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조작 의혹, 과격시위로 이어져 3명 사망…'대선 3위' 정치현 박사 선거무효소송
  • 지난 5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서 일어난 시위.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지난 5일(현지시간) 볼리비아 수도 라파즈에서 일어난 시위. ⓒ뉴시스 AP.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볼리비아가 과격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지난 10월20일(현지시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에보 모랄레스 현 대통령이 부정선거를 저질렀다는 의혹이 원인이다. 지지율 3위이던 한국계 정치현 박사 측은 “모랄레스 정권이 우리가 얻은 표를 조작했다”며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다.

    좌파 모랄레스 대통령 4선 연임… 우파진영 맹렬 반대

    볼리비아 선거최고재판소(선거관리위원회에 해당)는 대선 당일 개표율이 83.76%에 이르렀을 즈음 갑자기 개표현황 공개를 중단했다. 중단 직전 결과는 모랄레스 대통령과 중도우파 야당 후보 카를로스 메사 전 대통령 간 격차가 7% 남짓이었다.

    볼리비아 선거법에 따르면, 1위와 2위 간 격차가 10% 미만이면 결선투표를 해야 한다. 결선투표로 가면 메사 전 대통령이 당선될 가능성이 컸다. 대선이 끝난 직후 3위를 차지한 정치현 후보와 4위였던 오스카 오르티스 후보가 메사 전 대통령을 지지한다고 선언했기 때문이다.

    선거최고재판소는 이튿날 오후에야 개표상황을 공개했다. 97% 이상의 개표상황에서 모랄레스 대통령 46.85%, 메사 전 대통령 36.74%의 득표율을 나타냈다. 결선투표가 필요 없을 만큼의 격차였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4선 연임을 선언했다.

    좌익 모랄레스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부정선거라며 거리로 쏟아져 나와 항의시위를 벌였다. 미국 AP통신은 22일(현지시간) “수도 라파스를 비롯한 전국 곳곳에서 모랄레스 찬반 진영이 충돌했다”고 전했다. 일부지역에서는 선거최고재판소 지역사무소가 불탔다.

    지난 10월23일부터는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총파업이 시작됐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이를 ‘쿠데타’로 규정하며, 부정선거를 주장하거나 자신을 반대하는 사람들을 맹비난했다.

    시위는 대선이 끝난 지 보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진다. 부정선거를 반대하는 측과 모랄레스를 지지하는 측이 서로 살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3명이 살해됐다.
  • 기독민주당 정지현 대선후보 캠프의 모습. ⓒKBS 관련영상 화면캡쳐.
    ▲ 기독민주당 정지현 대선후보 캠프의 모습. ⓒKBS 관련영상 화면캡쳐.
    정치현 후보 캠프 “우리 표, 모랄레스 표로 둔갑” 선거무효소송 제기

    이번 볼리비아 대선은 한국계 정치현 후보가 돌풍을 일으켜 국내에서도 관심이 높았다. 1980년대 초반 볼리비아로 이민한 정치현 후보는 기독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와 볼리비아를 새마을운동과 기독교정신으로 부흥시키겠다고 다짐했다. ‘한강의 기적’을 아는 볼리비아 국민들은 정치현 후보에게 기대를 걸었다는 게 교계의 전언이다.

    대선 당일 선거최고재판소가 마지막으로 공개했던 정치현 후보의 득표율은 8.77%였다. 현지 언론은 물론 외신들은 선거기간 그의 지지율이 30%에 육박한 적도 있는 만큼 그의 득표율이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선거최고재판소가 공개한 최종 결과는 8.78%였다.

    정 후보 측은 부정선거라고 주장했다. KBS는 지난 1일 정 후보 캠프를 직접 취재해 보도했다. 문광현 씨라는 캠프 관계자는 “정 후보의 득표 가운데 20% 정도가 모랄레스 쪽으로 갔다고 보면 된다. 이건 완벽하게 조작된 부정선거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 후보 측은 부정선거 증거를 찾아냈다며 당국에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다고 KBS는 전했다.

    모랄레스 정권을 향한 시민들의 분노

    모랄레스 정권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점점 더 거세지는 분위기다. 지난 8일(현지시간)에는 한 지방도시 시장이 시민들에게 공격당했다. 영국 BBC에 따르면, 볼리비아 중부 핀토의 파트리시아 아르체 시장은 여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모랄레스 정권에 반대하는 시위대의 공격을 받고 사무실에서 맨발로 끌려 나와 머리카락을 잘리고 온몸에 붉은 페인트칠을 당했다. 시청은 불탔다고 한다. 시위대는 아르체 시장에게 사임한다는 각서도 쓰게 했다.

    아르체 시장은 이후 경찰에 구출돼 병원에서 회복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모랄레스 대통령은 트위터에 “아르체 시장이 자신의 정치적 이념과 정책에 대한 신념 때문에 납치됐다”며 시위대를 비난했다. 여당 내에서는 시위대의 강력한 처벌을 요구한다고 BBC는 전했다.

    모랄레스 정권의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재선거를 요구한다. 지난 4일(현지시간) ‘독일의 소리(도이체벨레)’ 방송은 야당의 주장을 전했다. 메사 전 대통령은 “현재의 위기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은 공정하고 새로운 선거관리조직을 만들고, 국제사회가 엄격히 감시하는 가운데 새로 선거를 치르는 것”이라고 주장했다.