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민도 사용 가능한 장비, 그러나… 살인범 추적에 경비정 동원하는 경우 매우 드물어"
  • ▲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해경에 예인되는 북한 어선. 이 배는 비교적 큰 편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동해상에서 표류하다 해경에 예인되는 북한 어선. 이 배는 비교적 큰 편이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지난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북한 어민들이 타고 온 배에서 노트북과 미국산 GPS 장비, 스마트폰과 SD카드 등이 발견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대공 용의점’ 의혹이 볼거졌지만, 공안 전문가와 탈북자단체 대표는 “북한 어선도 그런 장비를 쓸 수 있다”는 견해다. 이들은 이와 별개로 “정부가 이들을 신속하게 북송한 이유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국정원, 北 어선에서 노트북·미국산 GPS 발견

    조선일보는 “국가정보원이 문제의 어선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노트북과 전자기기를 발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국회 정보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12일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국정원은 이 어선에서 레노보(Lenovo) 노트북, 미국산 가민(Garmin) GPS 장비, 북한제 스마트폰 ‘평양 2418’, 8gb 용량의 SD카드를 찾아냈다.

    어선에서는 이 외에도 마른 오징어 포대 40개, 쌀 95kg, 옥수수가루 10g, 의류 25점, 감기·설사·위장약 등 의약품이 있었다고 신문은 전했다.

    국정원은 “노트북에는 북한의 체제 선전용 음악과 영상 파일, 오징어 조업 관련 정보들이 있었고, 스마트폰에는 남하하면서 바다에서 촬영한 듯한 사진 55장이 있었지만 대공 용의점은 없었다”고 국회 정보위에 보고했다.

    북한 어선이 미국산 GPS 장비와 노트북을 사용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전문가와 탈북자 단체 관계자들은 “그럴 수 있다”고 밝혔다.

    유동열 “대공 용의점은 없어 보여”

    유동열 자유민주연구원장은 “북한 어선에도 미국산 GPS 장비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먼 바다에서의 조업을 위해 어선용 소형 GPS 장비를 중국 등을 통해 수입하는데, 이 가운데는 일제와 미제 제품이 뒤섞여 있다는 것이 유동열 원장의 설명이다.
  • ▲ 2014년 일본으로 표류해 간 북한 어선에서 나온 물품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2014년 일본으로 표류해 간 북한 어선에서 나온 물품들. ⓒ뉴시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 원장은 “이 어선이 간첩선이었다면 엔진부터 다르기 때문에 국정원 등이 금방 알아챘을 것”이라며 “대공 용의점은 낮아 보인다”는 견해를 표명했다.

    김성민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북한에서 어선을 타는 사람들은 사회적으로 나름 부유한 사람들”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북한에서 쓰는 스마트폰이 600만 대를 넘어섰고, 일제와 미제 노트북과 GPS 장비 등도 돈만 주면 구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그 사람들이 국산 제품을 갖고 있었다면, 그것이 오히려 신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민 “북송한 北주민들, 단순 살인범 아닐 것”

    김 대표는 “그보다 귀순 의사를 밝힌 북한 주민들을 이처럼 신속하게 돌려보낸 이유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북한에서는 살인죄를 강력히 처벌한다. 하지만 바다로 도주한 사람을 경비정까지 보내 추적하는 일은 드물다는 것이다.

    그는 “이번에 북송된 사람들이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지만, 정부가 공개한 어선의 크기나 형태를 보면 3명이 16명을 살해했다는 주장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고 의문을 표했다.

    김 대표는 “이번에 정부가 보여준 여러 가지 행태로 추측할 때 중요한 자료를 갖고 왔거나 중요한 인물이어서 북한 측이 송환을 강하게 요구한 게 아닌가 의심된다”면서 “그렇지 않다면 북한이 그 귀한 연료를 쓰면서 이틀 동안 추적을 했을 리가 없다”고 덧붙였다.

    동아 "북송된 북한 주민들, 자필 귀순의향서 썼다"


    한편 북송된 북한 주민 2명(1명은 북한서 체포)은 심문 과정에서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썼다고 동아일보가 12일 정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지난 7일 판문점을 통해 북송된 북한 주민들은 2일 해군에 붙잡힌 뒤 동해항으로 들어오자마자 중앙합동조사본부로 압송됐다. 북한 주민 오모(22) 씨와 김모(23) 씨는 조사관들이 “한국에 머물겠느냐”고 묻자 “여기 남겠다”며 귀순 의사를 분명히 했고, 다른 탈북자들과 마찬가지로 자필로 귀순의향서를 작성했다. 이들은 귀순 의사를 밝힌 뒤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를 털어놓으며 “죽을 각오가 돼 있다”고 말했다고 신문은 전했다.
  • ▲ 통일부가 공개한, 북송된 북한 주민들이 타고 온 오징어 잡이 어선. ⓒ통일부 제공.
    ▲ 통일부가 공개한, 북송된 북한 주민들이 타고 온 오징어 잡이 어선. ⓒ통일부 제공.
    이 같은 내용은 김연철 통일부장관이 지난 8일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 출석해 밝힌 내용과 상반된다. 당시 김 장관은 “(북한 주민들의) 신문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반된 진술이 있었지만, ‘죽더라도 돌아가겠다’는 진술도 분명히 했다”면서 “이들에게 귀순 의사가 없는 것으로 최종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북한 주민 북송하면서 법률까지 위반한 정황

    신문은 "정부가 이들을 북송하면서 관련 법률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탈북자를 보호할지 말지는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대책협의회에서 심의를 거친 뒤 통일부장관이 가부(可否)를 결정한다. 또한 탈북자를 보호하지 않고 북송할 때는 당사자에게 미리 알려주도록 규정했다. 하지만 이들은 정부 부처 간 협의 만으로 북송됐다. 이들의 보호 여부를 결정할 대책협의회도 열지 않았고, 사흘 만에 북한 측에 먼저 “송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들을 북송할 때도 당사자에게는 알려주지 않았다. 오씨와 김씨는 판문점에 도착한 뒤 눈가리개를 풀고서야 북송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북송을 언론에 알리지 않으려 했다는 정황도 의혹을 샀다. 정부는 김유근 청와대 국가안보실 제1차장이 받은 문자메시지가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관련 사실을 공개했다. 이때도 통일부는 “이들은 귀순이 아니라 범행 후 도주한 것이므로 탈북자로서 보호할 대상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한편 북한인권단체와 법조단체는 지난 11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정경두 국방부장관, 김연철 통일부장관,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형법상 직권남용·직무유기·살인방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하고, 정부의 ‘북한어민 강제북송’을 규탄했다. 북한인권단체들은 12일에도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북한 주민 송환을 반인도적 범죄로 규정하고, 국제형사재판소(ICJ)에 제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