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의 드라마, 지소미아 사태를 보며…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생각한다
  • 국민의 세금으로 부와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 국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정신 멀쩡한 사람들은 지소미아 파기를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3개월 간의 지소미아 사태를 보며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생각한다. ⓒ맥스무비
    ▲ 국민의 세금으로 부와 권력을 누리던 사람들이 국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 정신 멀쩡한 사람들은 지소미아 파기를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3개월 간의 지소미아 사태를 보며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를 생각한다. ⓒ맥스무비
    정신 멀쩡한 국민은 한일 군사보호협정, 지소미아 파기를 일관되게 반대해왔다. 북한의 핵미사일 공격으로부터 우리의 안보를 지킬 수 없을 뿐 아니라 일본과의 관계, 무엇보다 자국의 안위를 최우선하는 미국과의 동맹을 크게 위협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도 흔들 수 없는 나라' '누구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던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끝장내는 것이 국익을 위한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여왔다.

    지소미아 파기가 한미동맹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장담했던 文은 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 주한미국 대사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도 "믿을 수 없는 일본과 군사정보 공유는 어렵다."며 지소미아 파기 의사를 외교적 수사 없이 전달했다. 청와대 대변인도 '지소미아 종료를 번복한다면 결정이 신중치 않았다는 얘기'라고 공식 발표했다. 2016년 11월26일, 사기 탄핵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는 중에도 국가안보를 걱정했던 박근혜 대통령이 애써 체결한 지소미아에 대해 더불어민주당은 정통성이 없다고 트집 잡았고 지난 3년간의 교류도 미진했다며 불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11월22일, 종료 시한을 6시간 앞두고 지소미아 중지 효력을 정지시킨다고 정부가 발표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해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한 불만도 취하한다고 덧붙였다. 그들이 요구했던 어떤 변화를 일본이 보여준 바 없다. 변덕 나면 내일이라도 당장 한국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다는 시시한 조건을 달았을 뿐이다. 그런데도 청와대 관계자는 “지소미아에 대한 결정권을 우리가 보유하게 됐다”고 큰소리쳤고 민주당은 지소미아 종료 번복이 “대통령의 원칙 있는 외교 승리”라며 찬양 중이다. 

    그나마 다행이라 가슴 쓸어내리면서도, 한미동맹의 골이 깊을 대로 깊어졌다는 것을 염려하며 한숨 쉬는 건 정신 온전한 국민들뿐이다. 외교나 안보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체면과 신뢰와 존중이란 단어를 생각하며 수치스러워지는 것도 정신 바른 국민의 몫이다. 그러나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거나 ‘승리의 역사를 만들겠다’ ‘우리도 부품 자립할 수 있다’며 2100억 원이 넘는 추경예산을 투입한다던 정부의 호언에 환호했던 일부 국민들도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지소미아를 하네 마네 논란을 일으켜서 일본과 미국이 손해 본 것이 무엇일까. 반일감정, 항일정신, 반미감정, 미군철수 등을 주장해왔지만 현 정권은 자식들을 유학시킬 정도로 일본과 미국을 신뢰하고 있으며 군사력 확대와 무기 판매 등 결과적으로는 그들 국가에 큰 이익을 안겨주고 있다. 다만 원칙대로라면 대등하게 유지되었어야 할 외교관계를 비틀어서 매번 한 단계씩 대한민국을 끌어내리고 있을 뿐이다. 북한 수준의 신뢰도가 목표점이라는 듯, 중국이란 말 궁둥이에 붙은 파리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는 듯.

    제 자신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양심을 판 사람들

    우리에게는 제목부터 낯선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라는 제목의 영화가 있다. 팅커(땜쟁이), 테일러(재단사), 솔저(군인), 세일러(선원), 리치 맨(부자), 푸어 맨(가난뱅이) 등 여러 직업이 언급되는 영국의 전래동요에서 인용한 거란다. 영국 정보국을 서커스, 정보부 내에서 오랫동안 영국과 소련의 이중간첩 노릇을 하고 있는 자들을 두더지라고 부르는 이 영화에서는 스파이로 의심되는 자들의 이름을 대신하는 암호로 쓰인다.

    영국 정보국 국장 컨트롤은 조직 내부에 스파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지만 소탕작전을 제대로 시작해보지도 못하고 소련의 역공을 받아 실패한다. 이에 책임을 지고 컨트롤은 사임하고 당시 부국장이었던 조지도 퇴출된다. 그러나 조직 내부에 이중스파이가 있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로 확인되고 정부 고위관리는 은퇴해서 조직 바깥에 있는 조지에게 스파이 색출 임무를 비밀리에 맡긴다. 조지는 서커스 내에 이중간첩을 심은 것이 젊은 시절 만난 적 있는 소련 정보부의 칼라인 것을 알아낸다. 조지는 믿을 수 있는 젊은 요원 피터와 함께 스파이로 의심되는 요원들, 팅커, 테일러, 솔저, 푸어 맨을 쫓는다.

    스파이들의 정체가 마침내 드러난다. 영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자유를 누리며 소련 공산주의 세계화를 위해 일해 온 사람들. 그런데 공산주의에 대한 소신과 사명감이 그들에게 있긴 했을까. 정체가 발각된 그들은 대범하게 ‘그래, 내가 소련의 스파이다’라고 말하지 못한다. 정보부 고위직으로 어깨에 힘주고 다니던 이전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겁에 잔뜩 질려서 눈물콧물 흘리는데 처량하고 불쌍하기가 짝이 없다. “당신들께 충성할게요. 제발 소련으로만 보내지 말아줘요” 하고 애원하기도 한다. 그들은 왜 자신들이 가서 살고 싶지도 않은 나라를 위해, 그런 끔찍한 세상을 만든 사람과 이념을 위해 꼭두각시 노릇을 해왔던 것일까. 그들 중 한 명은 어쩔 수 없었다는 듯 이렇게 변명한다. "서방세계는 썩을 대로 썩었어. 자네도 그렇게 생각하지? 내겐 설 자리가 필요했어."

    더러운 것 싫어서 더 추악한 데 붙어살았다고 말하는 그에게 관객은 연민조차 느낄 수 없다. 아무리 그럴듯한 변명과 이유를 대더라도 스파이란 사람들은 결국 이 나라의 이익도, 저 나라의 이익도 아닌, 오직 제 자신의 안위와 만족을 위해 양심을 팔아치운, 비굴한 본성의 노예들일 뿐이다.

    적국에 이익을 안겨주는 정부 사람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우리나라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 쌓여갈수록 한 가지는 분명해진다. 대한민국 국민이 낸 세금 덕에 부와 권력을 한껏 누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국익을 위해 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아니라면 그들이 충성하고 있는 나라는 대체 어디일까, 북한? 중국? 일본? 미국? 대답해주길 바란다. 자기 나라에는 해만 끼치고 매번 다른 나라에만, 심지어 적국에 이익을 안겨주는 정부기관 사람들을 무엇이라 불러야 할까?

    스파이들이 모두 청소되고 조지는 정보국 수장 자리에 앉는다. 피터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끼며 흐뭇하게 미소 짓는다. 어느 세계나, 어떤 조직이나 소속된 사람들이 모두 다 같은 마음일 수는 없다. 그러나 하나의 세계, 하나의 조직을 이끌어가는 수장과 실무 책임자들의 충성심과 책임감은 중요하다.

    혼란이 정리되고 새로운 세계에서 살아갈 기회가 우리에게도 주어질까. 지금 이 순간 저 어딘가에서는 올곧은 목적을 이루어갈 사람들이 불순한 의도를 품은 사람들을 청소하고 있기를, 보이지 않는 곳에서 두더지 소탕작전이 실행되고 있기를, 조지나 피터 같은 사람들이 새로운 세상을 준비하며 최선을 다해주기를, 그런 사람들이 이끌어나가는 포스트 코리아가 곧 시작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