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선거기행④] 한궈위 광팬 한펀, 홍콩 시위에 정면 도전해 몰락 자초
  • ▲ 2018년 12월 25일 한궈위 취임식에 참석한 우둔이 (吳敦義) 국민당 주석 (앞줄 왼쪽 푸른 넥타이), 양치우싱 (楊秋興) 전 카오슝 현장 (앞줄 오른쪽 노란 넥타이), 쟝완안 (蔣萬安) 국민당 입법위원 (우 주석 바로 뒤). 양 전 현장은 2019년 중반 한궈위를 맹비난하며 국민당을 탈당했고, 쟝제스 총통 증손자인 쟝 위원은 선거기간 내내 한궈위와 거리를 뒀다.ⓒ허동혁
    ▲ 2018년 12월 25일 한궈위 취임식에 참석한 우둔이 (吳敦義) 국민당 주석 (앞줄 왼쪽 푸른 넥타이), 양치우싱 (楊秋興) 전 카오슝 현장 (앞줄 오른쪽 노란 넥타이), 쟝완안 (蔣萬安) 국민당 입법위원 (우 주석 바로 뒤). 양 전 현장은 2019년 중반 한궈위를 맹비난하며 국민당을 탈당했고, 쟝제스 총통 증손자인 쟝 위원은 선거기간 내내 한궈위와 거리를 뒀다.ⓒ허동혁
    지난해 6월 9일 홍콩 시민 100만 명이 중국강제압송법 철회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홍콩정부는 부랴부랴 압송법 입법 잠정 중단을 선언했지만 시민들은 완전 철회를 요구하며 6월 16일에는 200만 명이 시위에 참가했다. 이날 자살자도 1명 나왔다.

    대만에서 발생한 홍콩인 살인 사건이 홍콩에서 장기 시위로 커지리라 예상한 사람은 극소수였지만, 홍콩 시위가 대만에 끼치는 영향은 예측 가능했다. 중국강제압송법 입안으로 홍콩 입법회(국회에 해당)에서 보기 드문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홍콩 정세불안 조짐은 지난해 3월 이미 나타나고 있었다.

    한궈위의 애매한 태도, 지지층 이탈 부추겨

    한궈위가 카오슝 시정에만 집중했다면 홍콩 문제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을 수 있다. 그러나 총통 선거에 출마하려 했다면, 한궈위 자신이나 측근들은 주변 정세를 예의 주시해야 했다.

    한궈위가 총통출마를 공식화 한 것은 지난해 6월 1일 한펀(韓粉, 한궈위 팬) 주도의 지지 대회에 참가하면서다. 이날은 홍콩 시위가 시작되기 8일 전이다. 한궈위는 이 대회 불참을 공언했다가 갑자기 참가했다. 이 외에 5월 한 대만TV와의 인터뷰에서 “총통에 당선돼도 카오슝에서 업무를 보겠다”라고 하는 등 그의 애매한 태도는 많은 지지자를 등 돌리게 했다.

    지난해 6월 첫 홍콩 시위 직후인 13일 차이잉원 현 총통이 민진당 총통 후보로 선출됐다. 여론 조사로 후보를 선출하는 민진당 경선은 외부 사정을 고려한다며 예정보다 한 달 늦게 진행됐다. 라이칭더(賴清德) 전 행정원장(총리에 해당)은 경선 직전까지 차이 총통보다 지지율이 높아 한궈위 대항마로 거론됐지만, 경선에서는 차이 총통 지지율이 라이 전 원장을 추월했다.

    민진당 경선과 홍콩 시위를 전후로 대만에서는 ‘오늘의 홍콩은 내일의 대만(今日香港, 明日台灣)’ 구호가 등장했다. 중국의 압력으로 언젠가는 대만도 홍콩 같은 비극을 겪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구호는 대만인들에게 현실적인 구호로 빠르게 침투했다.
  • ▲ 차이잉원 총통 선거운동중인 중국연안 킨멘 (金門) 민진당원들. 차이 총통의 킨멘득표율은 평소의 두배 이상인 21.7%를 득표했다.ⓒ허동혁
    ▲ 차이잉원 총통 선거운동중인 중국연안 킨멘 (金門) 민진당원들. 차이 총통의 킨멘득표율은 평소의 두배 이상인 21.7%를 득표했다.ⓒ허동혁
    친중 <중국시보(中國時報)> 계열 연론을 제외한 모든 대만 언론이 홍콩 현지에서 시위를 보도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궈위는 홍콩 첫 시위 이튿날 기자들의 질문에 “홍콩 시위에 대해 모른다”고 발언하는, 엄청난 실수를 저지르게 된다.

    한펀, 홍콩시위 반대해 대만 민의에 정면도전


    이는 대만의 민의에 정면도전하는 행위였다. 다급해진 한궈위는 “중국의 일국양제에 반대한다”며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이 발언은 국민당 당령을 그대로 되풀이한 것일 뿐, 새로운 것이 없었다.

    일단 한궈위는 7월 15일 여론조사로 치러진 국민당 경선을 무사히 통과했다. 대항마였던 궈타이밍(郭台銘) 폭스콘 회장은 당내 기반이 약했다. 게다가 한궈위가 2018년 11월 지방선거에서 민진당 아성인 카오슝 시장 선거에서 승리한 여운이 아직 남아 있었다.

    그런데 한궈위 광팬 한펀(韓粉)의 리더들은 여론조사 발표 당일 타이페이 국민당 당사 앞 집회를 예고했다. 대만 언론들은 만약 궈 회장이 후보로 선출되면 이들이 폭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한궈위가 여유있게 후보로 선출될 것이라는 예측결과가 나오자 이들은 발표 전날 집회를 취소했다.

    이 소동은 대만인의 눈살을 다시 한 번 찌푸리게 했다. 한펀에는 다섯 마리 호랑이(五虎將)라 불리는 리더들이 있다. 이들이 주로 한펀 집회를 계획·진행하며, 이중 일부는 크고 작은 충돌로 고발당해 재판 중에 있다.

    ‘다섯 마리 호랑이’의 페이스북에는 홍콩 시위와 관련해 시위대의 폭력성만 부각한 장면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이런 게시물을 올린 이유는 단지 홍콩 시위가 한궈위에 방해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한궈위에 반대하는 그 어떤 사소한 행위도 다 집어내 비판했다. 이들에게는 한궈위의 총통 당선만 안중에 있을 뿐 중국의 압력 따위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한펀이 중국에 동조한다고 인식되기에 충분했고, 많은 대만 젊은이들이 한궈위를 떠나갔다.
  • ▲ 지난해 9월 29일 타이페이에서 홍콩시위 지지행진을 벌이는 대만인들.ⓒ허동혁
    ▲ 지난해 9월 29일 타이페이에서 홍콩시위 지지행진을 벌이는 대만인들.ⓒ허동혁
    지난해 8월 중순 필자는 한궈위 측근들과 대화할 기회를 가졌다. 이때는 차이 총통과 한궈위 지지율이 거의 동률일 때였는데, 이들은 지지율 하락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중 한명은 홍콩 시위대에 대해 노골적인 불만을 나타냈다. 다 된 선거를 홍콩 시민들이 망쳤으며, 시위대의 폭력성을 대만인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시각을 갖고 있었다.

    한펀, 홍콩시위가 하루빨리 끝나기만 바래

    그러나 홍콩 중국강제압송법 시위는 아무리 기다려도 끝나지 않았다. 대만에서도 십수만 명이 참가한 홍콩 시위지지 집회가 여러 차례 열렸고, 민진당과 범여권 정당은 한궈위의 이런 홍콩시위에 대한 무관심 행보를 가리켜 반민주 인사라고 연일 비난했다. 한궈위 앞에서 상복을 입고 시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지만 한펀은 민의에 대한 정면도전을 멈추지 않았고, 한궈위는 이런 한펀들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9월에는 친국민당 매체 여론조사에서도 차이 총통이 한궈위의 지지율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한궈위가 직접 홍콩에 가서 시위에 참가해야 지지율이 회복될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한궈위는 지난해 10월 카오슝시에 94일짜리 휴가원을 내고 선거운동에 본격 돌입했다. 그러나 이때는 한궈위 반대 세력이 너무나 커져버렸다. 궈타이밍 회장이 국민당 경선에 불복하여 탈당했고, 많은 국민당 인사들이 동반 탈당하거나 당내에서 한궈위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쟝졔스 총통 증손자인 국민당 쟝완안(蔣萬安) 입법위원은 한궈위가 비이성적이라며 공개 비판했다.

    한궈위의 한류(韓流), 홍콩 시위 결국 초월하지 못해

    한궈위 반대세력은 94일 휴가원이 시정 포기행위라며 비판했고, 한궈위 카오슝 시장 파면선거 제청을 위한 서명 모집에 들어갔다. 이는 사실상 한궈위의 총통 선거 낙선 굳히기용 정치 전술이었다.

    지난해 11월 홍콩중문대, 홍콩이공대 농성의 비참한 모습, 그리고 홍콩 구의회 선거의 민주파 압승 소식이 대만에 전달되면서 한궈위는 한없이 무너져 갔다. 결국 한궈위의 한류(韓流)는 홍콩 시위에 질질 끌려만 다니다가 12월 법정 선거운동 기간을 맞이했다. (계속)


  • 홍콩시위 및 대만관련 주요 상황 발생 시 뉴데일리 유튜브 채널을 통해 라이브 방송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뉴데일리TV 를 구독하시면 국내 유일의 홍콩과 대만 현지 라이브 영상을 보실 수 있습니다.

    많은 구독과 시청 부탁 드립니다.   

    ▶ 뉴데일리TV 홍콩시위/대만선거 현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