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 연구원, 1960년대 소련 외무성 기밀문서 발굴…“6월25일 남침 날짜, 김일성이 직접 선택"
  • ▲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뉴데일리 DB
    ▲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에 서명하는 김일성. ⓒ뉴데일리 DB
    김일성이 3단계 적화통일계획을 만든 뒤 이에 따라 6·25전쟁을 일으켰다는 옛소련의 기밀문서가 국민대 연구원에 의해 발견됐다고 주간조선이 29일 보도했다. 국민대 연구원은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에서 쓴 것 같다”고 해당 문서를 평했다.

    ‘조선전쟁과 휴전 담화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이 문서는 옛소련 외무성이 1966년 8월9일 작성해 당시 소련 공산당 중앙위원회 대외연락부 부부장이었던 올렉 라흐마닌에게 보고한 것이라고 매체는 전했다.

    "스탈린이 김일성 계획 최종 승인”

    문서에는 “김일성은 미국이 남한을 위해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고, 스탈린과 마오쩌둥으로부터 무력통일 방안을 통과받기 위해 간절히 노력했다. 김일성이 1950년 3~4월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은 그의 계획을 최종 승인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고 한다.

    문서에 따르면, 김일성을 중심으로 한 당시 북한지도부는 3단계 통일계획을 만든 뒤 6·25전쟁을 일으켰다. 1단계는 당시 38선 인근에 병력을 먼저 집결시키고, 2단계는 남한에 평화통일을 제안하며, 3단계는 남한이 평화적 제안을 거절하면 무력작전을 개시한다는 내용이었다.

    매체는 “실제로 북한의 남침은 이 문서에서 언급한 대로 3단계에 걸쳐 순차적으로 진행됐다”고 설명했다. 먼저 북한은 38선 인근에 병력을 집결한 뒤 ‘조국전선(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이라는 조직을 앞세워 ‘평화통일 호소문’을 내놓고 남북 동시 총선거를 제안했다. 

    ‘조국전선’이라는 조직은 1949년 6월25일 박헌영·여운형·허헌 등 남한 내 공산주의자와 북한이 함께 만든 조직으로 알려졌다.

    당시 ‘조국전선’은 “1950년 8월5~8일까지 남북 동시 총선거를 실시해 최고입법기관을 창설하고, 광복 5주년을 맞아 같은 해 8월15일 남북 동시 총선거에 의해 선출된 최고입법기관 회의를 서울에서 열자”고 남한에 제안했다. 남한 정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전쟁을 일으켰다는 설명이다. 

    “겉으로는 평화통일을 강조하면서 물밑으로는 전쟁을 준비해온 전형적인 위장평화술이었던 셈”이라고 매체는 지적했다.
  • ▲ 마오쩌둥과 스탈린. ⓒ뉴데일리 DB
    ▲ 마오쩌둥과 스탈린. ⓒ뉴데일리 DB
    소련·중국,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 참전도 우려

    6·25전쟁 직전 김일성과 스탈린·마오쩌둥 등은 미국뿐만 아니라 일본의 참전 가능성을 우려했던 사실도 이 문서에서 드러났다고 매체는 전했다.

    문서에는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인민군 추가 부대 설립을 위해 북한 측에 무기나 군사장비 원조 요구들이 급히 수락되었다. 중국 지도부는 중국군에 복무했던 조선족 사단을 조선에 파견하고 식량 배급을 약속했고, 일본이 남한을 지지해 참전할 가능성을 우려해 1개의 집단군(군단에 해당)을 한반도와 가까운 지역에 파견한다고 약속했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고 전했다.

    문서에 따르면, 6월25일 침공은 김일성이 직접 선택했으며, 당시 소련과 중국은 북한군이 하루 15~20km씩 진격 중이었으므로 3주 정도면 무력통일 작전을 대체로 완수할 것으로 내다봤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있는 현대사문서보관소에서 이 문서를 찾아낸 사람은 표도르 째르치즈스키 국민대 선임연구원(한국명 이휘성)이라고 매체는 소개했다. 

    째르치즈스키 선임연구원은 “문서에 언급되는 스탈린·마오쩌둥·김일성의 이름이 아무런 직위와 직함 없이 그대로 씌어 있다”며 “이는 문서의 객관성를 뒷받침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은 지금도 6·25전쟁이 남침임을 인정하지 않고 ‘북침’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번 문서로 김일성에 의한 남침전쟁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매체는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