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공방위 "몰랐다" "못봤다" "제3자 대화 녹취록도 없다" 해명… 노조 "국민 기망"
  • 오보(誤報)로 드러난 KBS의 '검언유착' 기사가 보도되는 과정에, 편집 데스크인 사회부장은 물론 사회재난주간(부국장급), 통합뉴스룸 국장(보도국장), 보도본부장 등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노사 공정방송위원회(공방위)에서 드러났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최측근 검사장이 유력 방송 기자와 함께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넘어뜨릴 공모를 했다는 매우 민감한 내용이 '지휘 라인'의 결재도 받지 않고 황금시간대에 방송됐다는 이야기다.

    지난해 법조팀장, 사회부장, 통합뉴스룸 국장을 줄줄이 교체하며 '저널리즘을 바로세우겠다'고 다짐했던 공영방송 KBS가 여전히 뉴스 제작 시스템상 중대한 허점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는 지적이다.

    특히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노사 양측이 모인 자리에서 사측이 '대화 녹취록'의 존재를 부인하는 등 여전히 취재 경위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아 의혹만 더 가중시켰다는 지적이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공방위에 참석한 KBS노동조합 측은 "오보사태 진상 규명을 위해 열린 공방위가 '보도책임자조차 사실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내용만 드러난 채 끝났다"며 "국민 앞에 진실을 공개하고 사죄하지 않으면 결국 역사가 우리를 심판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장·주간·국장·본부장 모두 '보도 사실' 몰랐다"


    30일 서울 여의도 KBS 본관에서 오후 2시부터 3시간가량 진행된 공방위에는 사측을 대표해 임병걸 KBS 부사장, 김종명 보도본부장, 이영섭 사회재난주간, 박유한 경제주간, 김진우 보도기획부장이 참석했다. KBS노조(1노조)에서는 이영일 공정방송실장이 참석했고,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2노조)에서는 강성원 수석부본부장, 최광호 공정방송실장, 박대기 중앙위원 등이 참석했다.

    먼저 이영섭 사회재난주간은 "지난 18일(토요일) 오후 9시 방송 이전에 사회부장으로부터 이동재 전 채널A 기자가 왜 구속됐을까 하는 분석성 보고를 받은 상황이었다"고 전제했다.

    이어 "문제의 리포트가 한동훈 검사장과 이동재 전 기자가 나눈 대화 녹취 내용을 다룬 것으로 보고가 됐더라면 데스킹이 조밀하게 됐을 텐데 그런 보고는 받지 못했다"며 "주말 상황이었고, 법조는 전문성이 있으니 법조팀장에게 데스크 권한을 줘 (사회부장이나 사회주간을 거치지 않고) 팀장 선에서 리포트가 방송됐다"고 설명했다.

    이 사회주간은 "이튿날 당직 근무를 서면서 전날 나간 리포트에 문제가 있다는 얘기를 듣고 리뷰를 해봤다"며 "이 과정에서 녹취록에 있는 세 사람 간 대화의 '맥락적 분석'과 여러 취재원들의 '취재정보'를 정교하게 구분하지 못하고 단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영일 1노조 공정방송실장은 "휴일에도 휴대전화로 얼마든지 볼 수 있다"며 "예민한 사안은 보도본부장이나 국장이 당연히 봐야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김종명 보도본부장은 "상식적인 의문 제기"라며 "이 정도 보도는 사실 9시 뉴스 톱 감인데, 이렇게 중요한 사안이 스트레이트성으로 나간 것은 영장 발부에 대한 배경이나 맥락을 분석한 리포트라고 생각했고, 부끄럽게도 담당 부장도, 주간도, 당직 국장도 이 사실을 몰랐었기 때문"이라고 시인했다.

    김 본부장은 "근본적으로 보도본부 뉴스의 지휘 체계와 데스킹, 게이트키핑의 허술함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이런 사안의 경우는 평일과 같은 절차를 거치는 게 맞는데, 초기 단계의 미스로 당직 주간을 통해 나가버리고, 누구도 게이트키핑을 못했다는 게 아픈 부분"이라고 말했다.

    김 본부장은 "한두 달 전까지는 주말 뉴스를 봤지만, 지금은 큐시트를 안 본다"며 "돌발 아이템을 제외하고는 상당 부분 맡기고 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물론 원칙적으로는 주말이든 주중이든 다 봐야 하는 것은 맞다"며 "당시 주말에 사회주간과는 재난방송 문제로 여러차례 주고 받은 사실은 있다"고 덧붙였다.

    이영섭 사회주간은 "당시 보도 전 큐시트를 못 봤고, KBS 보도정보시스템에도 접속하지 않았다"며 "주말뿐 아니라 평일에도 아이템 개요를 정확히 못 보는 것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사회주간은 "사회부도 맡고 있지만, 재난 취재도 맡고 있고, 경인도 있고, 사실 체력이 허락한다면 하루 20시간씩 근무해야 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며 "그래서 부장과 팀장 등이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데스크와 무관하게 발제·보도된 기사… 해명할 게 없어"


    이날 공방위에서는 허술한 데스킹 문제 외에도 '청부보도' 의혹 등 보도 경위에 대한 구체적 해명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광호 2노조 공정방송실장은 "지금 사내 안팎으로부터 '취재원이 누구냐' '다른 배경이 있는 게 아니냐' '청부보도가 아니냐는 질문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며 "보도 경위를 구체적으로 밝혀달라고 거듭 요청드린다"고 말했다.

    최 실장은 "KBS노조 공정방송실장도 '법조팀의 평기자, 법조반장, 팀장을 공방위에 불러달라'고 요청했지만 결국 나오지 않았다"며 "어떻게 취재가 시작됐고, 데스킹이 됐고, 보도가 됐는지 당사자들이 깨끗하게 밝히는 것만이 모든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박유한 경제주간은 "이미 법조팀의 공식 입장이 나왔고, KBS에 소송이 제기된 상황이기 때문에 이들이 공적인 자리에 나오는 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판단을 했다"며 "해당 기사가 부장·주간·국장·본부장 등의 지시로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사측에서 답변할 것이 있겠지만, 말씀드린 것처럼 발제도 법조팀 내에서 이뤄진 것이고, 사회부장·주간·국장 등이 제대로 된 보고를 받지 못한 상황에서 기사가 출고됐기 때문에 이걸 왜 시켰는지 명확한 이유를 설명드리기가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김종명 보도본부장은 "사회부 기자가 작성한 경위서에 따르면 6월 중순부터 이미 '부산 녹취록'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7월 7일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이 공개된 검찰 내부망에 '중요 증거를 확보해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고 있다'는 글을 올린 사실을 파악해 신빙성 있는 내용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김 본부장은 "이후 법원에서 이동재 전 기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검찰 고위직과 연결해 의심할만한 사유가 있다'는 영장 발부 사유를 밝힘에 따라, 그동안 취재한 내용들을 모아 취재기자, 법조반장, 법조팀장이 영장 발부 배경을 설명하는 리포트로 제작한 것"이라고 기사가 나오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사측은 "지난 18일 '뉴스9'가 보도한 '유시민-총선 관련 대화가 스모킹건…수사 부정적이던 윤석열도 타격'이라는 제목의 법조기사는 취재진이 복수의 취재원을 만나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사화한 것"이라며 "'취재메모'만 있을 뿐 '대화 녹취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제3자와 취재진 나눈 '대화 녹취록' 있을 것"


    이에 대해 KBS노조(1노조) 관계자는 31일 본지와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KBS 취재진이 취재원과 나눈 방대한 '대화 녹취록'이 있는데, 그걸 지키려 하는 것처럼 보인다"며 "사측은 '취재메모'라고 하지만, 언론에 보도된 대화 전문을 보면 별도의 녹취파일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구심을 버릴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게다가 KBS에서 오보를 인정했음에도 다음날 MBC에서 비슷한 기사가 또 나갔다는 것은 양대 공영방송에 영향력을 행사한 누군가가 있다는 추정이 가능한 상황"이라며 "보도본부장이 제일 신경써야 하는 게 9시 뉴스인데, 휴대전화로도 챙겨보지 않았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 더욱 의심이 간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왜 무리하게 부실한 리포트를 보도했는지, 오보에 영향을 끼친 취재원은 누구인지, 보도 시점이 왜 한동훈 검사장 기소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수사심의위원회 전이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진 상황에 공방위가 진행됐지만, 사측은 취재 과정의 실수와 내부적 오류라는 대답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고, 법조팀은 더이상 해명할 것이 없다는 이유로 공방위에 출석하지도 않았다"며 "국민을 기망한 KBS의 반쪽짜리 공방위로 진실은 미궁 속으로 빠졌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양승동 사장은 이번 보도 참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를 '정략적 공격'이라고 반박하며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자진사퇴로 사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검언유착 오보' 의혹에 대한 사측의 해명이 부실했다고 판단한 KBS노조(1노조)와 공영노조(3노조)는 사안의 진상을 규명할 공동 진상조사위원회 구성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