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국민 실종→22일 靑에 '총살 첩보' 보고→23일 文 "종전선언"… 막판에 수정 없이 강행
  •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
    청와대가 북한이 서해상에서 우리 국민을 총격살해하고 시신까지 불태워버린 사실을 22일 오후 인지하고도 23일 새벽 문재인 대통령이 종전선언을 제안하는 유엔총회 연설을 그대로 강행한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일었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북한이 우리 국민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불에 태워버린 직후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현실과 동떨어진 한반도 종전선언을 주장한 셈이 됐다. 
     
    文, 22일 오후 6시36분 첫 서면보고… 23일 새벽 1시26분 유엔연설

    청와대의 발표를 종합하면, 21일 실종사건이 발생한 후 22일 오후 6시36분에 문 대통령에게 첫 서면보고가 이뤄졌다. 서해어업지도관리단 직원이 해상에서 추락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고가 21일 발생해 수색에 들어갔고, 북측이 그 실종자를 해상에서 발견했다는 첩보 관련 보고였다.

    이어 22일 오후 10시30분 더욱 구체적인 첩보가 입수됐다. 북한이 월북 의사를 밝힌 실종자를 사살 후 시신을 화장했다는 첩보였다. 

    해당 첩보에 따라 이튿날 23일 오전 1시부터 2시30분까지 관계장관회의가 청와대에서 긴급소집됐다. 국가안보실장·대통령비서실장·통일부장관·국정원장·국방부장관 등이 참석해 상황을 공유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이 회의에서는 첩보의 신빙성이 얼마나 높은가 하는 분석과 대책이 논의됐다"고 설명했다.

    관계장관회의가 열리던 오전 1시26분 문 대통령의 유엔총회 '종전선언' 연설이 시작됐다. 문 대통령은 미국 뉴욕 유엔총회장에서 열린 제75차 유엔 총회 일반토의에서 사전녹화된 기조연설을 통해 "종전선언이야말로 한반도에서 비핵화와 함께 '항구적 평화체제의 길'을 여는 문이 될 것"이라며 한반도 종전선언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조와 지지를 요청했다. 

    이 시점에 청와대는 우리 국민의 실종 사실과 북한의 실종자 사살 및 시신 훼손 첩보를 이미 인지했음에도 문 대통령의 종전선언 연설을 수정 없이 그대로 내보낸 것이다. 문 대통령은 22일 오후 10시30분 첩보를 보고받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논란이 확산하자 청와대는 첩보 수준에서 유엔총회 연설을 취소하거나 내용을 수정할 수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대통령의 연설은 15일에 녹화가 돼서 18일에 유엔으로 발송됐다"며 "이런 사안이 있을 것으로는 예측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靑 "신빙성 확인 안 된 상태에서 수정 판단 불가"

    이 관계자는 "대통령의 연설은 1시26분부터 16분간 방송됐는데, 같은 날 1시부터 2시30분까지 첩보의 신빙성을 평가하는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고 설명했다. 이어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태에서 유엔총회 연설의 취소나 수정을 판단할 수는 없는 상태였다"고 덧붙였다.

    청와대 설명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북한의 총격 및 시신 훼손 사실을 확인한 것은 23일 오전 8시30분이었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22일 오후 10시30분 입수된 첩보에 대해서는 "그 당시 신빙성 있는 첩보가 아니었다"면서 대통령에게 보고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후 분석을 통해 신빙성이 있는 첩보로 분석됐고, 23일 오전 8시30분부터 9시까지 대면보고가 이뤄졌다"고 전했다.

    이때 보고받은 문 대통령은 "첩보가 사실로 밝혀지면 국민이 분노할 일"이라면서 "사실관계를 파악해 있는 그대로 국민에게 알리라"고 지시했다고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전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3일 오후 4시35분 유엔사 군사정전위 채널을 통해 사실관계를 파악해달라고 요청하는 대북 통지문을 발송했다.

    북측의 무반응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24일 오전 8시 정부는 관계장관회의를 재차 소집했다. 국방부로부터 이번 실종사건과 관련된 분석 결과가 보고됐다. 이어 오전 9시, 서훈 국가안보실장과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이 대통령에게 분석 결과를 대면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첩보의 신빙성을 다시 한번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신빙성이 높다는 답변에 문 대통령은 "NSC (국가안전보장회의) 상임위를 소집해 정부 입장을 정리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내용을 국민들에게 있는 그대로 발표하라"고 지시했다.

    靑 NSC "북한, 모든 책임 지고 책임자 엄중 처벌해야"

    서주석 NSC 사무처장은 이날 NSC 상임위원회 회의 직후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북한은 이번 사건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그 진상을 명명백백히 밝히는 한편 책임자를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북한군이 아무런 무장도 하지 않고 저항할 의사도 없는 우리 국민을 총격으로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할 수 없다"고 규탄했다.

    서 사무처장은 "북한군의 행위는 국제규범과 인도주의에 반하는 행동"이라며 "북한은 반인륜적 행위에 사과하고 이런 사태의 재발 방지를 위한 분명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실종된 어업지도원이 북한군에 의해 희생된 사건이 발생한 데 대해 깊이 애도한다"며 "정부는 서해 5도를 비롯한 남북 접경지역 경계태세를 강화하고 국민의 안전한 활동을 위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며, 앞으로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북한의 행위에 단호히 대응할 것을 천명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