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 수호’ 기념사에 대한 서글픈 물음‘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나라를 사랑하라고?‘1948년 8월 건국된 대한민국’은 아니지?
  • 李 竹 / 時事論評家

      ‘취임 후 처음’이라고 했다. 도대체 거긴 왜 갔을까? 몇몇 언론매체의 기사들을 뒤적였다. 그 말도 탈도 많다는 ‘댓글’에 오르내린 단어 중에서 가장 많이 눈에 띄었다.
      ‘총선’ 또는 ‘선거’... 동의해도 좋고 아니면 그만이다. 그건 그렇다 치고...

      “오늘 ‘서해수호의 날’을 맞아 불굴의 영웅들을 기억하며, ‘코로나19’ 극복의 의지를 더욱 굳게 다집니다. 서해수호 영웅들의 이야기는 자랑스러운 애국의 역사가 되어 미래 세대에게 영원히 전해질 것입니다.”

      2020년 ‘서해수호의 날’ 기념사는 이렇게 마무리 되었다. ‘코로나19’로부터 서해(西海)를 수호했던가? 발칙한 물음이라고 비난해도 달게 받겠다. 그 ‘영웅’들이 혹시 ‘방역팀’?

      “대통령님, 이게[천안함 폭침] 북한 소행인가, 누구 소행인가 말씀 좀 해주세요... 여태 북한 짓이라고 진실로 해본 일이 없어요. 이 늙은이 한 좀 풀어주세요.”

      10년 전 생때같은 내 아들을 잃은 노모(老母)의 절규는 결코 돌발 상황이 아니었다. 그 ‘기념사’가 웅변으로 증명해 보였다. 그 소행에 대해 “조금도 변함없는 정부 공식 입장”은 일체 포함되지 않았다. 
      반면에 그 소행의 주체가 명시되지 않은 채 듣기에도 찬란한, 아니 민망한 말씀의 성찬이 이어졌는데... 

      “2018년에는 남북 간 ‘9·19 군사합의’로 서해 바다에서 적대적 군사행동을 중지”
      “가장 강한 안보가 평화”
      “애국심이야말로 가장 튼튼한 안보” 

      물론 멍청한 넋두리겠지만, ‘응징’이나 ‘보복’ 또는 ‘결전’·‘결기’ 등의 단어는 찾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별나게...

      그 ‘기념사’를 읽으며 꼼꼼히 헤아려봤다는 아무개 논객에 따르면, ‘애국’(愛國)과 ‘애국심’(愛國心)이란 단어가 12번이나 들어있단다. 확인해 봤더니, 분명 그랬다.

      ‘애국’과 ‘애국심’... 듣기만 해도 설레는 단어들 아닌가. 그렇다면 그 ‘기념사’에 쓰인 ‘사랑’과 ‘사랑하는 마음’은 어디를 향하라는 걸까? 이런 ‘나라’를 그렇게 하자고?

      숙명적인 못된 이웃에 머리 조아린 채 ‘돌림병’의 고통도 함께하는 나라. 창문 열고 모기약을 뿌리는 돌림병 모범 나라. 

      위생용 ‘마스크’에 ‘공적’(公的)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그걸 사려는 ‘국민’들에게 5부제로 줄을 세우는 나라. [이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여러 경우에 ‘줄서기’를 해야 될 판이라는 예측이 무성하다]

      핵미사일로 상대방의 목젖을 누른 채 노골적으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는 무리에게 ‘협력’하겠다며 애걸하는 나라. [사족(蛇足)이지만, 그 ‘협력’의 표준 발음은 ‘퍼주기’란다]

      지면이 넘치는 관계로 이쯤에서 접자. 이즈음에는 결코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가 아니다. ‘한 번은 경험한 나라’가 된지 오래다.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은 나라’라고 해야 맞지 싶다. 그래서 그런지...

      ‘국민’들은 정중하고 엄숙하게 그 ‘나라’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다. 그 ‘기념사’에서 ‘사랑’하라고 호소한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나라가 과연...

      선대(先代)들이 천신만고 끝에 ‘1948년 8월 15일 건국한’,
      이후 온갖 역경을 헤치며 가꾸어서 ‘남 부럽지 않게 살만한’,
      배부른 기생충들이야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였다며 ‘침 뱉는’,
      
      그 ‘대한민국’이 맞는가?
    <이 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