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객기 납치범 설득해, 일본 승객 129명 구한 큰 은인… 文 대일정책과 별개로 감사"
  • 지난 10일 '6.25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서울 아산병원에서 별세한 뒤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故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져있다.ⓒ권창회 기자
    ▲ 지난 10일 '6.25전쟁 영웅' 백선엽 예비역 대장이 서울 아산병원에서 별세한 뒤 서울 광화문광장에 차려진 故백선엽 장군 시민분향소에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놓여져있다.ⓒ권창회 기자
    일본 우파성향 매체인 산케이신문이 15일 고(故) 백선엽 장군(예비역 육군대장) 별세에 애도의 뜻을 표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1면에 장기 고정 칼럼인 '산케이쇼(産経抄)'(산케이신문이 뽑은 오늘의 주요 장면'이라는 의미)에서 "일본의 큰 은인인 백선엽 장군에게 한국의 대통령을 대신해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칼럼은 국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백 장군의 업적을 소개했다. 백 장군이 1970년 일본항공(JAL) 여객기 납치 사건인 '요도호 사건'을 해결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일본말로 대화하자"… 김포공항 온 요도호 납치범과 협상 물꼬

    요도호 사건은 1970년 3월31일 도쿄 하네다공항을 출발해 규슈 후쿠오카로 향하던 일본항공(JAL) 351편 여객기를 다미야 다카마로 등 일본 적군파 요원 9명이 납치해 북한으로 망명한 사건을 말한다. 

    이 비행기에는 승객 129명이 탑승했으나 도중에 착륙한 김포공항에서 모두 풀어주고 4월3일 자신들만 북한으로 도주했다. 

    당시 우리 정부는 김포공항에 북한 인민군복 차림의 한국군을 배치하고 '평양 도착 환영' 등의 현수막을 내걸어 납치범들이 북한에 도착한 것으로 착각하게 만드는 위장술을 쓰기도 했다.

    백 장군은 당시 교통부장관으로, 정래혁 당시 국방부장관과 함께 납치범과 교섭을 지휘했다. 산케이신문은 이들 납치범이 한국어는 물론 영어에도 능숙하지 못했는데, 백 장군이 '일본어로 대화하자'고 제안해 협상의 물꼬를 텄다고 소개했다. 

    산케이 "한국의 대통령을 '대신해' 애도 표한다"
     
    칼럼이 백 장군의 이 같은 업적을 재조명하며 "한국의 대통령을 대신해 애도한다"는 표현을 쓴 것은, 문재인 대통령이 백 장군을 조문하지 않은 사실을 간접적으로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칼럼은 이와 관련 "백 장군은 한국전쟁 당시 부산까지 몰린 한국을 북한으로부터 구한 '구국의 영웅'인데도 문 대통령은 장례식장에 조문하지 않고 조화만 보냈다"며 "한국의 좌익세력들이 만주국 육군 장교였던 백 장군에게 '친일파'라는 꼬리표를 붙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요도호 사건과 백 장군의 업적은 지난해 7월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철회 조치 등으로 한일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에도 일본 내 반한감정을 누그러뜨리는 데 일부 기여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일본의 종합 월간지 문예춘추는 1990~93년 방위주재관으로 한국에서 근무한 후쿠야마 타카시의 칼럼을 실었는데, 칼럼은 백 장군과 관련한 필자의 추억 등을 소개하며 일본 내 반한감정 확산을 경계하는 내용이었다.

    "일본이 가장 신세 진 외국 군인"

    후쿠야마는 칼럼에서 "백 장군은 1941년 만주군관학교를 졸업해 한국인이지만 마치 옛 일본 육군의 장군을 대하는 느낌을 준다"며 "1970년 일본 적군파의 요도호 납치 사건에서도 일본인 인질 구출을 돕는 등 일본으로서는 '가장 신세 진 외국 군인'"이라고 덧붙였다. 

    칼럼은 이어 "한일 관계는 현재 미움이 미움을 낳는 마이너스 나선형으로, 현재 문재인 정권의 대일정책에 커다란 의문을 품지만, 큰 은혜를 준 백 대장의 모국 한국을 미워하지 않고 항상 경계하고 있겠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