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사 파란만장… 본처와 자식 없자 혼외관계로 두 아들… 조카가 성 김 전 미국대사
  • ▲ 임택근 아나운서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 MBC 제공
    ▲ 임택근 아나운서의 생전 모습. ⓒ연합뉴스 / MBC 제공
    인터넷은 커녕 TV조차 없던 시절 "고국에 계신 동포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여기는 OO입니다"라는 단골 멘트로 국민들에게 즐거움을 안겼던 1세대 아나운서 임택근이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지난해 11월부터 심장 질환·뇌경색·폐렴 등의 증세로 중환자실에서 투병 생활을 해오다 지난 11일 오후 8시께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강남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14호실. 12일 오후부터 일반인의 조문도 받고 있다. 입관은 13일 오후 1시, 발인은 오는 14일 오전 8시에 진행된다. 장지는 용인 천주교회로 확정됐다.

    상주는 록가수 임재범(59)이다. 임재범은 이복동생인 배우 손지창(51)과 그의 아내 오연수(50)와 함께 11일부터 빈소를 지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 캐스터로 맹활약… 전국구 스타덤 올라

    임택근은 전시 상황이던 1951년, 중앙방송국 아나운서로 방송계에 발을 들였다. 당시 연희대(연세대) 정치외교학과 1학년에 재학 중이라, '대졸 이상'인 아나운서 지원 자격을 갖추지 못했으나, 방송국장에게 간청해 예외로 입사 시험을 거쳐 아나운서가 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임택근은 '스무고개'와 '노래자랑' 등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인지도를 높였고 특히 1960년 로마올림픽, 1964년 도쿄올림픽 등에서 스포츠 캐스터로 맹활약하며 전국구 스타로 부상했다. 1964년 문화방송(MBC)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1969년 국내 방송사상 처음으로 MC의 이름이 들어간 '임택근 모닝쇼'를 진행하기도 했다.

    임택근은 높아진 인지도를 바탕으로 1971년 민주공화당 후보로 국회의원 선거(서울 서대문구 을)에 출마했으나 낙선했다. 다시 MBC로 컴백한 그는 상무이사 등을 거쳐 MBC-경향신문 사장 직무대행을 맡았다.

    퇴사 후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등을 역임한 그는 2008년 버스에서 넘어져 중상을 입고 장기간 휠체어 신세를 지기도 했다.
  • ▲ 왼쪽부터 임재범, 임택근, 손지창. ⓒ사진 출처 = tvN / 뉴시스DB
    ▲ 왼쪽부터 임재범, 임택근, 손지창. ⓒ사진 출처 = tvN / 뉴시스DB
    임재범은 고아원에서, 손지창은 이모부 밑에서 자라

    임택근은 화려했던 아나운서 활동과는 대조적으로 가정 생활에선 적지 않은 흠집을 남겼다. 임택근의 파란만장한 가족사는 큰아들인 가수 임재범의 고백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졌다.

    2011년 KBS2 토크쇼 '김승우의 승승장구'에 출연한 임재범은 "임택근이 부친이고 탤런트 손지창이 이복동생"이라는 사실을 최초로 밝혔다. 손지창 역시 이듬해 방송된 tvN 토크쇼 '백지연의 피플인사이드'에 출연해 "임재범의 주장이 사실"이라며 그동안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가슴아픈 사연을 공개했다.

    두 사람의 증언과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하면 임택근은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자식이 없자, 두 명의 여성과 혼외관계를 맺고 아들을 얻었는데 첫째가 임재범, 둘째가 손지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그는 임재범을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숨겨서 키우다 재혼 이후 호적에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손지창의 사정은 더 안 좋았다. 이모부 슬하에서 자란 탓에 오랫동안 이모부를 친부로 알았던 그는 나중에 생부가 임택근이라는 사실을 알고, 대학에 합격했을 때 찾아가 처음으로 대면했다는 일화가 있다. 손지창은 임재범과는 달리 이모부의 호적에 들어가 성이 손씨가 됐다.

    임택근의 손위누나인 임현자 씨의 둘째아들은 주한 미국대사를 지낸 성 김(한국명 김성용)이다. 성 김의 부친은 1973년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 당시 주일 한국대사관에 근무했던 전 중앙정보부 요원 고(故) 김기완 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