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전 불화로 헤어진 아내, TV 보고 연락해 극적 상봉부인 고사라 "결혼 파탄으로 죽을 결심‥ 목사 돼 제2의 인생"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처상을) 안 알렸어. 혼자 산다는 게 자랑거리도 아니잖아."

    지난 6월 15일 방송된 채널A '아이콘택트'에서 작곡가 박토벤(박현우)은 절친한 사이인 작곡가 정경천에게 "혼자 사는 게 자랑도 아니라서 아내와 사별한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며 "평소 제수씨와 다복하게 사는 자네를 보면 참 부러웠다"는 속내를 밝혔다.

    "혼자 집에 들어오면 너무 적막해 365일 사무실에 나온다"는 박토벤의 눈에도, "그 말을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팠다"는 정경천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놀면 뭐하니' 등 다수 방송에서 항상 밝고 유쾌한 모습만 보여왔던 그였기에, 아내와 사별해 외롭게 지낸다는 박토벤의 사연은 보는 이들의 마음을 더욱 안타깝게 했다.

    그런데 이 방송을 재방송으로 지켜보던 한 여성의 눈가에도 눈물이 맺혔다. 추석 연휴를 앞둔 어느날, 무심코 TV를 보던 고사라(본명 고금주) 목사는 깜짝 놀랐다. 작곡가 박현우가 '박토벤'이라는 예명으로 나와 최근 처상(妻喪)을 당했다는 사연을 소개했기 때문이다.

    놀랍게도 고 목사는 박토벤의 아내였다. 방송에서 사별했다고 말한 당사자가 멀쩡하게 살아, 그가 나온 TV 프로그램을 지켜보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사연일까?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저 금주예요. 기억하세요?"… "어떻게 너를 잊을 수 있니?"

    고 목사는 지난 15일 뉴데일리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1987년 선생님을 처음 만나 짧게 연애를 하고 바로 결혼했는데, 피치 못할 사정으로 헤어졌다"며 "방송 당시 선생님은 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몰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숭인동에 위치한 박토벤의 사무실에서 취재진을 만난 고 목사는 "지난달 우연히 TV에서 선생님을 뵙고,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수화기를 들었다"며 "헤어진지 무려 34년 만에 연락을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114에 박현우 작곡가 사무실 번호를 물어 전화를 건 고 목사는 때마침 박토벤이 전화를 받자 '금주'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저를 기억하느냐고 물었더니, 선생님께서 '너랑 결혼한 뒤로 헤어져 지금까지 쭉 혼자 살고 있는데 너를 왜 기억 못하겠니? 나는 네가 어디 시집가서 잘 살고 있는 줄만 알았다' 이러시더라고요."

    고 목사는 "당시 제가 일방적으로 연락을 끊고 잠적했기 때문에 선생님께서도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라며 "제가 선생님과 헤어지게 된 건 나름의 사정이 있다"고 말문을 열었다.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20대 때 불혹의 박토벤 만나 결혼‥ 혼외자식 얘기듣고 충격

    고 목사는 "무용가로 활동하던 20대 중반, 불혹을 넘긴 선생님을 만나 집안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다"며 "당연히 사랑해서 결혼했지만 그땐 제 나이가 선생님에 비해 너무 어렸고, 서로 가치관 등이 많이 달라 결혼 생활을 하는 게 녹록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고 목사는 "최대한 남편을 이해하려 노력했지만 숨겨진 딸이 있다는 사실을 나중에 듣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참다 참다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이 들어 결혼 생활 6개월 만에 무작정 집을 나왔다"고 말했다.

    "제가 원래 내성적이라 말이 없어요. 목회를 하면서 말문이 터진 거지. 지금 같으면 화도 내고 그랬겠죠. 그냥 '헤어지자'는 말 한 마디만 남기고 훌쩍 떠났어요."

    고 목사는 "지금은 없어진 퇴계로 행복예식장에서 작곡가 황문평 선생님의 주례로 화려한 결혼식을 올렸었다"며 "수많은 연예인과 작곡가들이 다와서 축하해주고 매스컴까지 탔는데, 이렇게 결혼 생활이 파국으로 끝나버려 제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고 토로했다.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죽을 마음 먹고 '일본行'‥ 신앙심 생겨 목회자로 갱생

    그래서 죽으려고 결심했다는 고 목사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조용히 죽으려고 일본에 갔다"고 말했다.

    "현지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어떤 분을 알게 됐는데, 그 분을 통해 교회에 나가게 됐어요. 처음 미국 선교사 분이 지은 교회에 나갔는데 갑자기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라고요. 그냥 제가 외국에 나와 외롭고 힘들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다음날 찾아간 일본순복음교회에서도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쏟아졌어요."

    고 목사는 "그러던 중 갑자기 몸을 일으키지 못해 꼼짝없이 누워만 있던 때가 있었다"며 "고통 속에서 '내가 다시 앉을 수만 있다면, 다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장애인들을 위해 평생 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몸이 나아져 교회를 열심히 나갔다"고 말했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신앙심이 움튼 고 목사는 그길로 신학교에 입학해 목사가 됐다. 병상에 누워 있을 때 다짐했던 것처럼 장애인 전문 사역자가 된 그는 30년간 장애인들의 손발이 돼 헌신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충남 서산 팔봉면에 위치한 임마누엘 수양관은 고 목사가 27년째 장애인을 돌보는 터전이자 보금자리다.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34년 만에 만난 '남편'의 첫 마디‥ "눈이 되게 나쁘네"

    "지난달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을 땐 그냥 안부만 물어보려 했어요. 만날 생각은 전혀 없었죠. 그런데 며칠 후 시누이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우리 오빠 한 번 만나보라고. 며칠을 고민했죠. 그런데 제 마음에 이 사람들(박토벤과 딸)의 '영혼'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서울로 올라간다고 했어요."

    고 목사는 "약속한 식당에 가니 선생님과 시누이가 미리 와 있었다"며 "시누이가 옆으로 오라고 해서 선생님 옆에 앉긴 했지만, 그때엔 얼굴도 제대로 못 쳐다봤다"고 말했다.

    "처음엔 되게 서먹하고 그래서 얼굴을 못 보겠더라고요. 그런데 선생님이 저를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어요. 그러다가 제 안경을 보고는 '눈이 되게 나쁘네' 이러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좀 이야기를 나눴죠."

    고 목사는 "거기 앉아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라고 말하면서 눈시울을 붉혔다. 감정이 북받친 듯 잠시 말을 멈춘 고 목사는 "너무나 세월이 흐른 선생님의 모습이 안쓰럽고 측은했다"고 말했다.

    고 목사는 "'그때 왜 자기를 홀대했느냐'고 묻자 선생님이 '자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가 미쳤었나보다'라고 자책하는 모습을 보여 놀랐다"고 말했다.

    "당시 생활비도 제대로 안 줬었거든요. 그래서 그런 점 등을 따지자, 선생님은 여자는 결혼하면 집에서 조신하게 밥이나 하고 그러는 줄 알았지. 자신이 잘해줘야 하는지는 몰랐대요. 자기와 평생 같이 살 줄 알았는데, 제가 그렇게 떠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면서 당시 제 마음을 헤아려 주지 못해 정말로 미안하다고 하시더라고요."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작곡가 박토벤과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강릉 미술관서 피아노 치며 프러포즈‥ "같이 살자"

    고 목사는 박토벤과 재회한지 며칠이 지난 어느 날, '같이 살자'는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말했다.

    "남은 생애를 너를 위해 바칠 게, 진짜 너를 위해 살 거야. 같이 살자."

    고 목사는 "한 번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다른 한 번은 강릉 미술관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며 "꽃다발과 반지를 끼워주면서 피아노 연주로 두 번째 청혼을 했다"고 말했다.

    "제가 떠난 이후로 여자에 대한 자신감도 사라지고, 당신도 큰 충격을 받아서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살았대요. 한 10년을 폐인처럼 지내다가 10년 전부터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곳에 사무실을 차렸다고 하더라고요. 이렇게 살아서 다시 저를 만나게 된 건 하나님의 선물이라면서 남은 인생은 저를 위해 살겠다고 거듭 약속했어요."

    무용가에서 목회자로 변신한 고 목사는 사실 박토벤을 다시 만나지 않았으면 하와이로 떠나 그림을 그리며 여생을 보낼 계획이었다. 실제로 서양화가 박수복에게 그림을 배울 계획까지 세웠던 그는 박토벤과 재회한 것을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고, 그동안 못했던 내조에 전념하는 삶을 살겠다고 말했다.
  • 해외선교 활동 중인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해외선교 활동 중인 고사라 목사. ⓒ뉴데일리 / 고사라 목사 제공
    ◆ 내조와 작곡 그리고 '작은 목회'‥ 제3의 인생 시작

    "사실 목회 은퇴를 준비 중이었어요. 하와이에 가서 조용히 그림이나 그리면서 살려고 했는데, 이게 다 하나님 뜻이겠죠? (웃음) 하나님의 계획이 여기에 있는 것 같아요. 내조와 목회 활동을 병행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있는 중입니다."

    남편의 영향을 받아서일까? 사실 고 목사도 꾸준히 작사·작곡을 하고 있다. '나의 동반자'라는 제목을 붙인 노래도 있고, 멜로디와 가사까지 완성한 복음성가도 몇 곡 있다. 남편과 재회한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작사·작곡에 도전해볼 생각도 갖고 있다고.

    박토벤을 다시 만나 제3의 인생을 꿈꾸는 고 목사는 오는 28일 강릉에서 웨딩 사진을 찍고 주위에 '재결합' 사실을 알릴 예정이다.

    "남편이 바뀐 만큼 저도 바뀌어야죠. 이제는 그동안 못다 한 내조를 열심히 할 계획이에요. 그리고 남편 사무실에 오시는 분들을 위해 소규모 예배를 정기적으로 드리고 싶어요. 뭐 간판을 붙여야 교회인가요? 남은 생애, 남편과 더불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아보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