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DR콩고 이어 키르기스스탄도 '부정선거' 시비 … 세 나라 모두 한국산 장비 투입
  • ▲ 총선 부정 논란으로 발생한 소요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뉴시스
    ▲ 총선 부정 논란으로 발생한 소요사태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소론바이 제엔베코프 키르기스스탄 대통령. ⓒ뉴시스
    총선 부정 논란에 따른 소요사태가 발생한 키르기스스탄에서 결국 대통령이 사임을 선언했다. 2018년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던 이라크와 DR콩고에 이어 키르기스스탄에서도 모두 공교롭게 한국산 선거장비가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소론바이 제엔베코프(61) 키르기스스탄 대통령은 15일(현지시간) 대통령공보실 홈페이지에 게시된 성명에서 "나에게는 키르기스스탄의 평화, 국민의 통합, 나라의 평온이 무엇보다 우선"이라며 "동포 개개인의 삶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고 밝혔다. 

    성명에서 제엔베코프 대통령은 "권력에 집착하지 않겠다"며 "나는 키르기스스탄의 역사에서 시민들에게 총격을 가하고 유혈사태를 일으킨 대통령으로 남고 싶지 않다.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기로 결심했다"고 선언했다.

    키르기스스탄, 총선서 여권 정당이 90% 의석 휩쓸었는데…

    키르기스스탄은 지난 4일 실시된 총선에서 제엔베코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범여권 정당들이 90%에 가까운 의석을 차지하며 압승을 거뒀다. 

    선거에 불복한 야당 지지자 수천 명은 금권선거·부정선거를 주장하며 수도 비슈케크를 비롯한 전국에서 항의시위를 벌였다. 

    시위대는 주요 정부 건물과 선거관리위원회 등을 점거하고 선거무효를 주장했다. 

    선관위는 선거가 끝나고 이틀 만에 선거무효를 선언했다. 쿠바트벡 보로노프 총리는 사임했고, 의회는 대통령 탄핵을 추진하던 중이었다.

    시위대는 부정선거를 주장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부정이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진 바 없다. 

    영국 BBC에 따르면, "마스크를 쓴 일부 투표자들이 이미 기표된 투표용지를 들고 있었다"는 주장도 나왔지만 확인된 것은 아니다. 

    선거 감시자로 참여했던 유럽안보협력기구(OSCE)는 브리핑을 통해 "선거는 대체로 잘 치러졌다"면서도 "투표 매수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선거자금의 사용 내역이 투명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2015년부터 선거에 한국산 장비 사용

    문제는 키르기스스탄 총선에 사용된 선거장비가 한국산이라는 데 있다. 지난해 7월 무하메드칼르이 아블가지예프 당시 키르기스스탄 총리는 수도 비슈케크 대통령궁에서 이낙연 당시 국무총리를 만났다. 

    이 자리에서 아블가지예프 총리는 "코이카(KOICA, 한국국제협력단)의 선거역량 강화 사업이 키르기스스탄 민주화 과정에 기여했다"며 "앞으로 전자정부 등 분야에서 개발협력사업이 더욱 확대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본지가 16일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키르기스스탄 선거역량 강화사업 실무를 맡은 것은 코이카, PM 역할을 맡은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A-WEB이다. A-WEB은 2015년 4월 키르기스스탄 선거관리위원회와 업무협약을 맺고 선거자동화 시스템 구축을 지원했다. 

    이 과정에서 전자 투·개표 시스템을 지원하는 역할을 코이카가 맡았다. 코이카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공적개발원조 사업의 일환으로 총 615만 달러(약 70억원)를 투입해 '키르기스스탄 선거역량 강화사업'을 펼쳤다. 

    키르기스스탄 선거 시스템 구축에 우리나라만 참여한 것은 아니다. 자동화 이외에 유권자 명부 관리 등은 일본 공적개발원조 기구인 JAICA에서 지원했다. 스위스도 참여했다고 A-WEB 관계자는 전했다. 우리나라는 선거정보시스템 소프트웨어와 광학 판독 개표기, 개표기 관련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구축 등을 지원했다.

    부정선거 시비... 다수가 한국산 장비 사용

    2015년 8월24일자 조선일보는 한국의 도움으로 키르기스스탄에서 '선거혁신'이 일어났다며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비슈케크가 있는 추이주(州) 개표소 참관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5만2487표를 개표하는 작업이 10분 만에 끝났기 때문이다… 올해 10월4일 총선에서 한국 선거자동화시스템 도입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될 전망이다. 개표 결과를 투표구위원회·지역선관위를 거치지 않고 무선으로 중앙선관위에 바로 전송하므로 개표 결과를 조작할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개표부터 집계까지 모두 수작업 없이 자동으로 이뤄진다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키르기스스탄을 비롯해 최근 수년간 부정선거 시비가 일었던 나라 중 상당수가 이처럼 자동화된 한국산 선거장비를 쓴다. 

    2018년 이라크 총선, 2018년 DR콩고 대통령선거가 모두 마찬가지였다. 이 같은 사실은 4·15부정선거국민투쟁본부 등 지난 4·15총선 결과가 조작됐다고 주장하는 쪽에 힘을 실으며 의혹을 더할 전망이다.

    *A-WEB은?
    세계선거기관협의회(A-WEB)는 우리나라가 제안해 2013년에 설립한 국제기구다. 중앙선관위의 감독을 받는다. 김용희 전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사무총장이 설립을 주도해 초대 사무총장을 맡았다. 설립 취지는 후발 민주국가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과 민주 선거시스템 정립을 위한 범세계적인 협의체가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지난해 11월부터는 최종현 전 네덜란드 대사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다. 사무국은 인천 송도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