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시행 '미래유산사업' 주민 반발에 백지화 '수두룩'… "근·현대유산 기준조차 없다" 비판 봇물
  • ▲ 서울특별시 시청 청사. ⓒ뉴데일리 DB
    ▲ 서울특별시 시청 청사. ⓒ뉴데일리 DB
    서울시가 방치된 지 50년이 넘은 쪽방촌과 성매매 집결지 등을 '근대유산'으로 보존하기로 해 논란이 일었다. 도시 미관을 해치는 것은 물론 교육적·역사적 가치가 있다고 보기 힘든 이들 장소를 근대유산으로 선정하는 기준이 무엇이냐는 시민들의 항의가 거세다. '미래세대에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서울시민의 삶의 장소를 선정한다'는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지적이다.

    서울시는 2013년부터 서울시가 시민들의 삶을 담은 근·현대유산 중 미래세대에게 전달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선정해 시민들과 그 가치를 공유한다는 취지로 '미래유산사업'을 진행한다.

    '쪽방촌 기념 공간화'하려다 시민 반발에 백지화

    하지만 최근 시가 선정한 '근·현대유산'과 관련 주민들의 반발이 거세다. 대표적인 것이 '영등포 쪽방촌 기념공간사업'이다. 앞서 서울시와 국토부는 20일 ‘영등포 쪽방촌 주거환경 개선 및 도시정비를 위한 공공주택사업 추진계획’을 발표했다. 시는 이 계획에 따라 영등포 쪽방촌 1만㎡가량을 공공주택사업으로 정비하면서 쪽방촌 일부를 보존해 기념공간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지역 주민들은 이해가 안 된다는 태도다. 도심 내 흉물로 자리 잡은 쪽방촌을 철거하고 새롭게 단장할 좋은 기회인데 굳이 더럽고 낡은 쪽방촌 일부를 보존해야겠느냐는 지적이다. 쪽방촌이 무슨 역사적·교육적 가치가 있느냐는 의견도 있다.

    영등포구청 관계자는 "쪽방촌 인근에 사는 주민들의 우려와 불만이 강해 지금은 전면 철거로 계획을 수정한 상태"라며 "처음에는 (쪽방촌)일부를 보존하는 방법도 생각했으나 현재는 신축건물 내부에 전시관 등을 마련하는 방향으로 선회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흔적 남기기'에 시민들의 불만이 쏟아지는 곳은 쪽방촌뿐만이 아니다. 청량리 재개발, 강남 아파트 재건축, 성동구치소 이전 지역에도 서울시는 쪽방촌과 마찬가지로 일부 공간을 보존하겠다는 계획을 세워 해당지역 주민들의 비판을 받는다.

    한때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했던 청량리는 현재 재개발사업 중이다. 시는 청량리역 바로 옆 동대문구 전농동 일대에 ‘청량리 620 역사생활문화공간’ 조성을 추진 중이다. 청량리 620이라는 명칭은 현재 지번인 전농동 620번지와 청량리를 합쳐 만들었다. 이 일대에 과거 서민문화가 엿보이는 한옥 여인숙을 체험하고 옛 정취를 살린 식당이나 주점 등을 조성하겠다는 취지다.

    성매매 집결지를 옛 정취 살린 주점으로?

    그러나 계획에 포함된 한옥 1채가 성매매 업소로 이용된 전력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성매매 집결지였던 건물을 '역사적 문화공간'으로 만들면 어떻게 하느냐는 지적이다. 시는 이 건물 역시 논란이 거세지자 전면철거 결정을 내렸다.

    서울시는 또 시민들에게 완공된 지 50년 정도 된 아파트 등을 ‘유산’이라고 부르며 보존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송파구 잠실동 주공5단지가 이에 해당한다. 시는 이 단지가 최초의 중앙난방 도입 단지로 보존가치가 있다며 노후한 아파트 1개동과 굴뚝을 남기라고 주민들에게 요구했다. 결국 주민들의 반대로 굴뚝은 없애기로 했지만 낡은 아파트 1개동 일부는 그대로 보존하기로 했다.

    송파구 가락동 성동구치소 이전 부지도 마찬가지다. 시는 이 부지에 주택 1300가구 등 복합개발을 추진하면서 구치소를 구성하던 담장 일부와 감시탑을 남겨두겠다고 밝혀 주민들이 항의하고 나섰다. 이 때문에 성동구치소 부지 복합개발은 착공도 못하는 상황이다.

    정비업계 관계자는 “지어진 지 오래된 건물을 남기겠다는 취지 자체는 좋으나 쪽방촌, 성매매 집결지 등을 남겨놓겠다는 것은 해당지역 주민들로서는 잊고 싶은 과거를 서울시가 박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주민들에 대한 세심한 배려가 부족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