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운동 수감자 구출운동… '애국가' 한국어로 안 부르면 지휘 거부했는데 '친일' 덧칠김원웅 "애국가는 민족반역자가 만든 노래" 폄훼… 학계 "그렇게 치면 손기정도 친일"
  • ▲ 안익태기념재단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인의 유품. 사진은 기증품 중 하나인 사진첩에 담긴 고 안익태의 지휘 모습(왼쪽)과, 안익태가 창단해 이끌던 스페인 마요르가교향악단의 연주회 안내장. ⓒ연합뉴스
    ▲ 안익태기념재단이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한 고인의 유품. 사진은 기증품 중 하나인 사진첩에 담긴 고 안익태의 지휘 모습(왼쪽)과, 안익태가 창단해 이끌던 스페인 마요르가교향악단의 연주회 안내장. ⓒ연합뉴스
    상해 임시정부 때부터 국내외 모든 공식행사에서 '국가'로 불려온 '애국가'를 폐지해야 한다는 충격적인 주장을 광복회장이 제기해 논란이 일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 기념사에서 "민족반역자가 작곡한 노래를 국가로 정한 나라는 전 세계에서 대한민국 한 나라뿐"이라며 '애국가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이날 김 회장은 "최근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관련 자료를 독일 정부로부터 받았다"며 안익태를 '친일부역자'로 규정했다.

    김 회장이 받았다는 자료는 2006년 독일 유학생 송병욱 씨가 발견했다는 안익태의 '만주국(만주환상곡)' 지휘 영상 원본이다. 이 영상은 1942년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만주국 창립 10주년 기념 음악회의 한 장면으로, 당시 안익태는 '에키타이 안'이라는 일본식 이름으로 활동 중이었다.

    이러한 사료 등을 볼 때 당시 안익태가 만주국의 영광을 기리는 내용의 관현악곡을 만들고 직접 지휘까지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3.1운동 때 수감자 구출운동에 가담해 학교에서 제적당하고, 독립의 염원을 담은 '한국환상곡'을 작곡했던 그가 이처럼 정반대의 행보를 보인 이유는 뭘까?
  • ▲ 안용환 안양대 석좌교수. ⓒ뉴시스
    ▲ 안용환 안양대 석좌교수. ⓒ뉴시스
    "애국가가 폐기 대상이면 '기미독립선언서'도 휴지통行"

    안용환 안양대 석좌교수는 19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안익태를 깊이 연구한 제 판단 기준으로는 김원웅 광복회장의 말씀에 동의할 수 없고 인정할 수도 없다"며 "당시 안익태가 부역했다기보다는 안익태의 스승과 후원자가 친나치·친일 인사였기 때문에 안익태 역시 동종 인사로 여겨진 측면이 크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안익태는 주 베를린, 만주국 공사관을 겸했던 에하라 고이치(江原綱一)의 베를린 사저에 1941년부터 1944년까지 머물며 각별한 사이로 지냈다"며 "친일 논란을 빚은 '에텐라쿠(月天樂)'와 '만주환상곡'도 이때 만든 곡들"이라고 말했다.

    안 교수는 "그러나 에하라는 '만주환상곡'의 마지막 악장 합창 부분의 가사를 쓸 정도로 음악 애호가였고, 안익태와도 순전히 음악인으로서 친해진 것"이라며 "정치적으로 맺은 인연이 아니었다"고 못박았다.

    이어 "안익태의 스승이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Richard Strauss)도 안익태의 실력을 보고 그를 제자로 받아들인 것이지, 두 사람 사이에 정치적인 고려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독일 후기 낭만파 음악의 거장이었던 슈트라우스는 나치 치하 시절, 유대인 며느리와 손자들을 지키기 위해 제국음악원 초대 총재를 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슈트라우스는 나치당이 유대인 음악가인 멘델스존을 몰아내고 그의 대표작인 '한여름밤의 꿈'을 대체할 수 있는 작품을 쓰라고 명령하자 총재직을 사임했다.

    안 교수는 "일본 천왕을 찬양하는 '일본축전곡'은 슈트라우스가 작곡했고 그 곡의 지휘를 안익태가 했다"며 "이것을 두고 안익태가 일제에 부역했다고 매도하기보다는 사제지간에 있었던 협연으로 해석하는 게 더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물론 그런 곡을 지휘하고 만든 것 자체가 친일 행위라는 말도 일리가 있지만, 당시 안익태가 강압적인 정치·사회 환경 속에서 예술 활동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제를 활용했다고도 볼 수 있다"며 "그가 32개국을 넘나들면서 한국인의 긍지를 갖고 음악활동을 했다는 점에 더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일례로 안 교수는 '에텐라쿠'가 '강천성악(降天聲樂)'으로 둔갑했다는 일각의 지적을 반박하며 "'강천성악'에는 일본 아악의 원조가 우리나라 음악이라는 안익태의 신념이 담겨 있다"고 주장했다.

    안 교수는 "안익태는 1938년 일본 고대 궁정음악인 '에텐라쿠'를 만들고 훗날 '에텐라쿠'의 주제 선율을 이용해 '강천성악'을 만들었는데, 이는 그가 우리나라의 아악이 일본으로 전파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며 "따라서 그는 '강천성악'에 '맨 처음 우리 세종대왕께서 영감을 받아 아악을 작곡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라는 해설을 달았다"고 소개했다.

    안 교수는 "'한국환상곡'을 작곡한 안익태는 이를 제목만 바꾸어 '교쿠토(極東)'와 '만주국(만주환상곡)'에 활용했다"며 "'한국환상곡' '교쿠토' '만주국' 이 세 곡을 연결해주는 공통 요소는 우리 민요인 '방아타령' 선율로, 안익태는 사상적으로 괴로울 때 단군·세종대왕·종묘제례악 등을 생각하며 우리나라의 고전음악을 세계 만방에 알렸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안익태는 미주·유럽에서 활동할 때 '한국환상곡'의 4장 '애국가' 부분은 꼭 한국말로 부르도록 주최 측에 요구했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그 곡을 지휘하지 않았다"며 "이러한 내면적인 사상은 보지 않고 단순히 '만주국'을 지휘했다는 이유 만으로 친일파로 매도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지적했다.

    안 교수는 "그런 식으로 따지면 이광수가 쓴 '동경유학생 2·8독립선언서'와 최남선이 쓴 '기미독립선언서'는 당장 폐기해야 하고,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가슴에 일장기를 달고 일본 선수로 뛴 손기정 선수도 친일을 했다고 비난해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연합뉴스
    ▲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연합뉴스
    "유럽에선 '친나치 행적' 폰 카라얀도 존중받아"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 예술감독이자 상임지휘자인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는 같은 날 본지와의 통화에서 "전 세계적으로 예술은 정치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난 독립적인 영역에 있다"며 "그런 바운더리에서 탈피해 예술가를 바라봐야지, '친일 프레임'이나 정치적 논리에 욱여넣어 얘기하는 것은 어떤 다른 의도를 갖고 예술가를 매도하려는 것으로밖에는 해석이 안 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안익태가 일본 편에 서서 예술 활동을 했던 자료가 틀림없이 있기 때문에 이런 역사적 사실로 비난할 수는 있겠으나, 공사 사를 분리해 예술가로서 안익태의 삶을 재조명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정 교수는 "이는 안익태가 위대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다 무시하고 과거 전력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얘기가 아니다"라며 "지금 안익태뿐만 아니라 많은 음악가들이 친일 논란에 휘말려 있는데, 자기 시대에 음악가로서 나름 소신껏 활동을 했다는 점을 감안해 그들의 음악과 생애를 융통성 있게 바라봐야 한다는 점을 말씀드리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폰 카라얀(Hervert von Karajan)의 친나치적 행적이 다 알려졌지만 유럽에서 그의 작품을 연주해선 안 된다고 난리법석을 치진 않는다"며 "그 사람을 하나의 지휘자와 예술가로서 존중하고, 그의 작품 세계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평가하는 게 일반적이지, 그를 한때 나치에 물들었던 사람이라고 비난하는 이들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밝혔다.

    다만 "예술가 중 예술을 빙자해 나치 활동을 하면서 누군가를 탄압하는 나쁜 짓을 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며 "그런 사람들은 칭송이 아닌 비판의 대상이 돼야 하고, 상당수는 이미 전범재판 등을 통해 법적으로 처벌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당시 안익태는 전 세계를 누비고 다니면서 주목을 받았던 유일한 한국인 음악가였다"며 "비록 친일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해도 그가 음악인으로서 문화사절로서 사명을 갖고 전 세계에 한국을 알렸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반세기가 넘도록 한국인의 애국심과 자긍심을 고취시켜온 이 곡을 친일파가 지었으니 부르지 말자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정서를 건드리고 마음에 상처를 주는 행위"라며 "높은 지위에 있는 분이 공식적인 자리에서 그런 발언을 한 것은 대단히 배려심이 부족한 행동"이라고 비판했다.

    정 교수는 여권이 윤이상과 안익태에 대해 '이중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점도 꼬집었다.

    정 교수는 "친북 논란에 휘말린 작곡가 윤이상을 구제하기 위해 많은 예술가들이 탄원서를 내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 것은 그 사람이 예술가로서 보호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안익태의 경우도 모든 걸 떠나서 독립적인 하나의 예술가로서 그 가치를 인정해주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 정치용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 ⓒ연합뉴스
    "'제국음악원 회원증'은 일종의 취업 허가증"

    안익태는 스승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와의 인연 때문에 '친일'을 넘어 '친나치'라는 의혹도 받고 있다. 이 같은 주장의 선봉에 선 인물은 작가 공지영의 전 남편으로 잘 알려진 이해영 한신대 교수다. 그는 '안익태 케이스'라는 책을 통해 안익태가 입신양명을 위해 '제국음악원' 회원이 됐고 공작원으로 활동했을 수도 있다는 새로운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이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는 '안익태의 극일 스토리'를 펴낸 김형석 박사는 "안익태의 후원자 에하라 고이치가 일본의 독일정보망 총책임자이고, 안익태가 공작원이라는 것은 의혹만 있을 뿐 입증할 증거도 없다"고 주장했다.

    안익태기념재단에서 연구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 박사는 이 책에서 "당시 제국음악원 회원은 17만명으로 독일에서 음악가로 활동하려면 반드시 회원증이 필요했다"면서 '제국음악원 회원증'을 일종의 취업 허가증으로 해석했다.

    김 박사는 '안익태가 2년간 미국에 입국 금지됐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기 전이었고, 안익태가 일본 여권을 소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라며 "1946년 미국 국방부 문서에 안익태의 비자 발급에 보안상 반대는 없다는 기록이 있고, 1950년 한국 여권이 만들어진 후에야 미국 비자를 발급받았다"고 밝혔다.

    또 '안익태가 히틀러 탄생 음악회에서 지휘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 박사는 "'1944 파리 베토벤 축제' 전단 어디에도 히틀러 생일이라는 내용은 없다"고 부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