 가중한 것은 평등의 원칙 위반이다. 또 의회에 의한 행정부 조직 통제가 합리적인 범위를 넘어 3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개정안은 국정원의 북한 관련 직무를 '북한과 연계된' 안보침해 행위에 관한 정보 수집으로 한정했다. 이 규정과 관련, 황 전 안보기획관은 "처음부터 북한과 연계된 것을 어떻게 아는가"라며 "북한과 아직 연계돼 있지 않거나 자생적 반국가단체는 손을 쓸 수 없게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 ▲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패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송원근 기자
    ▲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한 참석자가 패널들에게 질문하고 있다. ⓒ송원근 기자
    일심회 수사 맡았던 전 공안검사 "국정원 첩보 없었으면 수사 못했다"

    이어 토론에 나선 최기식 변호사는 2006년 공안부 검사로 일심회 사건을 수사했던 경험을 들며 개정안의 심각성을 강조했다. 

    최 변호사는 "당시 사건의 발단은 국정원 내부 첩보 수집으로부터 시작됐다. 혐의자들이 중국 베이징 인근에서 북한 공작부서와 접촉한다는 것을 국정원이 포착했고, 이에 수사요원들이 본격 수사에 나서 증거를 확보하게 된 것"이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경찰이 대공수사권을 갖게 되면 이런 국외 협력 채널을 구축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 최 변호사는 "정치적 중립성 면에서도 국정원보다 경찰이 떨어진다. 만일 일심회 사건에서 국정원이 수사 의지를 굳게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수사는 중단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공수사를 경찰이 맡았다면 정권이 쉽게 수사를 중지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경찰더러 해외정보 수집하라? 불가능한 임무 맡기는 것"

    두 번째 세션에서 제 교수는 "현실적 안보위협에 당면한 국가 중 안보 수사를 경찰 같은 공개 조직에 맡기는 나라는 한 나라도 없다"며 "특히 9·11테러 이후 정보기관 간 정보공유 미비가 문제로 대두하며 오히려 국내외 정보기관 간에 융합체제를 구축하는 실정인데 개정안은 이런 동향과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비판했다.

    제 교수는 "경찰이 해외정보를 수집하고 범인 검거를 위해 단서를 포착하는 일은 '불가능한 임무'(mission impossible)"라고 비꼬았다. 경찰이 담당하지 못할 일을 경찰에 맡기려 한다는 것이다. 

    제 교수는 이어 "중·장기적으로 경찰권력이 지나치게 커지면서 인권침해 같은 심각한 부작용이 나타날 것"이라며 "개정안이 허용한 조사권으로는 국정원의 정보역량이 환경부나 산림청보다 못한 수준이 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조사권-수사권 분리는 눈·귀와 팔·다리 떼어놓자는 것"

    토론에 나선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경찰의 대공수사 능력의 한계를 거듭 강조했다. 유 원장은 "간첩활동을 탐지하고 제어하기 위해서는 비합법 공작도 불사해야 하는데, 경찰은 그에 필요한 예산 편성마저 불가능하다"며 "국정원에 조사권한만 줘도 된다는 것은 눈·귀와 팔·다리를 분리하자는 얘기"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토론에 나선 장석광 전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는 대공수사권 폐지를 "국가안보의 탈원전"이라고 비유했다. 장 전 교수는 "세계적 추세와 반대로 갔던 탈원전을 통해 국내 관련 산업 생태계가 붕괴했고, 세계 최고 원전기술력마저 훼손하고 있다"며 "9·11 테러 이후 전 세계가 해외정보와 국내보안 기능을 통합하는 추세인데 우리는 반대로 가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조사권도 박탈하려는 것… 남미 국가 따라 하나"

    장 전 교수는 "개정안은 안보목적 감청도 어렵게 해 사실상 국정원은 조사권도 박탈당한 것"이라며 "대외안보정보원(국가정보원의 개칭)은 수사권도, 조사권도 없는 유명무실한 기관"이라고 비판했다. 

    장 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영국·독일·일본 등은 정보기관이 조사권만 있으며, 미국·중국·러시아·프랑스·이스라엘 등 52개 국은 수사권도 가졌다. 정보기관이 수사권과 조사권 모두 없는 나라는 대부분 남미 국가들로, 세네갈·파나마·에콰도르·콜롬비아와 이탈리아 등이다. 

    장 전 교수는 이와 관련 "우리 안보환경이 세네갈·파나마·이탈리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국회의원이 있다면 한번 나와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정원 제대로 일하도록 해야… 정쟁에서 해방시켜달라"

    이날 토론에는 신언 전 파키스탄 대사, 권영해 전 국가안전기획부장, 김승규 전 국정원장, 심재철 전 국회 부의장 등이 참석해 인사말과 축사를 전했다. 

    신언 전 대사는 인사말을 통해 "국정원은 더 이상 권력기관이 아니다. 정치적 일탈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이제 국정원이 제대로 일할 수 있도록 정쟁에서 해방시켜달라"고 호소했다.

    심재철 전 부의장은 축사에서 "전직 직원들께서 나서기 쉽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용기를 내준 것에 감사하다"며 "180석을 차지한 민주당은 뭐든지 다 하겠다는 태세다. 김정은이 가장 좋아할 일을 민주당이 서둘러서 하려고 한다"고 여권을 비난했다. 

    권영해 전 안기부장은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할 일을 여러분이 하게 해서 미안하다"며 전직 국정원 직원들을 독려하기도 했다.
  • ▲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이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송원근 기자
    ▲ '국가안보를 걱정하는 전직 국가정보원 직원 모임'이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민주당의 국정원법 개정, 무엇을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송원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