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심 유죄 근거 삼성뇌물, 검찰 주장 뒤집히고 가혹수사 논란도… "정치적 판결 안 돼"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DB
    ▲ 이명박 전 대통령. ⓒ뉴데일리 DB
    삼성 뇌물수수 등 혐의를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항소심 선고가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다스 실소유 문제와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돼 중형이 선고됐던 1심 때와는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전 대통령 측이 1심과 달리 증인신문을 통해 적극적으로 방어전을 펼친 데다, 항소심이 진행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과 관련한 법리적 의문이 다수 제기된 탓이다. 사건 관계인들에 대한 가혹수사 논란도 불거지면서 '조국사태' 이후 사회적 이슈로 떠오른 검찰의 인권침해 문제도 법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7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부(부장판사 정준영)는 오는 19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 선고기일을 연다.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1월까지 1년여의 기간에 50여 차례 공판을 거쳤다. 지난달 8일 결심공판이 진행됐고, 재판부의 판단만 남은 상태다. 검찰은 결심에서 이 전 대통령에게 징역 23년과 벌금 320억원을 구형했다. 약 163억원의 추징금도 명령해달라고 요청했다.

    '추가 뇌물'에 검찰 주장 뒤집혀… 재판부도 '삼성 뇌물 의문' 지적

    이 전 대통령의 항소심은 어떤 판결을 내릴까. 예단할 수는 없지만, 1심과는 사뭇 다를 것이라는 분위기가 법원 안팎에서 감지된다. 우선 이 전 대통령의 공소사실 중 혐의가 가장 위중한 삼성 뇌물수수사건의 경우 항소심 재판에서 검찰 공소사실이 흔들리는 경우가 수차례 나왔다.

    검찰은 기존 삼성이 에이킨검프와 '프로젝트M'이라는 계약을 하고 매월 12만5000달러씩 정액으로 지급한 585만 달러(약 67억원)가 이 전 대통령을 향한 '직접뇌물'이라고 주장했다. 항소심 재판부가 "자금이 이 전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된 정황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지적하자 검찰은 '제3자 뇌물죄'를 예비적 공소사실로 추가했다. 

    이후 항소심 공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학수 전 삼성 부회장이 자금지원에 '대가성'이 없었다고 진술하면서 검찰의 공소사실은 다시 흔들리게 됐다. 제3자 뇌물죄가 적용되려면 뇌물의 대가성이 확인돼야 한다. 검찰은 이 전 대통령이 삼성으로부터 에이킨검프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받았다는 예비적 공소사실을 넣어 다시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공소장 변경에도 재판 진행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지난해 5월, 검찰은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로부터 이첩받았다며 에이킨검프 인보이스를 제시했다. 이 인보이스는 에이킨검프가 삼성 미국법인(SEA)에 법률비용을 실비로 청구했다는 것이다. 검찰은 기존 뇌물액 인보이스를 통해 실비로 청구된 430만달러(약 51억원)를 추가하겠다는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그러나 이들 인보이스는 "삼성이 에이킨검프에 법률비용을 12만5000달러씩 정액으로 지급했다"는 기존 검찰 주장과 상반된다. 기존 1심과 항소심이 진행되는 동안 검찰이 자신들의 주장을 스스로 뒤엎는 꼴이 됐다.

    재판장인 정준영 부장판사도 "검찰이 공소장을 변경했는데, 종전에 주장한 내용과는 취지가 많이 달라졌다"면서 "삼성이 다스 소송비용을 실비로 에이킨검프에 지급했다면 변경 전 공소장의 12만5000달러의 사용처는 어디인가"라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증인들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전면 부인하는가 하면, 검찰의 가혹수사와 플리바게닝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항소심 재판에 증인으로 나온 이병모 전 청계재단 사무국장은 "(검찰로부터) 한 달간 몸무게가 10㎏이 빠질 정도의 강압적 수사를 받았다"며 "거의 자포자기 심정으로 (검찰이 원하는) 진술했다"고 토로했다. 

    이 전 사무국장은 함정수사 의혹도 제기했다. 영포빌딩에서 발견된 서류를 증거인멸한 혐의로 검찰에 긴급체포된 뒤 자신보다 이 전 대통령의 혐의와 관련해 조사받았다는 것이다.

    검찰이 이 전 대통령의 재산관리인이라고 주장했던 고(故) 김재정 다스 회장의 부인 권영미 씨는 "김재정 씨가 이 전 대통령의 재산을 관리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한 것은 이 전 대통령 건물 3채를 관리했다는 의미"라며 검찰의 주장이 사실과 다름을 증언했다.

    검찰 가혹수사·플리바게닝 의혹… "1심과 분위기 달라"

    김성우 전 다스 사장과 권승호 전 다스 전무가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자수서(自首書)를 제출한 것도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김 전 사장과 권 전 전무는 다스 경리직원의 120억원 횡령에 관련됐다는 혐의를 받았다. 

    이 전 대통령측 변호인단은 "자수서에 '사실대로 얘기할 테니 선처해주시기 바랍니다'라는 것은 죄를 자백할 테니 선처해달라는 얘기"라며 "유죄를 인정하거나 다른 사람에 대해 증언하는 대가로 검찰 측이 형을 낮추거나 가벼운 죄목으로 다루기로 거래하는 '플리바게닝'을 변호인 측이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증인이 집요하게 출석을 거부한 경우도 있었다. 이 전 대통령 혐의의 핵심증인인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은 이 전 대통령 재판에 총 아홉 번이나 증인으로 소환됐지만 모두 출석을 거부했다. 이에 재판부는 "김 전 기획관의 검찰 진술에 증거능력을 부여할 수 있을지, 부여한다면 증명력을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 판단해보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1심과 달리 이 전 대통령 측이 △증인신문을 통한 적극적인 방어전을 펼쳤으며 △검찰 공소사실에 따른 법리적 의문이 여럿 제기됐고 △사건관계인에 대한 검찰의 가혹수사 논란이 불거졌다는 점 등이 재판부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만 김명수 대법원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사법부에서 정치적 판결이 지속되는 만큼 담당 재판부의 소신판결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는 부분에서는 의문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항소심이 재판이 진행되면서 변호인들에 의해 검찰 공소사실의 많은 부분에 허점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면서도 "그러나 총선을 앞두고 적폐로 몰린 전직 대통령의 재판이 과연 정치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