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합리적 공급망 이미 구성" 비판에… "장기적 세계공급망 제시하는 게 정부" 재반론도
  • ▲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만난 이태호 외교부 2차관(오른쪽)과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 미 국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이 추진 중인 탈중국 경제블록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 관련해 한국과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 지난해 11월 서울에서 만난 이태호 외교부 2차관(오른쪽)과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 미 국무부는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이 추진 중인 탈중국 경제블록 구상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와 관련해 한국과 계속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연합뉴스
    미국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카드로 "세계 공급망을 다시 짜겠다"는 계획을 공식화했다. 이른바 '경제번영네트워크'(EPN·Economic Prosperity Network)다.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이 공급망의 파트너 국가로는 호주·인도·일본·뉴질랜드·한국·베트남 등이 거론된다. 넓게는 남미대륙까지 EPN 공급망에 포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는 친민주당 성향 매체를 중심으로 "EPN 구상이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EPN 또는 세계공급망 재편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공급망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비판한다. "정부가 강제로 공급망을 만들어줄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는 논리다. 블룸버그통신은 '부질없는 기대'(wishful thinking)라며 9일(현지시각) EPN 구상을 깎아내렸다.

    블룸버그 "트럼프의 EPN은 희망 사항" 격하

    블룸버그는 "지난 10년간 중국의 임금과 비용이 상승하며, 저부가가가치 제조업의 상당 부분이 동남아시아로 이탈했다. 이미 시장상황에 따라 주도돼 왔던 변화가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해 가속화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내다봤다. 블룸버그는 이어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러스부터 5G, 홍콩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중국과 싸우고 있다"며 "그런 변화는 중국과 디커플링을 시작하고 싶은 트럼프 행정부의 바램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비꼬았다. 

    블룸버그는 또 "많은 회사들은 각자 합리적인 이유로 공급망을 구성하고 있다"며 "(EPN 같은) '레토릭'은 곧 그런 현실에 맞닥뜨리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과 지나친 갈등을 벌이고 있다고 비판하며, EPN 구상이 실현 가능성 없는 '수사'(修辭)에 그칠 것이라고 비판한 것이다.

    무역협회 "한국, 세계공급망 변화에 민감… 아세안으로 눈돌려야"

    하지만 우한코로나 확산에 따라 중국 내 생산이 크게 위협받으면서 "중국 중심의 세계 공급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시각이 대두된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2월 한국무역협회는 '글로벌 가치사슬의 패러다임 변화와 한국무역의 미래'라는 보고서를 내고 세계공급망 재편에 적극 대비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보고서는 "지난 30년간 확산된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세계공급망)은 금융위기 이후 성장이 정체됐다"며 "신흥국의 선진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줄어들고 선진국-신흥국 간의 수직적 분업구조가 느슨해졌다"고 지적했다. 

    무역협회 보고서는 이어 "한국은 다른 주요 선진국에 비해 GVC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GVC 패러다임 변화에 민감한 구조를 지니고 있다"며 "아세안 시장에서 다국적기업 공급망을 선점하고 기존에 중국시장을 공략하였던 범용중간재의 對아세안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보고서는 또 "핵심 공정 중심의 리쇼어링을 통한 국내생산기반 강화가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EBRD "기업들, 충격에 유연한 공급망 필요성 느낄 것"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베아타 자보르치크는 기업들이 유연한 공급망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 "많은 기업들이 비용효과성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다보니 플랜B(대체 공급망)를 만들 생각을 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어 "기업들은 세계 공급망을 재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부품 등 모든 생산요소가 마치 시계태엽처럼 규칙적으로 제공돼야 작동하는 현재의 시스템이 그 단점을 노출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비용이 다소 높아지더라도 우한코로나 같은 갑작스러운 충격에도 비교적 원활하게 생산요소를 공급받을 수 있는 제2, 제3의 공급망을 만들어야 한다는 충고다.   

    세계공급망의 재편을 개별 기업에 맡겨둬서는 안 된다는 의견은 국내에서도 제기된다. 최원목 이화여대 교수(국제법 전공)는 10일 본지와 통화에서 "개별 기업이 각자 상황에 맞게 공급망을 짜야 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장기적인 세계공급망을 제시해줘야 하는 건 정부의 몫이다"라고 말했다. 

    최원목 교수 "세계공급망 재편은 장기과제… 민관협력이 중요"

    최 교수는 이어 "세계경제 전체가 안정적으로 유지되도록 글로벌공급망이 재편돼야 하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그 논의에 참여해야 하는 것이며 그 과정에서 민관협업이 필수적"이라고 덧붙였다.

    블룸버그통신은 3선의  뉴욕시장 마이클 블룸버그 회장이 창립했다. 블룸버그 회장은 2020년 미국 대선 출마를 위해 민주당 경선에 출마했다가 지난 3월 후보에서 사퇴했다. 그는 미국 내에서 대표적인 친중 인사로 분류되다. 한 방송과 인터뷰에서 그는 "시진핑 주석은 독재자가 아니다. 시 주석이 국민을 만족시킬 수 없다면 존재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