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경호' 이유, 참수리-천안함 전우들 통제선 밖으로 밀려…“화환과 같은 대접 받았다”
  • 대전현충원 참수리 357 전사자 묘역 앞을 차지한 문재인 대통령 화환. ⓒ권기형 참수리 357 전우회 회장 페이스북.
    ▲ 대전현충원 참수리 357 전사자 묘역 앞을 차지한 문재인 대통령 화환. ⓒ권기형 참수리 357 전우회 회장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7일 제5회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취임 이후 처음 참석했다. 그런데 ‘서해수호의 날’에서 전사자들과 같은 주인공인 참수리357전우회와 천안함전우회가 의전에 밀려 사실상 찬밥신세였다는 지적이 나왔다. 온라인을 달군 문 대통령 화환 문제 또한 그 연장선상이었다고 한다.

    참수리357전우회장 '구석으로 밀려난 전우회 화환 사진' 공유

    참수리357전우회의 권기형 회장(참전 당시 상병)은 지난 28일 페이스북에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당시 사진 4장을 공유했다. 첫 사진은 대전현충원 참수리357 전사자 묘역 앞에 서 있는 문 대통령 화환이었다. 두 번째부터 네 번째 사진은 묘역에서 멀찍이 떨어진 구석으로 밀려난 여러 개의 화환이었다. 어떤 화환은 아예 명판까지 가려져 있었다.

    권 회장은 “자기가 보낸 화환 놓겠다고 먼저 와 있던 다른 화환들을 저리 치운 것은 처음 본다”며 “우리 참수리357전우회에서 놓아둔 것은 건들지 말아야지”라고 지적했다. 구석으로 밀려난 화환들은 전사자의 전우들과 전직 대통령, 야당 대표, 지자체장이 보낸 것이었다.

    권 회장은 “의전을 위한 것이든 사진을 찍기 위한 것이든 당신들 차례가 끝났으면 원위치로 놔두던가 해야지 그냥 가버리고, (대통령 경호를 위한) 통제가 풀린 뒤에 전우들 보러 묘역에 가보니 저리 방치돼 있다”며 분노했다.
  • 참수리 357 묘역에서 멀찍이 치워진 전우들의 화환. ⓒ권기형 참수리 357 전우회 회장 페이스북.
    ▲ 참수리 357 묘역에서 멀찍이 치워진 전우들의 화환. ⓒ권기형 참수리 357 전우회 회장 페이스북.
    그러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꿎은 해군·해병대 안내 장병들만 고생”이라고 덧붙였다.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이 끝난 뒤 안내를 맡은 해군·해병대 장병들이 구석에 치워 놓았던 화환을 제자리로 돌려놓았기 때문이었다.

    보훈처 “공식행사 끝나고 원위치시켰다”

    서해수호의 날에 대통령 화환 세우느라 참전 전우들의 화환을 치워버린 사실이 알려지자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큰 비난이 일었다. 국가보훈처는 결국 30일 해명자료를 내놨다.

    보훈처는 “매년 서해수호의 날 공식 참배행사 때 협소한 공간 등으로 대통령과 국무총리 이외의 조화는 잠시 위치를 옮겨두었다가 행사가 끝나면 제자리에 옮겨놓는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기념식에는 대통령께서 역대 처음으로 서해수호 전사자 개별 묘소에 헌화와 참배를 하시며 유족을 위로했기 때문에 다른 화환들을 미리 옮겨놓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 기념식이 끝난 뒤 전우회화환을 제 자리로 옮기는 대전현충원의 해군·해병대 안내 장병들. ⓒ전준영 천안함 전우회장 제공.
    ▲ 기념식이 끝난 뒤 전우회화환을 제 자리로 옮기는 대전현충원의 해군·해병대 안내 장병들. ⓒ전준영 천안함 전우회장 제공.
    그러나 ‘화환 사건’ 현장에 있었던 전우회 관계자들의 말은 달랐다. 전준영 천안함전우회장은 “보훈처에서 원위치시켰다고 밝혔나? 나도 현장에 있었는데 화환은 안내를 맡은 군인들이 와서 제자리에 돌려놨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치우는 사람 따로 있고, 제자리에 놓는 사람 따로 있었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

    영웅의 날이라면서…전사자 전우들, 대통령과 함께 참배 못하게 막아 

    화환 만큼 어이없는 일은 또 있었다. 서해수호의 날은 제2연평해전과 천안함 폭침, 연평도 포격도발 등으로 전사한 영웅 55명과 함께 살아남은 전우들 또한 영웅으로 대접하고 존경을 표하는 날이다. 문 대통령이 참수리 357정과 천안함 전사자 묘역을 참배할 때 유족들은 함께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참수리357전우회와 천안함전우회 등은 ‘대통령 경호’를 이유로 묘역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참배하는 모습을 지켜만 봤다고 한다.
  • 지난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당시 윤청자 여사가 분향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국민방송(KTV) 중계화면 캡쳐.
    ▲ 지난 27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 당시 윤청자 여사가 분향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잡고 이야기를 했다. ⓒ국민방송(KTV) 중계화면 캡쳐.
    북한의 어뢰 공격 당시 천안함 함장이었던 최원일 중령(해사 46기)은 “(전우들 참배도 마음대로 못하는데) 내가 대체 여기 왜 왔는지 모르겠다”고 주변 전우들에게 한탄했다고 전 회장은 전했다. 전 회장은 “(정부에서) 우리 화환을 함부로 치운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받아들여졌다”고 말했다.

    전 회장에 따르면, 또 다른 일도 있었다. 이번 기념식에서는 천안함 폭침 당시 내부기관 담당이었던 고 임재엽 상사의 모친 강금옥 여사가 ‘롤콜(Roll Call)’을 했다. 전사자들의 이름을 모두 부른 뒤 자리로 들어가던 강금옥 여사는 문 대통령 내외에게 목례했다. 문 대통령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주 목례했지만 영부인 김정숙 여사는 머리를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번 정부는 어떻게 된 게 천안함 이야기만 나오면 침묵하고 인상을 쓴다. 기념사에서도 코로나만 나오지 서해를 지킨 영웅들을 기리는 내용은 없지 않으냐”며 “정부가 서해수호의 날에 대통령이 온다고 생중계 방송 등 기존의 일정을 다 뒤집어버린 것을 보면, 이 정부의 생각이 엿보인다”고 전 회장은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우회 회원은 “기념식 당시 윤청사 여사께서 대통령께 질문할 때 모습을 봤을 것”이라며 “그때 대통령 내외의 표정에 진심이 담겼던 것 같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