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저자 정희선 씨… 불황 이겨낸 日 기업 노하우 담아
  • ▲ 신간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의 저자 정희선 애널리스트.ⓒ이기륭기자
    ▲ 신간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의 저자 정희선 애널리스트.ⓒ이기륭기자
    불황이 거리의 풍경을 바꾼다. 

    암울한 잿빛? 꼭 그런 건 아니다. 명품 브랜드를 간판으로 내건 편의점이 등장하고, 의류 브랜드로 내부를 채운 호텔이 탄생한다. 백화점 1층을 음식점이 점거하고, 맥주집을 겸한 서점, 술 파는 이발소가 출현한다. 불황은 때로 전에 없던, 시대의 절경을 만들어낸다.   

    일본에서 애널리스트로 일하는 정희선(41) 작가가 도쿄를 중심으로 포착하고 종합한 풍경들이다. 정 작가는 미국에서 MBA를 하고, 5년째 도쿄에서 산다. 미국에서 공부하다 만난 일본인 남편을 따라 도쿄에 정착했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혹은 30년’의 끝, 거리에 탄생한 다채로운 풍경들은 정 작가의 신간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을 정갈하고 빼곡하게 채운다. 

    미국과 한국에서 경험하지 못한 라이프스타일 마케팅

    “처음에는 단순히 이색적인 마케팅 스타일을 모아보자는 거였습니다.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콜라보(collabo·이질적인 주체의 공동작업)’들이 인상적이었거든요.”
  • ▲ 신간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이기륭기자
    ▲ 신간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이기륭기자
    정 작가의 관심을 끈 일본 기업들의 '콜라보'는 파격적이었다. 불황을 겪어낸 마케터들의 상상력은 아주 멀리 있는 것들을, 밤하늘의 별자리처럼 순식간에 이어 놓았다. 그런데 관계없는 것들을 관계있는 것들로 만드는 그들의 상상력은 어디서 유래할까. 그들이 착안한 아주 먼 것들 사이의 연결고리는 무엇일까. 정 작가는 ‘라이프스타일’을 말한다.  

    “‘모노즈쿠리’라고 하죠. 혼신의 힘을 쏟아 최고의 제품을 만드는 그들의 장인정신을 말합니다. 예전에는 모노즈쿠리가 투영된 상품이면 소비자들을 끌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일본의 상품과 서비스는 상향평준화됐죠. 품질만으로 소비자를 설득할 수 없게 됐습니다. 거기에 오래 지속된 불황이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했습니다. 품질 아닌 다른 무엇이 필요하게 된 거고, 그게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입니다.”

    까르띠에가 출시한 10만원짜리 컵라면?

    기업들은 품질 대신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시작했다. 구매를 권유하는 대신 “이렇게 사는 스타일은 어때?”라고 넌지시 운을 띄우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명품 브랜드 까르띠에가 지난해 9월 도쿄의 오모테산도에 열흘간 편의점을 개장했던 것도 그런 맥락이다. 젊은이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편의점을 열어 놓고, 까르띠에가 기획한 상품들을 한시판매했다. 1만 엔, 우리 돈으로 10만원쯤 하는 컵라면이 큰 화제였다. 

    “저도 궁금해서 까르띠에 편의점에 다녀왔죠. 라면 용기 안에는 회원제로 운영하는 고급 레스토랑의 2인 디너 티켓이 들어 있었습니다. 편의점 매장에는 유명 셰프와 협업해 만든 도넛·케이크·오니기리도 있었고요.”

    그런데 편의점이 품은 라이프스타일을 넘어 정 작가를 자극한 다른 무엇이 있었다. 편의점이라는 공간 자체였다. 재래의 편의점이 라이프스타일을 만나면서 새로운 공간으로 태어났다. 중요한 건 공간의 변신이다. 정 작가는 시대의 변화가 일군 공간의 변화에 주목했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첫 챕터의 제목은 언뜻 보아서는 난해하다. "잡지사는 왜 집을 팔기 시작했을까?" 
  • ▲ 정희선 작가는
    ▲ 정희선 작가는 "불황으로 지갑을 닫은 소비자들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건 품질이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의 경험"이라고 했다.ⓒ이기륭기자
    라이프스타일을 넘어 공간에 천착하다

    난립하는 여성지들 사이에서 ‘라이프스타일’을 타깃으로 성공한 잡지 ‘린넬’ 이야기다. 린넬은 라이프스타일에 내재한 공간의 의미를 실제 주택으로 구체화한다. 유명 건축설계사와 함께 린넬 스타일 주택을 설계하고, 이를 독자들에게 분양하는 프로젝트를 감행한다. 정 작가는 “건설업계에 종사하는 대부분이 남성인 상황에서 철저하게 여성의 시선으로 설계된 집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린넬이 주택 프로젝트에 참여한 것”이라고 정리해준다.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은 정 작가의 두 번째 책이다. 지난해 <불황의 시대, 일본 기업에 취업하라>라는 책을 냈다. 두 책의 간극만큼이나, 도쿄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새로운 트렌드에 대한 그의 관심은 넓고도 깊다. 최근에는 일본 경제전문미디어 재팬올(www.japanoll.com)에 '정희선의 재팬토크'를 연재하고, 패션 관련 전문지에 ‘일본 트렌드 읽기’를 쓰고 있다.  

    그는 <라이프스타일 판매 중> 서문에서 “의식주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의식주 세 가지 요소가 하나로 통합되는 것만 같았다”고 신간 집필의 경험을 요약한다. 정 작가의 원고들 역시, 일본 기업들의 라이프스타일 마케팅처럼, 아주 멀리 있는 것들을 아무렇지 않은 듯 홀연히 이어주는 미덕을 지녔다. 북 바이 퍼블리 펴냄,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